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본관 8 병동으로 간병할 가족과 함께 격리가 되고, 맞은편 병상에 자리가 비자 음압 병동으로 온 나흘 만에 새로운 환자가 입실했다. 사실, 내가 온 지 하루 뒤에 코로나가 발병하여 일반실에서 음압 병동으로 격리되어 온 환자가 있었으나, 거의 의식이 불명한 상태였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서 몰아쉬는 숨이 곧 끊어지지 않을까 우려될 만큼 앙상한 몸이 겉으로 보기에도 가냘프기 짝이 없었다.
새로 입방(入房) 한 환자는 기관지에 문제가 있어 호흡이 곤란할 때가 많았다. 나이가 일흔 중반인 이 환자는 서문시장 1 지구에서 오랫동안 포목점을 운영했었는데, 지금은 경영권을 동생에게 물려주었다고 했다. 바나나와 빵을 과자와 함께 간식으로 잔뜩 들고 와서는, 대뜸 먹으라고 권하는데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코로나에 감염되어 이제 막 격리된 환자이고, 난 입방 한 지 이틀 만에 정상체온과 혈압을 유지하면서 이미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어 입장이 서로 다르지 않은가.
저녁 식사를 물리자, 그는 간호사에게 곧장 이쑤시개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환자를 위한 이쑤시개가 간호실에 있을 리 만무했다. 격리 병동으로 들어오고부터는 세 끼 모두 죽을 신청 했는데, 쇠수저로 밥을 먹을 때와는 달리 죽을 먹을 땐 늘 1회용 플라스틱 숟가락과 대나무 젓가락이 제공되었다. 대나무 젓가락을 능숙한 솜씨로 반으로 꺾어, 길고 날카롭게 찢어진 부분을 따로 떼내어 이빨의 틈새를 드나들기 쉬운 적당한 길이로 잘랐다. 생각지도 못했던 네댓 개의 이쑤시개를 손에 들고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데, 그 모습이 의외로 순박해 보였다.
밤이 깊어지자, 길게 대화가 이어졌다. 숨을 쉬기가 매우 불편했을 텐데도 말이 많은 것을 보니 이 사람은 천생 투 머치 토커이다. 대구에서 섬유산업이 한창 흥할 무렵, 당시 중공과 교류가 극적으로 트이게 되자 모택동 인민복을 대량으로 만들어 홍콩을 경유해서 대륙으로 수출했다고 한다. 손에 큰 밑천을 쥐었지만 돈 귀한 줄 모르고 한 세월을 보냈던 모양이다. 젊어서 모아 둔 재력을 바탕으로 그럭저럭 노년을 버티고는 있으나 여전히 돈에 대한 욕심은 없다는 말로 입방식을 겸한 초면의 인사를 서로 끝냈다.
다음날, 날이 새기 무섭게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아침 인사를 건네 온다. 밤 새 단 한 잠 못 이루고 몸을 뒤척거리다 심신이 지쳐있는 내게는 달가울 리 없는 인사치레지만, 무턱대고 말을 건네는 표정이 여전히 해맑다. 곤잠을 자다가도 호흡곤란으로 인한 숨 가쁨으로 여러 차례 간호사를 호출하는 모습을 지켜본 나로서는, 눈 뜨자마자 건네는 그의 섣부른 인사가 뜻밖이긴 했어도 과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여태까지는, 이웃한 병상의 환자를 서로 신경 쓸 여력조차 없는 사람들만 주로 보아왔었기에, 사람 좋아하는 그의 태도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비로소 동료가 생겼고, 입방 한 날짜의 순서를 따지자면 의당 이 방의 방장으로 불러도 무방할 만한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음압 병동에 입방을 하고 난 지 나흘부터는 필요에 따라 산소 줄을 떼어두고 용무를 봐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몸이 자유로워지니, 병상에서 불편한 몸으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다른 환자들의 간단한 심부름을 대신할 수 있었다. 간호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약소한 도움을 환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했지만, 밤이 깊을 때 이들의 동태를 살펴 급히 간호사를 호출하는 일도 의당 내가 해야 할 몫의 하나가 되었다.
병상의 커튼을 젖히자 앞 병상의 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 병상이나, 그 옆에 나란히 자리 잡은 병상 위 환자들의 종아리가 앙상하다 못해 잔뜩 오그라 붙어있다. 슬며시 손을 내려 종아리 살을 눌러보니 장딴지의 근력이 거의 소실되어 마치 물 채운 고무풍선이나 물 먹은 스펀지를 만지는 듯했다. 하의를 벗고 기저귀만 찬 채, 볼품없이 오그라든 종아리로 병상 위를 뒹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하다. 무릇, 이 방의 방장이라 스스로 다짐했으니 힘 자라는 대로 이들을 돕고 싶다. 그동안 나를 속박해 왔던 포승(捕繩)과도 같았던 산소 줄을 이젠 필요에 따라 뗄 수도 있고 거치대 여기저기 걸려 있던 수액이나 영양제의 가짓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이들을 도와줄 일도 생길 것이다.
입방 한 지 나흘, 엉뚱한 생각이 하루를 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