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

병상일지 21

by 박상진

입원실에서의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불면증이다. 원래 나는 잠이 많은 사람으로, 굳이 잠을 자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拘礙) 받지 않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었다. 하지만, 스마트 워치로 수면(睡眠)의 질을 측정한 결과를 보면 평소의 생각과는 달리 수면의 질이 별로였다. 이는, 잠을 자다가 틈틈이 깨어나 화장실을 들러야 해서 지속적으로 깊은 잠을 이어가기가 힘들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니, 잠자리가 바뀌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예민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학생들을 인솔(引率)해서 야영활동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거의 2, 3일 간을 뜬눈으로 지새운 적이 적지 않았다. 물론, 학생들의 일탈(逸脫)을 미연(未然)에 방지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모든 학생들이 취침(就寢)에 들기까지 한시라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인생의 추억으로 기억될 만한 소중한 순간이 아니던가. 분위기에 휩쓸려 어쩔 수없이 담배를 입에 대거나 술을 마시기도 하고,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몰래 숙소를 벗어나고자 가진 수단을 다 동원하기도 한다. 이처럼, 학생들과 교사들의 심리적 다툼이 심할수록 학년부장의 책임감은 더해가고 결국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일이 잦아졌다.


포항 병원에서는 왼쪽과 오른쪽 귓속에서 측정한 체온의 평균값으로 진통해열제 주사의 기준으로 삼았다. 평균값 미만이면, 고열과 온몸을 죄었다 풀었다 하는 오한을 고스란히 견뎌낼 수밖에 없는데, 특히 밤이 깊을수록 숨이 가빠지면서 잔기침이 심해졌다. 눈이 까무러친다는 말이 결코 과장(誇張)된 표현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차례의 열풍(烈風)이 지나가면 식은땀이 온몸을 두르면서 얼마 동안 해열 효과가 이어졌다. 이를 틈 타 잠시라도 잠을 청해야 하는데 오히려 눈은 멀뚱멀뚱했다. 결국, 길고 긴 불면의 밤이 이어지는 것이다.


영남대 병원으로 전원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아내의 간병을 받고는 있었지만, 피곤함에 못 이겨 보조(補助) 침상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아내를 밤새 뜬눈으로 지켜보자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욱이, 코로나 병동으로 격리(隔離)가 되고 나서 음압실의 송풍구와 모터가 병실을 진동하는 소리를 듣고는 처음부터 질겁을 했다. 마침 담당의사가 회진(回診)을 왔길래 솔직한 심정을 토로(吐露)하니 이날 밤부터 바로 수면제를 처방(處方)해 주었다.


쌀 한 톨 크기만 한 수면제가 눈앞에 있다. 요즘은 수면 내시(內視)가 대세(大勢)가 되었지만, 아직도 난 구강 마취(口腔 痲醉)로 내시를 한다. 정신줄을 놓는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이제, 이 수면제를 입속에 털어 넣기만 하면 오늘 밤은 까맣게 지워지고 새날의 나를 맞겠지. 저 괴물 같은 송풍구 속을 웅웅 거리는 바람소리와 모터의 기계음도 잊힌 듯 사라지겠지. 정신이 제풀에 까무러칠 수 있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한입에 수면제를 털어 넣었다. 자정(子正)을 훌쩍 넘겨 1시가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그런데, 웬걸? 마치 격한 운동을 하고 소금기 배인 몸이 그대로 말라 식은땀으로 끈적일 때처럼, 며칠간의 불면으로 몸과 정신이 풍선처럼 부풀어 엉망이 되어있는데, 마치 끝이 뾰족한 송곳으로 몸을 희롱(戱弄)하듯 온 전신을 콕콕 찔러댔다. 말하자면,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른 새벽까지 몸을 뒤척이며 돌려 눕기를 되풀이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들려 화들짝 깨어나니 혈당(血糖)을 측정하러 온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나를 깨우고 있었다. 5시를 막 넘어서는, 아직도 이른 새벽이었다.


어쨌든, 두어 시간이라도 감쪽같은 잠을 잤다. 병원으로 실려오고 나서는 처음으로 빠져든 단잠이었다. 결국은 수면제를 복용(服用)할 타이밍인데, 일반실로 옮겨와서부터는 밤이 늦도록 포스트 시즌과 코리안 시리즈의 야구 중계를 시청하거나 웹툰을 보면서 맨 정신으론 잠을 이기지 못할 만큼 눈에 피로도가 커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말해, 잠에 취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분간(分揀)이 되지 않을 때까지 버틸 만큼 버티다가 수면제를 입속으로 털어 넣기를 되풀이했다. 운이 좋을 때는 네댓 시간 잠을 자기도 했고, 중간에 깨었다가 이내 잠을 순조롭게 이어갈 때도 있었다.


수면과 마취는 전혀 별개지만, 강제로 의식을 잃게 만드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오늘은 담당의사가 오더니, 끝까지 몸속에 남아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는 간농양(肝膿瘍)에 대해 언질(言質)을 주었다. 항생제나 약으로 다스릴 수 있으면 퇴원이 가능하나, 그렇지 않다면 며칠 더 경과를 봐서 관절경(關節鏡)으로 농양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심, 아무리 늦더라도 주말쯤이면 퇴원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고, 비록 항생제 투여(投與)를 계속하고는 있었지만 몸이 제기능을 회복한지는 거의 열흘이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수면제를 먹든 먹지 않든, 정상적인 잠만 잘 수만 있다면 나 역시 몸을 깨끗이 완치(完治)하고 나서 퇴원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수면제, 이제 우린 서로 친할 만큼 가까운 사이이지 않은가. 오늘 밤 단잠이 벌써 기다려진다. 기필코, 오늘 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