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오후에 담당의사가 회진을 했다. 현재의 몸상태를 물어보고는, 이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다. 정말이지, 보채는 아이를 달래듯 그저 위로하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사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퇴원 가능성과 퇴원까지의 구체적인 로드맵이다. 정색(正色)을 하고 언제쯤이면 퇴원이 가능할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전혀 뜻밖의 대답이 뒤따랐다. 내일 새벽에 폐 X-ray를 찍고 피검사를 하고 나서, 이전 상태보다 폐의 상태와 혈액검사의 지표(指標)가 양호하다면 그다음 날인 목요일에 퇴원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머릿속에 자욱했던 안개가 말끔히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우선 드는 생각은, X-ray를 찍고, 피검사를 할 때까지는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저녁이면 심해지는 잔기침이 문제였다. 많이 가라앉긴 해도 폐렴에 코로나까지 감염된 데다, 코로나의 후유증 가운데 하나가 쉬이 멈추질 않는 잔기침이라지 않는가. 잔기침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침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폐를 둘러싸고 있는 가슴 언저리가 뻐근했다. 혹, 이게 문제가 되면 어떡하냐? 저녁을 먹고 난 후 잠을 청하려 해도 좀처럼 눈이 감기질 않는다.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내 몸은 내가 잘 알기에, 지난 며칠보다는 몸상태가 확연(確然)히 좋아진 것이 분명했다. 불편한 몸을 일부러 편한 척하여 기계를 속일 수 없듯, 솔직하게 몸으로 반응을 하면 기계 역시 좋은 검사 결과로 응답하리라. 12시가 가까워져서 수면제를 먹고 한층 편안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새벽녘에 누군가가 머리맡에서 오른쪽 팔을 감싸고 있는 듯해서, 벌떡 몸을 일으키니 실습 나온 간호대학생이 혈압과 체열을 측정하고 있다. 평소 같으면 늘 깨어 있던 시간이다 보니 맨 정신으로 순순이 측정에 응했겠지만, 오늘은 곤히 잠을 자고 있어서 일부러 환자를 깨우기가 불편했는가 보다. 건너편 거동(擧動)이 불편하여 늘 잠만 자는 어르신의 혈압을 측정할 때처럼, 조심조심 혈압계의 압박붕대를 감던 중에 그만 흠칫 놀라서 눈을 뜨고 만 것이다. 시간이 벌써 4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이만하면 기대 이상으로 오랫동안 깊이 잠을 잔 것이다. 희한한 것은 그래도 잠이 올까 싶어 잠시 눈을 붙였는데, 간호사가 와서 팔을 흔들길래 깨어나 보니 전날 X-ray 검사를 받으라고 통보(通報)한 다섯 시 반에 이미 가까워져 있었다.
X-ray 검사는 지금껏 해온 것과는 달리, 정면과 측면 그리고 몸을 누이고 상부에서 아래로 흉부를 촬영하는 3단계로 진행되었다. 잠을 편히 자고 나서 인지, 검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호흡이 가쁘다거나 헛기침조차 한번 나오질 않았다. 기분이 좋아지면서 어쩌면 내일 퇴원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마음속에서 솟구쳤다. 병실로 돌아오니 채혈(採血)을 하러 온 간호사가 내가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선 아내에게 내일 퇴원할 준비를 미리 해두라고 일렀다. 병색이 깊은 주변 환자들에게 기쁜 속마음을 감추려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고 표정관리에도 힘썼지만, 맞은편 간병인은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환히 미소 띤 표정으로 화답(和答)을 해주었다.
수요일에 이어 목요일에도 깊은 잠을 잤다. 3주를 훌쩍 넘어서까지 지독하게 이어지던 불면증이 퇴원이 가까워지자 감쪽같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새벽과 아침으로 나뉘어 몸에 달리던 항생제가 오늘 아침엔 아직 처방이 유보(留保)되고 있었다. 물론, 이를 알고자 해서 안 것이 아니고 새벽에 항생제의 주사액이 떨어지자 피가 역류(逆流)되지 않도록 평상시처럼 이를 미리 잠가 둔 것인데, 아침을 먹고서도 간호사가 새 항생제를 바꿔 달러 오지 않아 이를 궁금해했던 터였기 때문이었다.
아침을 물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담당의사가 인턴을 대동(帶同)하고 회진을 왔다. 검사 결과가 궁금해서 미리 질문을 하니, 완전하진 않지만 환부(患部)가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분명하므로 내일 아침에 퇴원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다소 굳은 표정으로 굳이 내일까지 기다려 퇴원을 해야 하느냐고 되물으니, 정 그렇다면 오늘 오후에라도 퇴원할 수 있도록 오더를 내려주겠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마음속으로는 쾌재(快哉)를 불렀지만, 혹시 몰라 내일까지 기다려야 할 내가 모르는 이유라도 있느냐고 다시 예를 갖춰 물어보았다. 담당의사의 말을 빌자면, 아침부터 바로 항생제를 끊고는 내일 퇴원할 때까지 먹는 약으로 대체하여 퇴원 후의 경과를 미리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고 했다. 오해가 풀리자 미안한 마음이 앞섰지만, 전날 자신이 내게 한 말도 있었으므로 오늘 퇴원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기로 마음먹었다. 한주 뒤에 다시 내원할 것을 미리 예약해 두고, 그간 고생했다는 말로 나를 위로하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
아홉 시 반에 포항을 출발한 아내는 열한 시 반 가까이 되어, 비록 병실이 4층에서 3층으로 바뀌었지만 거의 열흘 만에 다시 영남대학교 병원으로 되돌아왔다. 열흘이 지났다 하지만 아내 역시 코로나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갈라지고 잔기침은 여전했다. 수간호사가 가급적이면 오전 중에 퇴원 수속을 해주려고 애를 썼지만, 결국 점심을 먹는 것을 마지막으로 병원생활의 모든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2시 가까이 되어 아내가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정산(精算)하고 병실로 돌아오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간호사가 일주일 분의 약을 처방해와서 건네주었다. 사복(私服)으로 환복(換服)을 하고 병실을 나서면서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던 맞은편 간병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면서 나머지 환자들도 조속(早速)히 쾌유(快癒)하기를 성심(誠心)으로 빌어 주었다.
영남대 병원을 빠져나오면서, 무사히 퇴원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의료진과 헌신적인 보살핌으로 나를 돌봐주었던 간호사들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병원문을 벗어나는 게 일순 송구스럽기까지 했지만, 어차피 인생이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 아니던가.
오던 중에 잠시 쇼핑을 하고, 포항에 도착하니 시간이 거의 다섯 시에 이르러 있었다. 마침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가물가물한 의식으로 집을 나설 때 86kg의 만만찮은 체중을 지녔던 사내가, 지독한 병마(病魔)와 맞서 싸우느라 물경 10kg가 빠진 76kg의 핼쑥한 체구의 낯선 사내로 되돌아온 것이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니 거실 창을 통해, 눈에 익숙한 환호해맞이 공원의 풍경과 막 조명(照明)을 밝힌 Spacewalk의 유려(流麗)한 조형물(造形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돌아올 기약(期約)도 없이 집을 나선 지 무려 24일째 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