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고비

병상일지 23

by 박상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고비가 따른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삶이 있다면, 더러 그럴 수도 있겠지만, 더없이 행복한 삶이라고 정의를 내려도 무방할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 삼재(三災)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삶의 난관(難關)을 미리 예상해서 이를 슬기롭게 피해 갈 수 있도록 경계(警戒)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어쩔 수없이 부딪혀야 할 고비도 많다. 자격을 갖추기 위한 각종 시험이나 상급 학교로의 진학을 위해선 힘든 일임을 뻔히 알면서도 누구든 도전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떤 사람에겐 난관일 수도 있으나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거쳐가야 할 단순한 통과의례(通過儀禮)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똑같은 가치 개념을 두고도 생각의 차이에 따라 삶을 대하는 방향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과에 따른 보상(補償)이 누구에게는 시련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에겐 행복한 삶으로 이끌 견인차(牽引車)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건강은 또 다른 문제이다. 물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優先順位)에 두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건강으로 인한 시련은 건강을 해치고 난 다음부터 바로 시작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시련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건강이며, 건강에 적신호(赤信號)가 켜지는 것은 바로 이를 소홀히 한 대가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건강으로 인해 사람들이 시련을 겪는 것은 불가피(不可避)한 일이며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라. 이 운명적인 사슬을 피해 간 사람이 도대체 몇 사람이라도 있기는 한 것인가!


이번처럼 폐렴으로 고생하기 전까지 나는 병원 출입을 거의 한 적이 없다. 물론 몇 해 전, 가슴을 죄는 압통(壓痛)으로 인해 협심증(狹心症)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나 병원에 입원까지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가 횡행(橫行)하고 있는 시점에서, 단순한 감기몸살처럼 항생제 한방으로 병증(病症)을 끝낼 만큼 폐렴은 간단한 질병은 아니다. 몸이 전과 다르다는 느낌이 왔을 때, 동네 의원에서 맞은 진통 해열제는 그럭저럭 하루 저녁의 통증은 버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나 다음날 새벽부터 몰아쉬는 숨과 함께 호흡이 가빠지자 더 이상 아픈 몸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포항 병원으로 실려와서, 한 나절을 응급실에서 머물다가 이후 닷새 동안 일반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염증이 양쪽 폐로 급속하게 번져 영남대 병원으로 구급차에 실려 갈 때가 첫 번째 고비였다.


영남대 병원에서의 생활도 처음부터 안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비록 전원(轉院)해 온 이후로 병세가 더욱 깊어져서 일반실과 중환자 실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지만 아내가 옆에서 간병을 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거의 꼭짓점에 이를 만큼 몸을 힘들게 하던 발열과 과호흡(過呼吸), 이를 동반(同伴)한 정신적인 공황(恐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여전히 몸은 고달팠지만, 이곳으로 온 지 나흘째 되던 날부터는 진통해열제 없이도 체온이 정상에 이를 만큼 몸도 정신도 가뿐해졌다. 안개에 가려 감춰졌던 길이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와 그 끝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같은 병실에 입원 중이던 코로나 양성 환자로부터 나도 모르게 코로나에 감염된 것이 바로 두 번째 고비였다. 이는,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고, 하늘과 땅이 뒤집어질 만큼 엄청난 충격이자 공포로 다가왔다. 세상과 단절(斷絶)되어 오롯이 나만의 세상 속으로 갇힌, 말하자면 독 안의 든 쥐 신세가 되고만 것이다. 바로 두 번째 고비였다.


세 번째 고비는, 7일간의 코로나 격리기간이 끝나고 일반실로 옮겨와서도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병실생활이었다. 하루 네 차례 항생제 투여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간병인 없이 스스로를 케어할 수 있을 만큼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불편함이 따를 때마다 병상일지를 기록하며 하루의 고단함을 이겨내곤 했다. 담당의사에게 처음으로 퇴원 이야기를 꺼내보았지만 아직은 손조차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거리에 있는 단순한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입원을 하고 나서 보름을 훌쩍 넘기자 단단하던 마음에 균열(龜裂)이 생겼다. 조갑증(躁急症)이 도진 것이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었지만 심화(心火)가 깊어지자 호전(好轉)되던 증세도 덩달아 멈춰 선 듯했다.


위기는 겹쳐서 올 때 더 위험한 법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전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미연(未然)에 방지할 수 있는 위험스러운 상황도 많다. 돌이켜보니, 포항 병원에서의 초동(初動) 조치가 이루질 때 급성 폐렴 환자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일에 대해 제대로 된 고지(告知)가 있었더라면 병을 더 이상 키우지 않았을 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병증이 서로 다른 환자들이 같은 입원실에 뒤섞여 있다 보니 내가 하지 않았어야 할 일을 그들이 하고 있었고, 당시로는 그게 당연히 해도 될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건 아무리 좋은 항생제를 투여한다고 해서 치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고, 결국 염증은 양쪽 폐로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전이(轉移)되고 말았다.


퇴원을 눈앞에 두니, 비록 지난 일이기는 하지만 세 번의 고비가 도드라진다. 힘들었긴 하지만 이를 잘 이겨냈기에 퇴원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와 있다. 고비란 넘을 때마다 삶의 지혜가 쌓이는 법이다. 온갖 풍파(風波)를 헤치고 서쪽으로 지는 석양의 노을빛이 고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