입원은 디다

병상일지 1

by 박상진

절망 속에서 이 글을 쓴다.


1. 서울행

막내와 서울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의 목적은 분명했지만 여행의 결과가 당장은 확실치 않으므로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글 내용의 진행에 따라 밝힐 수도 있겠다.


오랜만에 차를 운전해서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 출발부터 신이 났다. 물론, 난 카오디오를 통해 7080 노래를 들었고, 아들 녀석은 자신의 인이어 이어폰을 통해 아마도 최신 발라드를 듣고 있었겠지. 하지만 뭔 대수인가?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자유로운 마음으로 서로의 시간을 즐길 수 있음에야.


송파 롯데월드 타워가 바로 코앞인 캘리포니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이라고는 하나, 서울 도심의 호텔이라고 부르기엔 시설이 비교적 낙후되어 숙박비가 그리 비싸지는 않았다. 예약을 한 막내의 알뜰함과 요즘 젊은이들의 가성비를 중시하는 추세 탓이리라.


저녁은 근처 맛집을 검색하여 오향장육과 짬뽕을 먹었다. 우리 앞으로 일곱 팀의 웨이팅이 있었고, 이 가게는 식사를 위주로 하기보다는 주점(酒店)이란 인상이 더 깊기에 이전 손님들의 술자리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언제 우리 순서가 돌아 올런 지조차 예상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가게가 오픈하고 난 후 40여 분 지난 뒤에 방문했더니, 이전 손님들이 식사를 위주로 하고 일찍 자리를 비워주어서, 적절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때맞춰 시장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 주문한 음식들을 거진 다 해치웠으나, 맛집이란 명성에 걸맞도록 그리 음식 맛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저 그런대로 먹을 만은 하다고 평점을 주고 싶다.


다음날 아침, 막내가 자신의 일을 보러 나간 후 호텔에 혼자 남았다. 지난밤, 몸에 내열이 있어 속옷만 입고 잤더니 공기청정기의 맞바람이 약간 몸에 거슬렸다. 그래도 종종 있는 일이라 별로 개의 친 않았다. 막내가 일을 마칠 시간에 맞춰 체크아웃을 하고, 아들과 함께 롯데 월드 몰에서 마라탕과 우육면, 샤오롱 바오와 딤섬을 점심으로 먹었다. 살짝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평소 잘 먹지 않던 낯선 음식이었고 마라향 역시 원래 좋아하진 않지만 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했다. 롯데월드타워와 석촌 호수의 러버덕을 둘러보는 것으로 점심 후의 산책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남산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단은 서울을 벗어나기로 출발 전부터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오후 일정을 남산으로 택한 것인데, 기실 남산을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 지독하다는 서울의 한강변 교통체증에 그만 갇히고 만 것이다. 한강변의 나들목을 따라 각 구간이 병목 되는 곳에서는 의례히 긴 차량의 행렬로 지체되고 있는 것인데, 운전환경이 이처럼 평소와 달라지자 그만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40여분이나 딜레이 되어 남산 어귀에 이르니 이제는 주차가 문제였다. 공용이나 사설, 간이주차장마다 만차(滿車)란 팻말을 걸어두고 마치 철옹성인 듯 외부 차량의 출입을 굳건히 막았다. 결국, 주차할 곳을 찾아 남산 허리를 타고 두 번을 오르내린 끝에 남산에 와본 것 만으로 만족을 하기로 하고, 남산타워에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은 다음의 기약으로 넘겼다.


포항까지 바로 내려가면 10시가량이 도착 예정이지만, 아침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몸이 버텨낼까 걱정이 되어 롯데월드몰 약국에서 산 진통해열제를 중간중간 먹어가며 빈집으로 남아있는 칠곡 본가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다행히도 몸이 나아질 기미가 있다면 다음날 경주를 경유해서 포항으로 가기로 여행 일정도 수정을 했다. 9시가 되어 포장 배달 한 음식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나는 짬뽕, 아들은 *브랜드 햄버거였다. 뜨거운 국물을 삼키자 목구멍이 잠시 데워지면서 이마의 열감이 사라지고 몸이 금세 회복될 것만 같았다. 둥지를 떠난 새가 보금자리에 다시 찾았을 때 누릴 수 있는 안온(安穩)함이 나를 감쌌고, 칠곡의 깊어가는 이날 밤은 유독 스러이 고즈넉했다.


막내와 칠곡에 올 때면 늘 들리는 곳이 복집이다. 우연찮게 발견한 이 복집은 이미 맛집으로 유명해서 인근의 운암지를 산책한 사람들이나 조기 축구회원들이 점심 겸 해장을 하러 즐겨 찾는 곳이다. 오늘은 앞 손님이 이미 식사를 거의 마친 상태여서 이내 상차림이 나왔는데, 원래 좋아하는 복국이라 금세 군침이 돌았다. 특히 복지리탕과 함께 나오는 생나물 고추장 비빔밥이 이 집의 별미인데, 오늘은 그저 국물 맛만 입에 맞을 뿐 모든 음식이 입맛에 시큰둥했다.


