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 라인에 선 범죄자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첫날 포항 병원에서 입원을 앞두고 PCR 검사부터 받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전원(轉院)해 온 영남대학교 병원 역시 마찬가지로 환자를 대상으로 PCR 검사부터 실시했는데 방역(防疫) 당국의 시책이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록, 몸은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왔으나 그건 내 마음일 뿐,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궁색(窮塞)한 처지가 바로 현재의 내 모습이었다.
PCR 검사 결과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병실로 안내된 곳은 지난 병원처럼 4인실이었다. 영남대학교 병원은 권역(圈域) 내 호흡기 전문질환 센터의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기에, 한 병실에 입원한 환자는 예외 없이 모두가 호흡기 질환자들이었다. 가쁜 숨을, 산소를 구명줄 삼아 코에 호스를 삽관(揷管)하여 몰아 쉬고 있는데, 사방에서 들리는 헐떡거림을 듣는 것만으로도 등에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햇빛이 잘 들고 전망(展望) 좋은 창가 자리를 배정(配定) 받아 앉으니 적으나마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4층 병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영남 이공대학 강의동 앞 화단에 심어 놓은 서너 그루의 단풍이 제 계절은 맞아 적황색(赤黃色)으로 한껏 어울려 절정(絶頂)이다. 어떻게 보면 단풍은 생의 기미(幾微)를 다 한 시점에서, 자신의 마지막 정열을 화려하게 피우고선 불꽃처럼 사그라드는 열정을 자신의 내면에 속속들이 품고 있지 않은가. 맞은편 병상에 누운 노인이 비록 기저귀를 차고 오줌 줄로 몸속에서 일어나는 대사(代謝)를 밖으로 거르고 있다 할 지라도, 그가 살아온 지난날까지 폄하(貶下)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노인 역시 젊어서는 자신의 청춘을 불살라가며 불꽃같은 정념(情念)으로 장년(壯年)을 보내고 노년에 이르러선 인생의 끝물인 단풍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침상 위로 구겨지듯 꺾여있는 앙상한 다리 사이로 삐져나온 기저귀가 별반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오매, 할배 다리 사이로 삑사리 단풍 들겄네! 덤으로 구수한 똥냄새까지도.
병상에 자리를 잡고 누우니, 지난 포항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 마치 지독한 악몽(惡夢)을 꾼 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가뿐 숨과 고열, 횡격막(橫膈膜)을 타고 폐부(肺腑)를 쥐어짤 듯 엄습(掩襲)하는 고통, 몇 날째 이어진 불면(不眠)의 밤. 지옥이 있다면, 바로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일순간 마음이 겸허(謙虛)해졌다. 지난날의 오만(傲慢)과 이런저런 편견(偏見)으로 가득 찬 생활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래서 내린 결론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보다 진중(鎭重)하고 겸손한 태도를 갖자는 것이다.
왼쪽 손등에 주사선을 꽂은 다음 항생제와 영양제, 알부민과 스테로이드까지 순차적(順次的)으로 몸속으로 주입(注入)되기 시작했다. 오른쪽 종아리 아래로 붓기가 있고 양쪽 손등도 부풀어 올라 이뇨제(利尿劑)까지 투약(投藥)을 했다. 여전히 혈압은 170 전후로 높아, 혈압 강하제나 혈전(血栓) 해소제를 근육 주사로 놓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고열로 인한 무기력과 고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에서는 환자의 체열을 제어하는데 신경을 써 주어 체온을 측정한 후 주기적으로 진통해열제를 주입해 주었는데, 이는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건물의 조명등 아래서 단풍나무가 새초롬이 다시 피어나고 있다. 물론, 낮과는 다른 물색(物色)이지만 때깔이 고와 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호흡기 병동의 창가에 자리한 환자들은 여러 복잡한 생각들로 창밖을 통해 단풍나무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밤은 까맣게 익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잠을 잊은 사람에겐 이 밤이 고통스럽다. 한바탕 뜨거운 열기가 휩쓸고 간 여파로 몸 구석구석이 끈적이는 진땀으로 진득하다. 간병(看病)을 하는 아내와 나눠먹은 저녁으로 아랫배까지 무거워진다. 바야흐로, 배변(排便)의 순간이 닥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