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병원생활

병상일지 9

by 박상진

처음으로 하게 되는 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낯설다. 주어진 환경이나 신체에 어떤 제약(制約)이 따른다면 생활의 어려움이나 생소함이 평소보다 배가(倍加)된다.


포항 병원에서 검사를 위한 분변(糞便) 처리를 할 때는 어차피 해야 할 불가피한 일이어서, 협소(狹小)한 화장실 공간과 거치대에 항생제와 영양제를 손등의 주입구를 통해 주사하는 신체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안간힘을 다 해 주어진 미션을 클리어했었다.


그런데, 영남대학교 병원으로 옮기자 불편한 생활이 그만 일상이 되었다. 우선은 생리적 반응으로서의 배변(排便) 처리이다. 이곳으로 전원(轉院)해 온 이후로는 병상에 비치(備置)된 산소통과 이를 통해 산소를 공급하고 있는 산소 줄의 길이가 바로 내 행동반경(行動半徑)이 되어버렸다. 포항 병원에 있을 때는 산소 포화도(飽和度)가 기대 허용치인 92를 오르락내리락하여, 용변(用便)을 보러 갈 때는 간호사들이 잠시 산소 줄 떼는 것을 모른 척 용인(容認)해 주었다.


하지만, 영남대학교 병원에서는 배변과 소변을 환자의 용태(容態)와 병증(病症)을 관리하는 자료로 삼는 듯 보였다. 물론, 포항에 있을 때도 소변량을 체크했으나 그 의미나 목적에 대해서 깊이 있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 병상은 밖이 내다 보이는 창가 쪽이었다. 처음에는 간호사의 수고를 덜도록 유아용 변기통 바닥에 휴지를 깔고, 급한 대로 용변을 본 다음 마른 휴지에 이어 물휴지로 깔끔하게 위생처리를 했다. 더러 신경 쓰이는 것은, 병동 주변 강의동에서는 밤늦도록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어서 볼썽사나운 모양새를 들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다음날 아침, 간호사가 길쭉한 노란 비닐봉지와 함께 변기통을 가져오더니 대뜸 한마디 했다. 바닥에 깐 종이 휴지가 변기통에서 잘 떨어지지 않아 이를 세척(洗滌)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결국 변기통에 비닐을 덧씌우고 비닐의 각을 세워 용변을 볼 변기통에서 너비와 깊이를 확보했다. 다행히 설사가 그쳐서, 오늘은 대변이 찰졌는데 속시원히 아래로 쏟아진 양이 많아 엉덩이에 닿을 듯했다. 엉거주춤 변기통에서 몸을 뗀 다음 마른 휴지로 방금 본 용변을 아래로 눌렀다. 마치, 쑥덕의 색감과 질감(質感)과도 같은 진녹색의 끈적한 대변이 다시 아래로 그 높이를 낮춤으로써 나머지 용변도 순조로이 끝낼 수 있었다.


간호사는 나를 포함해서 용변을 본 내용물의 색깔과 창가 쪽에 마련해 둔 저울로 꼼꼼히 양을 체크했다. 나를 제외한 환자들은 모두 기저귀를 를 차고 있어 간호사가 직접 뒤처리까지 하는 수고를 감내(堪耐)할 수밖에 없었으니, 혼자서도 쓱쓱 배변 처리를 하는 내가 무척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렇듯, 내게 있어 가장 고충(苦衷)이 될 수도 있었던 난제(難題)가 순조로이 해결되었고 어느덧 난 이 병실에서 배변 처리의 달인(達人)이 되어 있었다.


