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로나 병동의 전사(戰士)들
코로나 격리병동의 음압실은 처음부터 나를 질리게 했다. 소리에 민감한 나로서는 송풍구를 속을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와 이를 바깥으로 배출하려는 모터의 기계음을 앞으로 7일간 무사히 견뎌낼 것 같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외부 물품을 들일 수 있다기에 급히 막내 여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귀마개 용도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인이어 이어폰과 학생들이 공부할 때 주변의 소음으로부터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귀에다 끼우는 귀마개였다.
배정된 창가 자리에 개인 소지품을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니, 병상 바로 맞은편에는 나보다 이틀 전에 격리되어 입실한 환자가 누워 있었다. 내 나이 또래이거나 서너 살 아래로 보이는 이 환자는 병색이 짙어 보이고 얼굴빛이 무척 어두웠다.
밤이 되었다. 잔기침은 낮보다는 밤이 더 심했는데, 이전과는 다른 고온의 체열이 온몸 곳곳으로 침습(浸濕)을 했다. 진통해열제를 맞으려고 호출벨을 울리니, 간호사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나타나 수습을 한다. 귀에 온도계를 꽂고 체온과 혈압을 측정하더니, 현재의 체열이 38°4이고 혈압은 180을 넘나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코로나 담당의사의 처방을 미리 받아두었던지 약제실에서 환자에게로 진통해열제가 투약되는 과정이 신속하면서 거침이 없었다. 더욱이, 거동이 불편하여 오줌 줄에 기저귀를 차고 있는 맞은편 병상 환자의 용변을 처리할 때도 마치 자신의 피붙이라도 되는 양 불편한 기색조차 없이 능숙하게 뒤처리까지 마무리를 한다. 이전, 입원실에서는 전문 요양사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환자를 케어했지만,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환자의 뒤처리를 할 때는 아무래도 힘이 부칠 수밖에 없어, 자신도 모르게 불평 어린 넋두리를 내뱉곤 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곳 격리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일반 환자를 케어하는 본업에 충실한 가운데서도, 격리병동 출입을 위해 거추장스러운 방호복을 입었다 벗었다를 되풀이하며 환자에게는 조금이라도 귀찮은 기색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환자가 힘들어할 때는 더욱 활발한 목소리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이는 미지(未知)의 두려움 속에 이런저런 번민에 휩싸여 있던 내가 음압실에서의 첫날밤을 무사하게 넘기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이야 말로, 포항을 거쳐 영남대학교 병원 입원실까지 힘든 순간 나를 케어해 주던 여러 간호사들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존재이자, 전장(戰場)의 최일선에서 코로나와 용맹하게 맞서 싸우는 전사 중의 전사였다.
2. 어매
애써 잠을 청하고 있던 늦은 밤이었다. 앞 병상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더니 갑작스레. 환자가 몸을 불쑥 일으켰다. "아이구야, 아이구야!" 나지막이 몇 번이고 되풀이되던 환자의 신음성이 가늘어지더니, 다시 묘한 울림으로 음압실을 진탕(震盪)하고 있다.
나 역시도 처음엔 그랬다. 밖으로 대놓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막막한 앞날이 걱정되자 한숨 섞인 신음성이 절로 가슴을 울렸다. "우짜노? 큰 일 났다!" 이것이 응급실로 들어서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본의 아니게 통화 내용을 엿듣게 되었는데, 맞은편 환자는 암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입원 중 코로나가 발병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7일간의 격리가 끝나면 바로 퇴원 수속을 밟는다고도 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을 넘나들며 암을 표적 치료해 왔지만, 이제 그의 목소리엔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다. 그의 넋두리는 죽음에 임박한 한 인간의 내면을 허무는 절망의 울림이며 죽음을 부르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아, 어매!"라는 가락으로 말이 바뀌더니 흉중의 괴로움을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에게 호소하고 위로받으려 했다. 자리에 다시 몸을 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잠결에도 분명하게 "엄마아, 어매!"라고 되뇌는 소리가 밤이 늦도록 끊이질 않고 계속 이어졌다.
3. 무대뽀 할매
남자들만 있는 방에 여자가 입실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코로나가 발병하여 이곳으로 온 모양인데,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던 때와는 달리, 애초부터 병원에서도 남녀를 구별해서 격리 치료할 요량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 호흡기 환자를 다루기에도 인력이 모자랄 판이어서, 격리병동으로 남녀를 동시 수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할매는 입실한 첫날부터 진상이었다. 얼핏 봐서는, 간호사를 공대(恭待)하고 고마움을 표시할 줄 아는 듯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산소 줄 달기를 거부하더니 호흡기마저 떼 버리고 간호사들에게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살짝 가는귀를 먹어 간호사가 귀에다 대고 큰 소리로라도 치면 오히려 화를 내면서 간호사를 나무라곤 했다.
경증의 치매를 앓고 있는 듯, 자신이 한 일을 금세 잊어버리기도 했다. 실금(失禁)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기저귀 차기를 극도로 싫어했다. 게다가, 대변을 보기가 무척 힘이 들었던지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이며 누구든 용무를 해결해 주면 기꺼이 이 돈을 주겠노라고 큰소리쳐댔다. 한 번은 병상위에서 기저귀를 벗어던지더니 스스로 용변을 해결하려고 했다. 간호사에게 비닐장갑을 청하고는 비닐장갑 낀 손가락으로 자신의 항문을 후벼 파겠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에게 역정을 냈다.
""안된다 카이. 니가 대신 좀 후벼 파라 카이. 간호사란 게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고? 사람 죽는다 카이!"
이를 듣다 못해 간호사가 그만 역정(逆情)을 냈다.
"할매! 내가 할매 딸이에요? 며느리예요? 도대체 왜 이런 일까지 하라고 시켜요? 기저귀에다 일을 보시면 되잖아요."
"참, 못됐다 카이. 저런 간호사는 첨 봤다 카이!"
결국, 당직 수간호사와 남자 간호사의 도움으로 용변처리를 무사히 마쳤지만,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밤이 이슥해질 무렵이었다. 할매가 누워있는 건너편 병상이 부스럭대더니 한참 동안 용을 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미 잠은 달아난 뒤였으므로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할매의 기척을 살폈다. 아슬아슬하게 병상 밖으로 내딛던 발이 더 이상 아래쪽까지 몸을 지탱하지 못하자, 쿵하는 소리와 함께 할매는 그만 낙상(落傷)을 하고 말았다. 호출벨을 울려 상황의 다급함을 알리고, 간호사들을 호출했다. 좀 전 있었던 용변처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혼자 이를 해결하려다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할매는 다친 곳은 없었으나 당장 집으로 연락이 갔다. 결국, 자정을 넘긴 시간에 며느리와 할배가 병원으로 호출되어 본관 8층 병동으로 옮겨 함께 수용이 되었다.
비록 할매는 치매로 인해 진상짓을 했으나, 처음에는 간호사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등 마음이 따뜻한 일면도 있었다. 특히,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서 아들과 며느리, 손주와 통화를 자주 했는데, 오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정감이 흘러넘쳤다. 밭일을 나간 할배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7일간의 코로나 격리 기간이 끝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더니, 결국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 그토록 보고파하던 할배의 품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