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기침

병상일지 5

by 박상진

잔기침이 끊이질 않는다. 다행스러운 점은 숨을 헐떡이며 잔기침을 심하게 하는데도 목에선 가래만 끊어 오를 뿐 별다른 통증 없이 용케 견뎌주고 있다. 사실, 교직에 몸 담을 때 영어 선생님으로 오랜 세월 목을 혹사(酷使)해왔었기에, 근래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며 목을 헹굴 때 검회색의 가래가 속을 끓였다 터지는 기침 속에 덩어리 져 나올 때도 있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막상 병원에 입원해서는 잔기침과 함께 매번 가래가 침에 섞여 나올 때마다 은근히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병증(病症)이 각기 다른 4인실에서 호흡기 환자의 기침소리는 기실 환자들에게는 성가시기가 그지없을 것이다. 나와 문중(門中)이 같은 박 선생님은 바로 옆 병상에서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고 있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나란히 일렬로 배치된 병상의 청년은 잔기침이 심해질 때면 헛기침으로 더러 뒤틀린 심사(心思)를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 내 병상을 지나쳐 화장실을 갈 때 지난밤 끼친 불편함에 대해 양해(諒解)를 구하니 넉넉한 몸집에 넉살 좋은 웃음으로 크게 손사래를 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청년은 본 병원에서 몸 담고 있는 의무보조 기사인 듯 보였다.


다른 한 사람은 여든 가까운 나이의 기골(氣骨)이 장대(壯大)한 분인데, 복합골절(複合骨折)을 당해 한 달 너머 이 병원에 입원 중이란다. 각종 자격증만 해도 30여 개가 넘을 만큼 젊은 시절 산업 현장을 활발하게 누비다 은퇴한 후, 석년(昔年)에 조카의 요청으로 회사의 시설 정비를 도와주다가 크레인 기사와 서로 싸인이 맞지 않아 그만 4m의 바닥 아래로 낙상(落傷)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오른 손목 네 곳이 골절되고 왼발이 부러졌으며 갈빗대가 2개나 나갔다고 했다. 고령(高齡) 임에도 워낙 체력이 강건(剛健)하여 왼쪽 손으로 목발을 지탱하여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기에 접어들었는데 재활병원으로 옮겼다가 내년 1월 말 경 퇴원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오히려, 방금 드린 사과가 무색(無色)할 만큼 건강보조 식품과 기능성 요구르트를 양손으로 건네며 나의 빠른 회복을 응원해 주었다.


어릴 적 할머니는 나와 같은 방을 썼다. 유년(幼年)의 기억이 닿아 있을 시점부터 스무여섯 나이로 대구를 떠나 포항으로 갈 때까지였으니 나의 소울 룸메이트에 다름 아니었다. 할머니는 나이 쉰에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린 후천적 시각장애인이었다. 다섯 살 아래의 여동생은 당시만 해도 무척 어렸을 테니 할머니의 잔 시중과 심부름은 오롯이 내 몫이었고 자연스럽게 조손(祖孫)의 합리적 동거가 이루어졌다.


할머니는 카리스마가 대단하여, 주위에 살고 있는 고모님들이나 고종 사촌들의 얼토당토 한 갑질로부터 우리 가족을 완벽하게 방패막이해 주셨다. 어릴 적 마음속으로, 나의 수호천사(守護天使)가 있다면 그건 우리 할머니가 분명할 거란 믿음도 생겨났다. 다만,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것은 실명(失明)이라는 천형(天刑)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는 할머니의 기침과 발작적인 천식(喘息)이었다.


저녁을 물리고 나면, 금세 할머니의 호흡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는데, 이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격한 기침이 이어졌다. 이럴 때면, 다락방에 준비해 놓은 비상약을 물로 숟가락에 풀어 할머니 입속으로 흘려 넣어주었다. 뇌신이라는 분말로 된 이 약은 사각의 습자지로 곱게 아래위로 접어 층층이 겹으로 쌓아 보관을 했는데, 그 맛이 지독할 만큼 썼다. 이럴 땐 천식에 좋다는 배를 숟가락으로 갈아 할머니 입에 한 술 떠 넣으면 오물거리는 입으로 맛있게 받아 드시면서, "고맙구나, 내 새끼!"라고 힘없는 목소리를 되뇌곤 했다.


갑자기, 할머니의 기침 소리가 이 순간 떠오른 것은 과연 우연이나 환경 탓이었을까? 몸이 고달프니 지금껏 기억의 저편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할머니 생각이 났던 것이다. 폐부(肺腑)를 쥐어짤 듯한 격한 기침을 하며 느닷없이 할머니가 그리워진 것인데, 그 영문을 알 길은 없지만 기침소리가 촉매(觸媒)가 된 것임은 분명하다. 어릴 적 고종사촌들의 윽박지름이 있을 때마다 이들을 불러 무릎 꿇게 하고는 사과를 종용(慫慂)했던 내 영원한 수호천사의 그림자가 지금 이 순간 내 병상 주위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듯했다. 갑자기 입이 앙다물어지고 가슴속으로 뜨겁게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래, 견뎌야 하는 거야! 그 왜소(矮小)한 몸의 폐가 날마다 기침으로 달궈질 때도 할머니는 그 격한 고통을 이겨내지 않았던가!


할머니는 내가 교사로 임용된 이태 만에, 당시만 해도 고령인 여든여섯의 나이로 마치 숙면(熟眠)을 하듯 이 세상을 하직(下直)하셨다. 늘 고통스러운 기침에 시달리면서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여느 할머니가 조손을 바라보듯 늘 너그러운 웃음 띈 모습이다. 마치, 할머니가 내게 준 선물인 듯 이날 밤은 입원해서 처음으로 그럭저럭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고맙고도 그리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