기침이 잦아지면서 가래를 뱉어내야 했는데, 곽 휴지통 안의 휴지가 하룻만에 동나버려 빈 통이 되기 일쑤였다. 연이은 재채기 이후에 가래 끓는 소리가 나고, 입속 그득한 객담(喀痰)을 휴지로 닦아내고 나면 진땀이 났다. 평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호흡기 질환의 무서움을 호되게 겪고 있는 것이다. 겹으로 되어 있는 휴지 한 장으로 가래만 닦아내기가 아까워 이를 반으로 잘라 보았는데, 자르는 방향이 종이 휴지의 결과 맞지 않았던지 고르게 찢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모로 방항을 돌려 찢어 보았는데 휴지의 결을 따라 고르게 아래로 찢어졌다. 유레카! 평상 시라면 어디 쓰잘데조차 없는 일이었겠지만, 스스로 케어할 물품이 부족한 나에겐 정말로 이 조그만 발견이야 말로 슬기로운 병원생활의 한 축이 되었다.


물휴지는 위생처리를 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물품이다. 식사 후 식탁을 닦거나 마지막 용변처리를 할 때, 몸에 진땀이 나거나 열을 식힐 때에는 물휴지 만한 것이 없었다. 70매나 100매로 포장이 된 물휴지는 그 쓰임새가 넓어 돌아서면 비닐팩에 물휴지가 남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한 경우가 아니라면 물로 헹구어 다시 써보기로 했다. 굳이 위생적인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면 물휴지는 재활용이 가능했는데, 어느 정도 병원 생활에 익숙해지자 용변처리를 위한 물휴지 사용 말고는, 달리 다른 용도로 물휴지가 필요할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평상시에도 식사를 마치고는 이쑤시개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이가 들면서 치아의 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불량해지고, 오른쪽 위쪽 어금니를 임플란트하고 나서부터는 주위 이빨 사이로 틈이 생겼다. 왼쪽 잇몸에 염증(炎症)이 빈번해지고 위쪽 어금니가 덩달아 크게 흔들리면서 질긴 음식을 씹거나 잘라먹는 역할은 어쩔 수 없이 임플란트 한 오른쪽 어금니의 몫이 되었다.


전원해 온 첫날 첫 식사 후부터 이빨 사이가 자글거렸다. 혀를 뾰족이 하고 틈새를 아무리 힘들여 훑어도 한번 이빨 사이로 깊게 숨어든 음식찌꺼기는 빠져나오질 않았다. 밥과 국, 찬으로 구성된 식단에는 닭가슴살이나 돼지고기, 쇠고기 조림이 함께 나오는데, 그보다는 고춧잎이나 참나무 무침과 같은 나물 음식이 이빨 사이에 쉽게 끼었다. 한번 이빨 틈새로 음식이 끼게 되면, 이후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어서 한동안은 나물 음식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절반도 제대로 못 먹고 음식을 남기기 시작하자 식단을 죽으로 바꾸자는 전갈(傳喝)이 왔다. 영양죽과 함께 나온 이날 음식에 아랑곳없이 눈길을 끈 것은 대나무 젓가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죽은 입맛에 맞아 국과 함께 나온 대부분의 반찬을 남김없이 비웠다. 이제, 솜씨를 발휘할 때가 왔다. 대나무 젓가락을 힘을 주어 반으로 가르는데, 찢어지는 결이 길게 고르지 않고 반토막이 났다. 아마, 대나무를 주재료로 썼다기보다는 일반 나무로 압축한 합성 젓가락에 지나지 않은 듯 보였다. 그래도 젓가락의 바깥 재질은 안과는 다른지 마치 대나무가 쪼개질 때처럼 길게 찢어졌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손 아래 놓인 네댓 개의 이쑤시개를 두고 보자니 만감(萬感)이 교차했다. 마침, 휜 대나무가 다시 펴질 때처럼 탄성(彈性)이 있어 여느 사제 이쑤시개 못지않은 기능으로 내 입속 텁텁함으로부터 청량감을 회복해 주었다.


우리는 평소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산다. 굳이 공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필요한 생필품이 있다면 내키는 대로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일순간 어떤 제약이 가해져 일신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면 이 모두가 고역(苦役)이 될 수 있다. 먹고 싸는 기본적인 행위로부터, 편의를 도모해 주는 일상적인 생필품까지, 행하거나 취함에 있어 이런저런 불편함이 닥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슬기로운 병원생활, 이미 달인의 경지에 가까워졌건만 오늘도 풀 죽어 고개 숙인 한 남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