결국, 포항에 도착한 오후부터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만 급기야 오한까지 들었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목은 아프지 않고 미각과 후각이 살아 있어 흔히 알고 있는 코로나의 증세나 예후(豫後)와는 거리가 있었고, 이미 난 네 차례의 코로나 사전 접종을 모두 마친 뒤였다. 밤이 깊어지면서,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잔기침과 발열과 오한이 밀려와서 날이 밝아오는 대로 응급실을 찾기로 마음을 먹고선 이내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2. 응급실행

응급실로 가면서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코로나가 발병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항생제와 진통해열제를 맞고 나서 한나절을 때우고 나면 거뜬히 퇴원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우선했다. 앞서, 응급실 수속 이전에 코로나 검사가 있었다. 방역당국의 시책이라 하여, 모든 의료시설의 입원 전제조건이 바로 코로나 미감염자에 한 한다는 것이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라도, PCR검사에서 양성이라도 나온다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쫓기듯 집으로 돌아와 보건소에서 다시 역학조사를 한 후 치료제를 지급받고 일주일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가면 그만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폐를 쥐어짠 것 같은 격한 기침과 동통은(疼痛) 어찌할 것인가? 옆에서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막내와 눈길이 마주치자 이내 눈 아래가 촉촉이 젖어들며 눈가의 눈매에서 잔떨림이 보인다. 내 속이 격하게 타들어가고 있다.


폴리스 라인에 선 범죄자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응급실에서 막내와 헤어지고 나서 환복(換服)을 하고 스트레쳐 실려 몇 구비 복도를 지나 잠시 집중치료실을 겸한 독실 병동에서 대기를 했다. 오만 생각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절(斷絶)이란 두 어절의 단어가 이렇게 무섭게 다가오긴 처음이었다. 차라리 격리(隔離)가 나을 뻔했다. 이 말속에는 한시성이 있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해제라는 결말이 반드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새벽 5시에 들어왔는데 벌써 9시가 다 되어간다. 응급실에서의 이야기다. 한쪽 끝의 나를 기준해서 맞은편으로 셋, 오른쪽으로 두 병상이 놓여 있었는데, 내가 왼쪽 끝자리에 누웠을 때는 맞은편 사선으로 보이는 병상에만 환자가 있었다. 중년의 부인이 환자이고 남편은 곁에서 연신 졸고 있었는데, 간혹 들릴 듯 말 듯 돈이 없어 제대로 마누라 병구완을 못해주었다고 넋두리하는데 듣기가 참 민망하다. 어떤 이는 배 아파 죽는다고 소리치며 기세등등하게 응급실로 들어왔다가는 집에서 먹고 온 상비약의 효험이 그새 들었는지 배실배실 웃으며 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는데, 내 일가붙이라면 그 자리에서 머리를 한 대라도 패주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되어 빈 병상이 다 차고 주위에서 두런두런 환자와 보호자가 서로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니 주로 암이나 중대질환으로 인한 고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하여 이를 본의 아니게 엿들게 된 내 마음 역시 심히 괴롭고 안타까웠다.


마침내 병실로 이송(移送)이 되고 있다. 누워서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는 복도의 조명등이 생경스럽기도 하거니와 도대체 이 복도의 끝에 닿아있을 내 병실은 과연 어떤 곳일까 하는 두려움이 살짝 마음을 달구었다. 병상을 앞뒤에서 옮기는 사내들의 억센 팔뚝과 병실로 이송해 와서는 병상에다 나를 들어 올려 눕히는 이들의 완력(腕力)에 일순간 소름이 끼치기도 했지만, 복도에서 병실로 이끌려 들어가는 순간이 마치 자궁 밖 세상에서 자궁 속으로 다시 되돌려지는 태아(胎兒)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난생처음 느낀 원초적인 두려움에 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아득한 절망감은, 입원한 첫날의 솔직한 심정이자 내면의 진솔(眞率)한 감정이 함께 어우러진 내 마음이 전하는 말이다.


나는 여태까지 그 어떠한 질병으로도 이전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다. 의식이 있는 상태로 위(胃)로 직접 삽관(揷管)을 하여 내시(內視)를 한 적은 있어도 수면 마취란 말이 두려워 지금껏 위나 대장 수면 내시를 한 적이 없고, mri나 시티를 찍어 본 적도 없으며, 몸에 수술한 흔적조차 하나 없다.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내 몸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 것인데, 예순을 넘어서부터는 주변의 친한 친구들 사이에 경중(輕重)을 떠나 몸에 잡병 하나 달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 자신도 연전(年前)에 협심증 진단을 받고 관련된 약을 장복(長服) 해 오고 있으니까. 병은 숨길 게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 놓고 손가락질받음으로써 스스로 자중(自重)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지만, 현실 속의 우리가 처한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이를 악물고 지탱해야 할 가족이 있고, 신고(辛苦)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디 자기 몸을 건사할 시간이 있었겠으며, 이는 여러 다른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병은 스며든다고 한다. 인간의 몸이 가진 방어기제(防禦機制)는 병마가 대놓고 덤벼 들기엔 너무나 견고하다. 그래서, 온갖 질병들은 인간을 허물기 위해서는 이들 인간들이 스스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에이징 커브(aging curve)라는 것은 나이의 변곡점(變曲點)과 인간의 일상생활과의 관련성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지만 실은 인체의 견고성이 한쪽으로 맥없이 허물어지는 시기임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태함, 게으름, 스트레스, 비만 등등 사람이 자신을 스스로 케어하지 못하는 요소들 역시 질병의 공략 대상이다.


자, 지금부터 이 모든 것에 노출된 예순 넘은 애노인의 병상일지가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