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포항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 와서 닷새 만에 영남대학교 병원으로 전원을 하고, 5일 동안 일반 병실에서 가료(加療)하다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고 음압실에서 7일간 격리가 된 후 다시 일반 병실로 복귀하였다. 그 사이, 가까운 지인들의 자제(子弟) 혼사와 옛 동료 선생님의 부친 부고(訃告)가 있었다. 의당 자리를 함께 하여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같이 해야 할 사람이 감쪽 같이 이 세상에서 지워지고, 그 이후론 아무리 연락을 취해봐도 반응조차 없다. 병상에 누워, 내게 보낸 여러 통의 문자 메시지와 부재중(不在中) 전화를 확인할 때는 정말 속이 상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그러던 사이, 포항에서 고등학교 동기의 자제 결혼식이 있었다. 예식장이 바로 집 가까운 곳에 있었고, 평소 포항 동기들은 부부 모임을 통해 우애(友愛)를 다져왔기에, 결국 아내는 오랜 고민 끝에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예식장에는 포항 동기들 뿐만 아니라 대구를 비롯하여 서울에서도 여러 명의 동기들이 포항으로 내려와 자리를 빛내 주었다고 한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 예식이 끝난 후 뷔페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부터 저간에 있었던 전후 사정을 이들에게 설명해 주느라 진땀이 흐를 정도였다고 했다. 당장, 몇몇 친구들이 그 자리서 바로 안부(安否)를 물어왔는데, 귀에 익은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움이 앞서기보다는 지금의 내 처지가 서글펐다.
저녁이 되어서는 대학 동기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고등학교 때 친구이면서 대학 동기이기도 한 친구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일단, 걸려오는 친구들 전화에 응대(應對)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안부를 묻는 전화가 오면 개의치 않고 받았다. 사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로는 동기들 모임에 무관심하다가, 근래 밴드에 동기 방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묻던 중에 틈틈이 써 둔 글을 하나 둘 게시판에 올리면서 부쩍 사이가 가까워졌다. 올린 글에 줄줄이 댓글이 달리면서 고등학교 동기와는 또 다른 우애를 느낄 수 있었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은연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마침, 오는 11월 26일 토요일에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한국에 나오는 길에 대학 동기모임을 가지면 어떨까 제안을 해서, 내가 나서 포항에서 대학 동기 모임을 주선(周旋)하기로 약속까지 해 둔 터였다. 아직은 약속한 날짜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11월을 훌쩍 넘기고서도 퇴원을 둘러싼 향후 일정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
스스로를 평가하자면, 성격이 일면 급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리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닥치더라도 근거가 없고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을 억지로 자신에게 꿰맞출 만큼 견강부회(牽强附會)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소한 것 하나까지 남에게 의탁해야 할 처지에 이르자 스스로를 기만(欺瞞)하기 시작했다. 부쩍 조바심이 커진 것이다. 지난 새벽 일만 해도 그렇다. 저녁 식사를 물리고 난 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시간을 소일(消日)하다 12시경에 깜박 잠이 들었는데 인기척에 놀라 깨어보니 새벽 4시경이었다. 병상 머리맡의 조명등을 켜더니, 간호사가 금식을 했는지 묻는데, 전날 이와 관련된 그 어떤 통보도 받은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검사를 빌미로 여러 차례 금식을 했었기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금식 여부를 묻는 이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잔기침을 하다가 갈증(渴症)이 나서 입속을 헹구고 난 후 이미 여러 차려 물을 마신 후였기에, 당장 피검사를 하기는 불가능했다. 당뇨가 의심되어 당화혈색소를 검사하기 위해서라는데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결국, 새벽 4시를 기준으로 금식을 시작해서 세 차례의 피검사를 연이어하는데 동의를 했다. 순서에 따라 먼저 1차로 채혈(採血)을 하고, 포도당인 글루 오렌지 주스를 마신 후 30 분 지나 2차 채혈을 한 후에 2시간이 지나 마지막 채혈을 하는 검사과정이었다.
그때부터는 뜬 눈으로 오롯이 밤을 지새야 했고, 한번 달아난 잠은 좀처럼 되돌아오지를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보니 창밖으로 어둠이 물러나면서 시간이 약속된 7시쯤에 이르렀다. 갑자기 간호실과 연결된 벨이 울리더니 피검사 후 포도당을 마셨냐고 묻는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황당했다. 원래 채혈은 간호사가 아니라 전문 채혈사나 의사가 해야 할 일인데, 이번 검사도 인턴이 세 차례에 걸친 피검사를 시간에 맞춰 진행할 거라고 들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간호사가 오더니, 포도당을 마셨는지 다시 물어온다. 1차 채혈조차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데, 개뿔! 화가 났다. 허둥거리며 변명을 늘어놓느라 간호사도 이미 반쯤 넋이 나갔다. 사실, 간호사는 인턴이 1차 채혈을 하고 난 뒤라 생각하고 포도당을 마셨는지 내게 물어온 것이다.
결국, 간호사가 채혈을 대신하는 것으로 피검사가 진행이 되었다. 간호사의 말을 빌자면, 인턴의 일정이 중간에 꼬여버려 다른 병동 환자의 피검사를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피를 뽑는 중에도 간호사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했다. 간호사실에서도 모범 환자라고 소문이 자자하다는 말로 거듭해서 이해를 구할 때는 내 몸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사실, 채혈을 진행 중인 간호사는 내가 코로나 병동에 격리되어 있을 때 내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었다.
마음이 진정되자, 간호사와 나 사이에 걸쳐있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은 바로 내가 해야 할 몫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간호사에게 짜증 부린 일에 대해 사과하자, 그제야 간호사의 얼굴이 밝아지며 머뭇거리던 말투와 행동이 제자리를 찾는다. 1차 채혈 후 포도당을 마시고 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어딘가 숨어있던 졸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30분 뒤 2차 채혈을 하고, 나른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3차 채혈을 해야 할 시간이 임박(臨迫)해 있었다.
결국, 조바심이 문제였다. 끝을 모르는 병원 생활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몸이 서서히 버틸 만한 지경까지 이르자 무슨 일이든지 상황에 맞도록 모든 일을 나를 중심으로 꿰맞추려 했던 것이다. 물론, 앞서의 피검사는 병원 시스템에 오류(誤謬)가 있어서 일어난 일이지 이를 간호사의 잘못으로 몰고갈 일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처음과는 달리 너무나 빠르게 흐른다. 시간이 흘러야 몸은 치유(治癒)가 되고, 또 퇴원의 날이 밝아온다. 그런데, 조바심은 역방향(逆方向)이다. 퇴원이 가까울수록 몸을 키우는 조바심. 오늘은 삿된 조바심이 마음의 평정(平靜)을 허물고, 나와 나를 보살피는 사람 모두를 힘들게 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