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의 일이다. 1989년 2월에 고 3을 졸업한 3학년 4반 학생들의 홈커밍 행사가, 포스코에서 도구로 빠져 호미곶 해맞이 광장으로 향하는 임곡 가까운 해안도로변 민가 펜션에서 열렸다. 여름휴가철이라 10여 명 밖엔 참석하지 못했으나, 졸업한 이후로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제자들도 있었다.
반가운 해후(邂逅)를 뒤로 하고 잠시 취기(醉氣)를 식히려고 가까운 바다로 들어갔다. 까치발로 암초 사이를 오가면서 오랜만의 해수욕을 즐겼다. 술김에 팬티바람으로 시작한 물놀이였으니 우리를 바라보는 다른 피서객의 눈길이 마뜩잖아 보였다. 끈적한 바닷물을 헹굴 겸 욕실 안으로 들어갔는데, 발아래로 핏물이 흘러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흥건했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왼발 복숭아 뼈 아래쪽 살갗이 아래로 길게 갈라져 있고 검붉은 피가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샌들을 신고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칼날 같은 암초의 예리한 단면에 살갗이 스치며 마치 칼에 베인 듯 양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우선, 휴지로 지혈(止血)을 하고 나서 상비약을 찾았는데 마침 밴드와 소독약이 비치되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양쪽으로 갈라져 드러난 상처 부위가 만만찮았지만 통증은 별로 크지 않았고, 이내 지혈이 되어 마음이 놓였다. 상처가 깊기는 해도 혈관을 다치지 않고 피부만 살짝 뜯겨 나간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삼재(三災)란 십이지(十二支)로 따지는 불길한 운수를 말한다. 흔히, 나이를 더한 수가 아홉에 이를 때 삼재가 들기 쉬우니 평소 몸가짐을 조신(操身)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어릴 적에 들은 적이 있다. 올해 내 나이가 예순셋이니 말하자면 아홉수에도 걸려 있는 것이다.
추석을 며칠 앞둔 일요일, 할아버지 묘소를 벌초하던 중에 뜻밖의 봉변을 당했다. 양지(陽地) 바른 곳에 무덤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일 년 새 잡풀이 너무 무성하게 자라 여기저기 손볼 데가 많았다. 예초기(刈草機)로 초벌로 잡풀을 쳐내고 있는데 귓전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왼쪽 어깨 아래쪽에서 따끔하는 통증이 느껴졌다. 양손으로 예초기를 잡고 벌초를 하고 있었으므로 고스란히 말벌에 쏘일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옆에서 예초기로 베어낸 풀을 갈쿠리로 끌어모으고 있는 삼촌이 위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칫, 예초기를 손에서 놓쳐버리면 큰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이었다.
말벌의 위력은 대단했다. 벌초를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마저 정수리 주위로 세 곳이나 쏘였는데, 그 자리에 주저앉은 어머니의 안색이 금방 창백해졌다. 왼쪽 어깨 아래쪽이 금방 부풀어 오르면서, 마치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난 후의 압통(壓痛) 같은 통증이 밀려오는데, 통증의 세기는 그 보다 훨씬 더해서 참으려 해도 절로 신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앞 선 두 차례의 횡액(橫厄)은 싫거나 평소 꺼리던 일을 하다가 당한 일이 아니었기에 그저 우연찮은 봉변 정도로만 여겼다.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제자들과 반가운 해후를 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조상에 예를 다하다 불가피하게 일어난 일이었지 않은가. 애초부터 내 머릿속에는 삼재라는 두 글자가 존재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삼재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바로 내게 삼재가 닥친 것이다. 앞선 두 차례의 횡액보다도 더 가혹(苛酷)한 현실이 눈앞에 있고, 아직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까지 발병하자 처음에는 무서운 체념이, 이다음으론 아득한 절망감이 나를 더욱 좌절하게 했다.
눈앞에서 격리병동의 출입문이 열리는데 깜박 현기증이 났다. 방호복으로 무장한 간호사들에 이끌려 이번에도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심하게 몰아치는 바람소리와 바람을 송풍(送風)하는 모터 소리에 놀라 앞을 바라보니, 코일로 된 검정의 커다란 배관과 모터가 요란한 기계음을 내면서 잠시의 멈춤도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며 등으론 식은땀이 흘러내렸는데, 이곳에서 단 하루라도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무엇보다 몸을 고달프게 만들었다.
삼재가 어디쯤에서 끝이 날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문득, 삼재가 의식이 되자 오히려 횡액의 끝이 보이는 듯했다. 이 참에 온갖 의료기구로 내 몸을 스캔하여 건강 상태를 체크했으며, 부실한 몸에서 염증을 몰아내면서 부족한 영양분은 수액으로 보충을 하고 있다. 비록, 어쩔 수 없이 체중과 근력이 감소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체중조절을 위한 다이어트 과정이라고 긍정적인 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삼재는 운명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면에서 기인(起因)한다. 잦은 횡액이 닥쳐옴에도 여전히 행동을 무분별하거나 마음가짐을 조신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횡액이 주어진 횟수에 관계없이 닥쳐올 것이다. 겸허한 마음을 갖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낸다면 악착같은 삼재의 그물막에서 누구든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으로는 바로 나를 혼미(昏迷)하게 할 만큼 압도적인 음압시설이 버티고 서서 마지막 나의 간절함과 속내를 시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