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내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코로나 격리병동으로 병상을 옮길 때 포항으로 돌아갔다. 간호실로부터 보호자를 급히 찾을 때부터 불길한 마음은 들었지만, 결국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고 말았다. 급히 소지품 몇 개 만을 챙겨 천가방에 넣은 후 휠체어에 앉은 무릎 위로 올려주었는데, 아내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歷歷)했다. 병실을 나올 때는 함께였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아내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덤벙대는 내 성격과는 달리, 아내는 매사에 신중하고 일처리가 합리적이었다. 그런 아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심정적(心情的)으로 큰 혼란에 휩싸여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때맞춰 두 어깨가 흔들리면서 잔기침이 쏟아졌다. 닷새 간의 밀착(密着) 간병으로 아내 역시 코로나 감염이 크게 의심되고 있는 것이다.
격리 병동에 누워 병실의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내의 얼굴이, 큰 아이와 막내의 얼굴과 뒤섞여 눈을 어지럽혔다.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만 것이다. 지금쯤은 포항에 도착해 있을 아내는 막내의 감염을 우려해 안방으로 바로 자가격리(自家隔離)에 들어갈 것이다. 취업 준비로 바쁜 막내는 두어 달 전부터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전공 공부에 몰두(沒頭)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밤 병실을 다녀간 큰 아이는 이른 새벽부터 현장에 나온 인부들을 이끌고 안전교육을 겸한 몸풀기 운동을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공사(工事)를 지휘하고 있을 것이다. 한심한 처지의 나는, 되려 이들을 걱정하면서 되풀이되는 오한과 발열에 시달리며 포획(捕獲)당한 짐승처럼 단 한 평(坪)에도 못 미치는 병상 위를 이리저리 뒹굴고 있다.
돌이켜 보니,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외식을 함께 하거나 술자리를 가진 적이 드물진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큰 아이가 집으로 올 때면, 금요일 아침부터 마음이 설렜는데 막상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는 심중(心中)에 묻어 둔 이야기를 들추거나 밖으로 내뱉은 적이 없었다. 큰아이는 이미 혼기(婚期)에 접어들었지만, 사귀는 사람에 대해 함부로 입 밖으로 발설(發說)할 만큼 성격이 경솔(輕率)하지 않았고, 이는 앞자리에 부모를 앉혀두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 내가 병원에 입원한 후 큰 아이는 크게 당황스러워했다고 한다. 평소 서로 농담처럼 오고 간 말이지만, 가족이란, 며느리든 사위든 간에 자식이 자신의 배필(配匹)을 맞아들여서, 부모의 품에 손주를 안기는 일을 끝으로 완전체의 가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큰아이는 결혼을 위한 로드맵을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려두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유고(有故)로 어쩌면 이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만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칠곡 본가의 안방에는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사진 속에는 유명(幽明)을 달리 한 큰 여동생이 늘 화사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는다. 아버지는 큰 여동생을 유달리 예뻐하셨다. 경증의 치매를 앓아 나날이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아버지는 한 번씩 큰 여동생을 떠올리며, "큰 아는 죽었제? 가시나가 얼굴이 참 예뻤었는데."라며 마치 넋두리하듯 입 밖으로 내뱉으시곤 했다. 이제 가족사진 속 아버지도 이태전 유명을 달리하셨다. 아마 지금쯤은 살아생전 그토록 예뻐했던 큰 여동생의 손을 서로 맞잡고, 천상(天上)의 어딘가에서 그동안 못다 한 유희(遊戱)를 즐기고 일을 지도 모를 일이다.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상념(想念)에 빠져 있던 중에, 제대로 된 가족사진 하나 집안에 걸려 있지 않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굳이 리마인드 웨딩(Remind wedding)이나 가족 중에 특별한 날을 맞아 사진관을 찾아 기념 삼아 찍어 둔 사진이 아니어도 무방(無妨)하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봐도 제대로 된 가족사진이 집안 어딘가에 과연 있기는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그만큼 내 마음은 절박(切迫)했고, 지금 심정으로는, 무사히 병원을 나서는 순간 열일 젖혀두고라도 제대로 된 가족사진부터 찍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아내나 아이들에겐 전혀 뜬금없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선 필히 해야 할 '와나 두(Want to do)'이자 '버킷 리스트(Bucket list)'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온 사위(四圍)가 조용한 지금, SG 워너비의 김진호가 부른 '가족사진' 이 까무러칠 듯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잠잠이 잠재우면서, 실눈을 뜬 양쪽 눈으로부터 시작된 눈물이 양볼을 타고 방울져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