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과 분변(糞便) 검사

병상일지 4

by 박상진

이틀새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침상 옆에는 모니터와 수액을 주렁주렁 단 거치대가 나란히 어 내 몸을 감시하고, 밤새 또 내 몸을 케어했다. 처음엔 산소 줄을 통해 레벨 5의 산소를 코로 흡입토록 했는데, 코로는 깊은 호흡으로 들숨을, 입으로는 날숨을 쉬어 폐를 돌아서 나온 공기를 입 밖으로 배출토록 했다. 무엇보다도 가슴의 답답함을 해소해야 했으므로 몰아서 들이쉬는 숨으로 처음부터 숨이 가빠졌는데, 산소포화도가 안정 수치인 92를 꾸준히 넘나들고 있다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하지만, 이런들 저런들 내 마음은 온통 다른 데로 쏠려 있었으니 은근히 사지 근육통을 수반하는 체열 때문이었다.


진통해열제를 주사선을 통해 주입하고 약물이 패치에서 다 빠지고 나면, 한 시간 가까이는 또 나만이 겪어야 할 신고(辛苦)의 시간이었다. 이마로부터 식은땀이 슬며시 맺히기 시작하면 양쪽 가슴과 배가 닿아 접히는 부분부터 땀이 방울방울 맺혔다가 이내 배를 타고 흘러내린다. 마른 수건을 준비해 두었다가 흐르는 땀을 닦아내 보지만, 이는 격렬한 운동 뒤에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닦아낼 때의 상쾌함과 비할 바가 아니다. 오히려, 우연히 곤충이 으깨져 그 분비물이 몸에 닿게 되었는데, 질색하여 닦아냈지만 한참 동안 살갗에 남아있는 그런 우중충한 끈적거림과도 같은 것이다.


어느 순간, 체온이 정상과 가까워지면서 호흡이 고르게 되면 비로소 온몸 곳곳이 기분 좋을 만큼 나른해진다. 순간적이긴 하지만 몸상태가 평소의 몸과 가까워진 것이다. 이럴 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야 한다. 애써 눈꺼풀을 닫아보지만, 이전 실패한 MRI 검사와 이를 대신한 폐 시티 촬영 때의 고통스러움이 섬망(譫妄)이 되어 눈앞을 어른거리고 있다. 개뿔, 잠자기는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이럴 땐, 사흘 째 이어지고 있는 물 설사를 틈을 타서 해결해야 한다. 마침 화장실이 바로 옆이고, 잠시 코에서 산소 줄만 떼어 놓으면 거치대와 함께 화장실로 이동이 가능했다. 사실, 장기입원 환자들은 위생처리를 잘못해서 욕창이 발생하기 쉽다기에 물휴지를 잔뜩 준비하고 만반의 채비를 마쳤다. 이미 서너 차례, 미리 볼일을 보고 용변을 처리한 경험 덕분에 오늘도 모든 과정을 잘 클리어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눈만 멀뚱 거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플라스틱 유아용 변기통과 분변 통 세 개를 건넨다. 점액질(粘液質)도 아닌 물 설사인데, 그것도 세 군데로 나눠서 담아 달라니. 뜨악한 눈길로 바라보자 분변 통의 뚜껑을 열며 요령을 설명해 준다. 뚜껑에 달린 대롱에 조금이라도 담으면 된다는 것인데, 오른 손등의 주사기로 연결된 거치대의 수액들이 건들건들 금세 요동을 한다. 평소 오른손으로만 용변 처리를 했는데, 하필이면 오른손이 지금은 나의 핸디캡이다.


간호사가 물러나고 얼마 안 있어 금세 아랫배로부터 신호가 왔다. 다시 산소 줄을 떼어두고, 거치대를 밀어 화장실 한쪽에 미리 마련해 놓은 플라스틱 변기통에 앉으니 이내 아래쪽 하문(下門)에서 소리가 요란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전에 비해 약간의 점액질 기미가 있어 세 개의 분변 통에다 제대로 나눠 담았다. 뒤처리까지 하고 변기통에 잠시 앉아 쉬는데 이마로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하지만 이 어려운 미션마저 클리어했다는 생각이 들자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졌다. 병상으로 돌아와 이리저리 구겨진 침구정리를 하고 자리에 누우니 벌써 진통해열제의 시효가 지나가고 있었다. 간호사를 호출해서 귓속 체온을 재니, 1° 가량이 오른 38.2°를 웃돌고 있다. 맥이 풀리면서, 다음 진통해열제를 주사할 때까지 견뎌야 할 두어 시간의 고통에 미리 몸서리가 났다. 이럴 때, 고통에 못 이겨 제풀에 고꾸라져 꼬박 잠이라도 한숨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원래, 나는 잠에 구애받은 적이 없다. 주위의 말을 빌자면, 머리만 잠시 기댈 곳이 있다면 이내 잠에 빠져든다고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참으로 밉상스럽다. 학생 야영활동이나 수학여행과 같이 몇 날 밤을 함께 체류하는 교육활동을 할 때, 학년부장으로 주로 인솔자의 역할을 했었다. 학생들에게 야식을 나눠준 것을 끝으로 전체 소등(消燈)을 하고 나면, 그 깊은 밤의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본능이 살아난다. 일탈(逸脫)하고 싶은 것이다.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때부터 치열한 암투가 시작되는데, 막으려는 자와 뚫으려는 자의 치열한 기세 싸움이 바로 그것이다. 야영은 야영장에 위탁(委託) 교육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참여 학생들도 1학년이 주 대상이기 때문에 술과 담배로 인한 일탈은 드물다. 하지만, 주로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여행은 남학교의 경우 술이나 담배로 인한 우연적인 사고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에 밤이 깊어갈수록 학생들에 대한 감시나 경계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호텔 로비의 현관문을 폐쇄하고 층마다 전담교사를 배치하여 학생들의 일탈을 막고 안전을 도모한다고는 하나, 잠에 못 이겨 자리를 슬쩍 비우는 선생님들도 적지 않았다. 고스란히 온밤을 새우며 위아래층을 오르락내리락거리다 얼핏 든 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아랑곳 않고 잠을 자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참으로 밉상스러웠다. 3박 4일간의 수학여행이 얼른 끝나기를 오매불망하며 당시 퀭해진 눈을, 지금 이 병실에서도 똑같이 퀭해진 눈으로 밤이 깊어 실체조차 없는 어둠의 흔적을 좇아 납덩이같은 눈꺼풀을 감았다 뗐다를 되풀이하고 있다.


아침이 되자 식판을 들고 온 요양사의 뒤로 간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발열 체크와 혈압을 재러 온 모양인데, 거치대의 중간 받침대 쪽으로 슬쩍 눈길을 준다. 의기양양해진 마음으로 당장 미션이 클리어되었음을 알렸다. 슬그머니 미묘한 웃음을 얼굴에 담더니, "잘하셨네요!"라는 말 한마디만 던지고선 휑하니 돌아서는데,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이란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로선 난생처음 겪는 생소한 일이었지만 이들에게는 날마다 되풀이되는, 해야 할 하나의 업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하는데, 안간힘을 다 써가며 했던 노력과 성과가 마치 신기루 흩어지듯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속이 상하는 한편으로 마음이 허망스럽기까지 했다.


진통해열제를 새벽녘에 주입한 덕택에 몸은 한결 가벼웠지만, 어느새 또 새로운 불면의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