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uma. 재해(災害)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을 지칭하는 것으로, 외상(外傷)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 따위가 원인이 되어 외상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의 몸이 저도 모르게 덜덜 떨릴 때가 있다.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제약(制約)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몸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연(敷衍)하자면, 몸이나 심리상태에 과부하(過負荷)가 걸리면 몸이 떨릴 수가 있는데, 이는 경련과는 또 다른 것이다. 예컨대, 신체적인 컨디션과 관계없이 극복할 수 없는 두려움이나 공포에 노출되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떤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극한의 공포에 노출되는 상황이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종교적 분쟁(紛爭)으로 인한 갈등으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흔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참수(斬首)의 현장을 보면, 기세 등등한 칼날 아래 복면을 뒤집어쓴 서방인(西方人)들은 머리를 숙인 채 마치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또 다른 경우는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나 무서움에 노출될 때이다. 공포 영화를 보거나 산장 체험과 같이 의도적으로 장치해 둔 극한의 공포 속에서 몸이 저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반응하는 경우이다. 무서움에 못 이겨 몸이 덜덜 떨릴 때도 있겠지만, 흔히 '몸이 오싹해졌다'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으며, 이는 심리적 반응에 가깝고 살갗이 곤두서는 듯한 몸의 잔떨림을 일컫기도 한다.
폐렴으로 진단이 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몸상태를 스캔할 필요성이 생겼다.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오자마자 MRI 검사를 위한 금식(禁食)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몸상태는 최악에 이르러 있었는데 당장 산소 줄에 의탁해야 할 만큼 호흡은 가빴고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대어 마치 폐부를 쥐어짜는 듯했다. 더욱이,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정상적인 몸상태였더라도 검사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懷疑感)이 있었다.
밤새 목을 태울 듯한 갈증과 싸워가며 7시 40분경, 마침내 MRI 검사대 아래 누웠다. 처음부터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런데, 내 몸이 저도 모르게 떨리고 있는 것은 MRI 검사를 앞두고 있는 심리적 두려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몸이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 제약 때문이다. 양손을 머리 위로 뻗치고 배 위에다 약간의 하중(荷重)이 실린 복대(腹帶)를 두른 채 튜브 속으로 몸이 이동을 했다. 당장, 바닥 면과 등에 틈이 생길 만큼 요란한 기침이 시작되었고 덩달아 몸이 덜덜 떨렸다. 기계음의 지시가 떨어지지 않은 채로 10 여분 간 자기공명(磁氣共鳴) 영상을 찍었다. 잠시 휴지기(休止期)가 이어질 때 이미 내 몸은 더 이상은 불감당이었다. 심장을 제세동(除細動)할 때처럼 요란한 기침이 이어질 때마다 가슴이 크게 진탕(震盪)되어 몸이 위아래로 퍼덕거렸다. 결국 목줄이 제압되어 진퇴양난에 빠진 격투가처럼 손을 아래로 내려 바닥에 탭을 함으로써 완전히 백기(白旗)를 들고 말았다.
이날 아침 MRI 검사 이후로 마치 섬망(譫妄) 같은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면장애가 더욱 심해지고, 집중력이 저하(低下)되었으며 깜박 제풀에 잠을 못 이겨 졸음이 쏟아질 때는 환청(幻聽)까지 들렸다. MRI 검사로 인한 트라우마, 다시 말해 외상성 장애가 시작된 것이다.
코로나 격리 병동으로 옮겨와서 병실 환경이 크게 바뀌자 담당의사가 밤마다 수면제를 처방해 주었다. 11시가 넘어서 주위가 조용해지면 때맞춰 수면제를 복용하곤 했는데 오히려 눈만 멀뚱멀뚱했다. 이럴 땐 병실에서 생활하며 틈틈이 메모해 둔 내용을 바탕으로 병상일지를 작성했는데, 한 편의 글이 완성되면 시간은 이미 새벽에 닿아 있었다. MRI 검사로 인한 트라우마가 컸던 것일까? 수면장애는 하루가 다르게 심해지고 여전히 수면제는 내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 발병으로 인한 7일간의 격리 치료 기간이 끝나고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난 후로는 마음이 한층 더 편해졌다. 그동안 심신을 괴롭혔던 고열과 고혈압이 정상 수준으로 내려앉자 몸에 여유가 생겼던 것이다. 이른 새벽, 나도 모르게 잠깐씩 졸음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으며 어떨 땐 누군가가 식판에 아침상을 차려놓은 경우도 있었다. 단잠을 자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으며, 점심을 먹고 난 후로는 오수(午睡)를 즐기기도 했다.
꿈을 꾸었다. 물 좋은 계곡으로 놀러 갔는데 갑자기 물줄기마다 물이 쑥쑥 줄어들고 있었다.
산 물고기들이 계곡의 바위 위에서 몸을 퍼덕이며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얼른 달려가 손에 잡히는 대로 물고기를 쓸어 담았다. 초등학교 친구가 물가에 텐트를 치더니, 내가 건져온 물고기로 생선찌개를 끌였다. 코끝에서 진한 마늘향과 고춧가루 냄새가 버무려졌다. 비로소 평소 먹던 양념 맛을 기억이 난 것이다. 화들짝, 제풀에 놀라 몸을 일으키니 이미 시계는 다섯 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늦은 가을 이 순간은 짙은 어둠으로 온 사방을 물들이는 시간이었다.
오늘 저녁은 제대로 입맛이 돌 것 같다. 아울러 그동안 나를 짓눌러왔던 지독한 트라우마에서도 한걸음 비켜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밤은 깊고 새 날은 그만큼 가까이에 와 있다. 선반 위에 놓아두었던 수면제를 입속에 훌훌 털어놓고, 오늘은 여느 날보다 더 자신 있게 잠을 청해 볼 것이다.
So, not be worried about me. And, good night everybo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