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점심 무렵에 면봉(綿棒)으로 코로나 시료(試料)를 채취(採取)할 때만 해도 내가 코로나에 감염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만, 닷새 동안 곁에서 간병 중이던 아내의 잔기침이 심해지면서 목소리가 건조하게 갈라지고 있는 것이 사뭇 걱정스러웠지만, 잠자리가 바뀌어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을 구실로 삼자 모든 걱정이 한순간에 묻혀버렸다. 달리 오한이 들거나 미각이 사라지고 발열이 시작되면서 인후통이 심해지는 일반적인 코로나 증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하루를 넘겨 28일 점심때가 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간호사가 오더니 관물대에서 개인 소지품을 정리하라는 통보와 함께 내가 코로나에 감염된 사실을 알렸다. 방호복을 쓴 건장한 남자 두 사람이 휠체어에 나를 태웠는데, 사방을 흰 비닐로 여민 장막이 바퀴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휠체어에 오르면서 마치 옴짝 달짝 못하도록 온몸이 결박(結縛)되어 포장(包裝)당하는 느낌이 문득 머릿속으로 전해졌다. 아내는 옆에서 묵묵히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곽휴지와 물티슈, 칫솔과 같은 개인 위생용품을 작은 가방에 담아 말없이 무릎 위에 올려 주었다.
첫날, 격리 병동에서 느꼈던 공황(恐慌) 상태를 벗어나는 데는 일반 입원실에서 음압실로 바뀌면서 담당의사가 바뀐 데 힘입은 바가 크다. 저녁을 죽으로 신청해서 악착같이 먹고 있는데, 방호복을 입은 담당의사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호방한 웃음과 함께 사람 좋은 목소리로 이전의 주치의와 협업(協業)을 유지하면서 폐렴과 코로나를 동시에 치료하려 하니 전혀 걱정을 말란다. 진료 차트를 꼼꼼히 살펴보고 왔는지, 포항에서부터의 병력(病歷)을 줄줄이 꿰며 불안감에 내몰린 환자를 안심시킨다. 듬직한 체구에 비해, 환자의 불안한 심리를 놓치지 않는 섬세한 말투마저도 환자의 신뢰를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4일 차 이후부터는 산소 줄도 필요에 의해 보조 호흡기로 사용을 하고, 체열과 혈압이 정상을 회복하면서 더 이상 진통해열제를 주입할 필요가 없어졌다. 몸이 자유로워지니, 주위 환자들이 신경 쓰였는데 나름 격리실 방장으로 소임을 다하려 애를 썼다. 때로는 말벗으로, 때로는 가벼운 심부름을 대신하거나 비상시에 호출벨을 눌러 이웃 환자들이 불편함을 해소해 주려 애를 썼다. 거동조차 불편한 이들에 비해 나는 정상인이나 다를 바 없었고, 무엇이든 이들에게 도움 될 일을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여전히 불면의 밤에 시달리긴 했지만, 격리기간 4일 차를 넘어서자 남은 3일은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7일째 되던 날은 아침 일찍부터 미리 소지품을 챙겨두었다. 간호사가 들어오더니 환자복을 입은 채로 나를 이끄는데, 이전에 있었던 4층의 호흡기 병동이 아니라 3층 격리 병동 입구를 바로 마주한 일반 병실이었다. 말하자면, 같은 건물 아래층의 반대편 창가 자리를 배정받은 것인데, 우선 눈길은 끈 것은 영남대학교 병동으로부터 저 멀리 고층의 아파트 숲을 품속으로 안고 있는 앞산의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무려 7일 만에 드디어 코로나 격리 병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것이다. 더욱 고무적인 사실은, 코로나 격리 병동에서 나를 보살폈던 간호사들이 계속해서 내 몸을 케어하게 되었다는 점인데, 이들은 7일간의 격리치료를 통해서 누구보다도 내 몸의 변화를 꿰뚫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교롭게도, 영남대학교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는 일반실이든 격리 병동이든 늘 창가 자리를 배정받았는데, 머리를 뒤로 하고 누웠을 때 오른쪽 어깨가 창문이 난 쪽을 향했다. 이 병실은 5인실로, 좌측 옆으로 병상과 다용도 화장실이, 맞은편으로는 3개의 병상이 나란히 놓여 있고, 새로운 이웃들은 각각의 병상에 누운 채 희미한 웃음으로 나를 맞아주었다.
새로운 병실로 옮겨와서도 잔기침은 계속되었다. 다른 병리적(病理的) 지표는 건강할 당시보다도 더 양호했는데, 특히 혈압이 그러했다. 협심증을 않고 있는 나로서는 혈압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는데, 몸의 불편함이 해소되자 180까지 오르내리던 혈압이 130 미만을 휴지하고 있었고, 체열 역시 늘 정상 체온을 유지했다. 폐로 삽관(揷管)한 호스를 통해 폐에 고인 물을 800cc 가까이 일거에 배출한 이후로는 매일 30cc 정도만 밖으로 배출되었는데 이는 별 의미가 없는 수치여서 삽관한 지 4일 만에 호스를 제거한 후였다. 식사도 죽에서 밥으로 바뀌었는데, 입맛이 되살아나 매끼를 거르지 않고 거뜬히 비웠다.
폐에 삽관한 호스를 통해 폐에 고인 물을 일시에 빼낸 후 3일 간 이뇨제를 먹고 몸속에 갇힌 물을 오줌으로 줄줄이 빼내자 오른쪽 발등과 종아리의 부기가 눈에 띄게 빠졌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항생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하고 몸의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근(筋) 소실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양쪽 종아리와 양팔이 그러했는데, 이젠 혈관이 밖으로 도드라져 나올 정도여서 예전과 달리 간호사들이 혈관을 잡는데도 별 어려움이 없을 정도였다.
한 가지 기쁜 사실도 있었다. 수액을 거치대에 달고 바깥출입이 가능해진 것인데, 보름 가까이 내버려 둔 수염부터 정리해야 했다. 1층 편의점에서 면도기와 박카스, 과즙(果汁) 음료를 샀다. 박카스는 그동안 나를 위해 애를 써 준 간호사와 아침식사 후 식기를 대신 날라 준 이웃 간병인을 위한 것이었고, 과즙 음료는 입원한 이후로 꼭 마셔보고 싶었던 샤인 머스캣 과즙이었다.
돌아서 입원실로 오는 발걸음에 기운이 실리면서 마음이 든든해졌다. 막다른 골목길에 내팽개친 것 같던 암울한 심정을 벗어나 드디어 그 끝이 보이는 것이다. 이는 격리실을 벗어난 바로 그날 저녁 있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