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다

병상일지 22

by 박상진

코로나 병동에 격리된 지 이틀 만에 체온이 37° 이하로 떨어지고 혈압도 수축기(收縮期)가 130 미만을 유지하면서 몸이 편해졌다. 폐렴 치료 중에 코로나에 감염되었으니, 소위 말하는 코로나 위중증 환자로 병세가 악화될 여지가 차고도 넘쳤다. 사실, 음압실에서의 첫날밤은 최악이었다. 체온이 40°에 육박하고 혈압이 180을 웃돌면서 몸은 발열과 오한으로 사지(四肢)가 오그라들 듯했다. 진통해열제를 투약하고 약효가 나타나기 시작하기까지 1시간은 몸은 고달프기 그지없어서, 자칫하면 정신줄을 놓을 정도였다. 병상위를 이리저리 뒹굴며 씨름하다 보면 머리에서 시작된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흐르다가 배갯잎을 흠뻑 적시고, 가슴팍과 배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환자복 윗도리의 단추를 풀어 달구어진 몸을 식혀야 했다. 첫날밤, 격리병동에서 치른 단단한 입방(入房) 신고식이었다.


다음날 새벽, 병상의 모서리 쪽으로 머리를 뉘고 몸은 사선(斜線)으로 잔뜩 구겨지고 오그라든 채, 항생제를 달러 온 간호사의 인기척에 놀라 깜박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몸은 생각과는 달리 개운했다. 간호사가 발열체크를 하더니 정상 체온임을 알려준다. 수축기의 혈압도 130 아래여서 몸이 가리키는 지표(指標)는 모두 정상이었다. 이날부터였다. 이어진 격리기간을 포함해서 7일 만에 일반실로 옮기고, 다시 한 주가 더 흐를 때까지 몸에서 탈이 난 적이 없었다. 입맛을 되찾아 죽을 밥으로 대신했으며, 함께 차려 나온 반찬까지 남기는 법이 없었다. 다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잔기침이 문제였는데 코로나 후유증이라며 짜 먹는 액상(液狀)의 기침약을 따로 처방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영남대학교 병원에서 치료가 시작되지 5일 만에 열이 잡혀 몸이 정상을 되찾으려던 찰나에 코로나에 감염이 된 것이고, 이 마저도 이틀 만에 극복을 했다. 결국은, 하루에 네댓 개의 항생제를 투약해서 폐렴으로 인한 염증과 코로나의 여러 증세를 몸이 다스릴 수 있도록 기반(基盤)을 마련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실로 그 대가도 만만찮았다. 얼굴은 볼살이 빠져 핼쑥해 보이고, 허벅지와 종아리 살은 근력을 잃었다. 단지, 뱃살만큼은 여전해서 이전과 다름없는 배불뚝이였다. 하지만 더 이상 몸이 고달프지 않아서 견딜만했고, 어차피 이제부턴 폐에서 염증이 완전히 제거되고 몸이 회복될 때까지 지난(至難)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담당의사의 회진(回診) 시간이 빨라졌다. 늘, 저녁 먹을 무렵 하루의 몸 컨디션을 점검하듯 가볍게 되풀이되던 회진이, 어느 날부터는 아침을 먹고 난 후로 시간이 바뀌었고, 폐 CT와 X-ray를 재차 찍어 이전 상태와 비교해서 호전(好轉)이 되었으면 퇴원까지 생각을 해 보자고 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 어쩌면 목요일쯤이면 퇴원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갑자기 한줄기 빛이 내린 듯했다. 몸상태에 극적인 반전(反轉)이 없는 한, 근 4주에 이르는 긴 병원생활의 종점(終點)에 가까워진 것이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다. 이날부턴 스스로 생각해도 표정이 밝아졌고, 수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우던 그 암울(暗鬱) 질곡(桎梏)에서도 벗어났다. 어디든 잠시 머리를 붙이고 한두 시간 곤히 잠을 자는 것은 더 이상 문제도 아니었다. 여전히 밤 깊도록 잠을 제대로 이루진 못했지만, 그럴 땐 그동안 미뤄뒀던 병상일지를 몰아서 쓰곤 했는데,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깜박 잠에 빠져들기도 했다.


특히, 이전과 달라진 점은 안부를 물어오는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뒤늦게, 내가 입원한 사실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놀란 마음으로 전화를 주었고, 이제 퇴원이 눈앞에 이르렀으니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진정시켜야 하는 것은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더욱이, 병원에 입원할 당시부터 여러 가지 일로 나와 연락이 닿지 않아 그동안 애를 태우던 사람들에겐 지금이라도 전화로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나의 비례(非禮)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했다. 특히, 이 사이에 혼사가 있거나 부고(訃告)를 알린 분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


퇴원이란 글자가 맴돌면서 덩달아 희망이 생기고 풀 죽은 어깨가 펴졌다. 병상일지를 쓰면서 브런치 작가님들이 보내준 진심 어린 성원도 큰 힘이 되었다. 특히, 고마나 작가님은 병상일지를 올릴 때마다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진심 어린 댓글을 남겨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깊이 감사를 드린다.


이제 병상일지도 막바지에 이르러 있다. 병상에서 보낸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들락거렸지만 이를 다 잡아두지는 못했다. 아마, 나의 생에 있어 다시 있어서는 일될 일이지만 이 또한 이제 내 삶의 이력(履歷)이며 앞으로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끝이 보이긴 하지만 그 너머의 삶에 대해서도 경외감(敬畏感)을 갖게 된다. 말하자면, 앞으로는 더욱 겸허(謙虛)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새벽이 멀지 않으니, 이제 희망으로 가득 찬 새날이 곧 밝아 올 것이다. 암울했던 어둠이 걷히자 이제 그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