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말합니다 l 간병인

병상일지 20

by 박상진

지금 난 아주 슬기로운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슬기롭다는 말 속엔 병원생활의 적응력과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그리고 이웃한 환자, 특히 간병인과의 원만한 관계가 포함되어 있다. 격리병동을 나온 이후로 간병인을 두지 않고 병원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나로서는, 내 몸을 돌보고 있는 의사나 간호사의 전문적인 케어 못지않게, 앞서 말한 슬기로운 생활방식이 스스로를 보살피는데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산소 줄에 의탁(依託)을 해야 하거나 다른 불가피한 이유로 제약을 받게 되면 그때부턴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호흡기 질환과 함께 각종 암과 같은 무거운 질병을 달고 살아가는 복합질환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지금 주위의 환자들이 바로 그러한데, 나와 바로 이웃한 병상의 환우(患友)는 심한 천식과 함께 중추신경에 칼을 댄 전력이 있다. 맞은편 구십 가까운 노인은 혈관에 곰팡이 균이 있어 고열과 함께 호흡곤란에 시달리면서 거의 의식이 없는 상태로 하루 종일 잠만 잔다.


일반실로 옮겨 온 첫날 있었던 일이다. 간호사의 손을 빌리던 격리병동과는 달리, 지금부터는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반납하러 몸을 일으키는데, 맞은편 간병인이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식기를 가로채더니 복도 밖으로 나가버린다. 고맙다는 말이,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는 귀에도 이르지도 못할 만큼 빠른 몸놀림이어서, 아직 제대로 된 입방(入房) 신고조차 못한 내 입장이 정말로 계면쩍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세면(洗面)을 하고 난 후 1층에 있는 편의점부터 찾았다. 면도기와 비누, 물휴지와 함께 박카스를 한 박스 샀다. 간병인을 두지 않고서도 일상적인 병실생활이 가능했으므로, 이제부턴 혹 있을지도 모른 돌발적인 상황만 잘 대처하면 될 일이었다. 이럴 땐 병원생활에 익숙한 간병인의 경험과 도움이 무엇보다도 절실했다.


병실로 돌아오니 간병인의 아침 수발도 거의 끝난 듯했다. 고른 숨이긴 하지만 한 번씩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양손을 가슴에다 모으고, 보조의자에 기대어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 모습이 정겹기까지 하다. 딸이라도 저럴까? 쭈빗쭈빗 박카스를 건네며 좀 전의 호의(好意)에 대해 고마운 뜻을 전하니, 격하게 손사래를 치면서 이를 마다한다. 결국, 이날 아침에 있었던 일을 기화(奇貨)로 해서 부쩍 친해졌는데, 거의 날마다 감이나 샤인 머스캣, 삶은 계란과 베지밀 등을 간식으로 건네주어 지난 손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결국, 정성이 말해주는 것일까? 입원한 지 열흘만에 노인의 병세가 극적으로 호전(好轉)되고 있다고 한다.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혈관 속 곰팡이균의 개체수(個體數)가 현저히 줄어들어 어느 정도 자가호흡이 가능해지면 주말쯤 퇴원도 가능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웃 병상의 환자는 해군 부사관 출신으로, 평소 여러 가지 운동과 함께 필드나 스크린을 가리지 않고 골프 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고 했다. 키가 크고 체구도 건장했기에, 몇 해 전 중추신경에 이상이 생겨 수술까지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 땐 오랜 군생활의 후유증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계절이 가을로 바뀌고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 접어들자 천식이 도졌던 것이다. 우선, 이 환자도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거동(擧動)할 수 없었는데, 아내가 간병을 자처하고 나섰다.


옆에서 지켜본 바로, 아내가 가장 힘들어한 것은 남편의 배변처리였다. 기저귀는 차고 있었지만 양이 많아 밖으로 새어 나오기 일쑤였고, 환자의 몸부림도 심했다. 구린 냄새가 병실을 진동했지만, 남편의 어린양을 다독이며 뒤처리를 하는 아내는, 비록 커튼 건너편에 있어서 볼 순 없지만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남편에게 건네는 말이 고분고분했고 순종적이었다.


밤이 깊어졌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울화가 치미는 듯 보조침대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아내 이름을 부르며 호통을 친다.


"물 좀 도! 니는 내가 이래도 잠이 오나?"


아내의 마음도 덩달아 불편해졌나 보다. 늦은 밤이었지만,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큰 소리로 말대꾸를 한다.


"우짜란 말인교? 내가 당신 몸이 아닌데, 날보고 이카만 우짜노!"


다소 듣기 민망한 말들이 몇 차례 오갔지만, 아내가 남편의 태도를 나무라듯 지적하자 풀 죽은 남편은 뭔가 알 수 없는 말로 구시렁거렸는데, 아무리 귀를 곤두세우고 들어 봐도 들릴 듯 말 듯했다.


남편의 욕창(蓐瘡)이 심해졌다. 피부가 짓무르고 살갗에 홍반(紅斑)이 심해지자, 결국 용변을 볼 때까지는 기저귀를 차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연고를 처방받아 쓰라린 부위부터 도포(塗布)를 하는데도, 연신 아프다고 소리 지르며 엄살이 잦아진다. 물론, 지금 통증을 호소하는 곳은 짓물러진 피부가 아니라, 수술 이후로 약해진 허리 부위이다. 주치의가 다녀가면서 무통주사를 권했는데 이는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아내의 대답이 모호(模糊)하자, 결국 이어진 사나흘 간은 기존의 항생제로 치료가 진행되었다.


결국 돈이 문제였다. 천식으로 인한 기침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피부의 짓물러짐과 허리의 통증은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듯 보였다. 한바탕 부부 사이에 설전(舌戰)이 오고 가더니, 결국 남편의 뜻대로 무통주사를 맞았다. 오랜만에 정신줄을 놓고 잠에 취해버린 남편을 보면서 마치 넋두리하듯 아내가 한마디 했다.


"에고! 돈이 뭐라꼬. 진즉 무통주사를 맞을낀데, 사람만 생고생시켰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닦아주는 아내의 손길이 덩달아 분주해졌다.


부부는 말한다. 평상시가 아니라, 서로에게 느닷없이 닥친 위기를 맞았을 때 말이다. 이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 내 아내가 그랬고, 이웃 병상의 아내가 그랬다.


고맙다는 말은, 마음속에 가둬두어야 할 말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내 놓고 서로를 응원하는 데 사용해야 할 말이다. 부부란 시련(試鍊)을 겪을 때 더욱 단단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