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릇

병상일지 17

by 박상진

병원에 장기(長期) 입원을 해서 치료를 받을 때는 항생제를 환자의 몸에 투약(投藥)하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액(輸液)이나 스테로이드, 영양제는 항생제의 독성(毒性)을 몸이 버텨낼 수 있도록 보강(補强)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항생제가 몸속의 염증을 무력화(無力化)하는 동안, 사지(四肢)의 근력도 함께 소실(消失)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몸이 나른해지고 병상을 벗어나기가 싫어졌다. 언필칭(言必稱), 병약한 나이에 걸맞은 쇠락(衰落)한 몸이 되고 만 것이다.


보름 가까이 방치(放置)해서, 얼굴 대부분을 가릴 만큼 웃자란 수염을 깎을 때는 살짝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이를 때까지 게으름 탓으로 사나흘 면도를 거른 적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턱선을 따라 손바닥으로 슬쩍 얼굴을 훔치면 기분 좋은 수염의 촉감(觸感)이 손아래로 묻어났다. 어린 시절, 도포 자락을 몸에 걸치고 머리에 상투까지 튼 작은할아버지의 염소수염이 불현듯 기억 속에 떠오르자 설핏 웃음이 피어났다. 집안의 장손(長孫)이라며 자신의 직계(直系) 손자들보다도 더 나를 아껴주셨던 분인데, 하필이면 왜 이런 난감(難堪)한 처지에 놓였을 때 당신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일까.


면도를 끝내고 거울을 보니 지난날의 내 얼굴이 거울 속에 있다. 통통했던 얼굴에서 볼살이 빠져 숨어있던 광대뼈가 살포시 밖으로 돌출(突出)되어 있고, 갸름한 턱선은 목 아래로 턱을 수그려도 더 이상 여러 겹으로 접히질 않는다. 안구(眼球) 주변의 얼굴살이 빠지자 실눈이 커다랗게 제 모습을 찾으면서 젊은 날의 내 얼굴이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다.


자리에 누워 부기가 빠진 양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락펴락하고 있는데, 손등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어릴 적부터 손이 갸름하여 예쁘다는 소리를 귀에 달고 살았지만, 지금 내 손은 영락없는 병약한 노인의 손에 다름 아니다. 손마디의 관절 아래로는 더 많은 주름이 잡혀 볼썽사납기까지 다.


내겐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지독한 버릇이 있다. 손톱 물어뜯기와 손톱 살의 가시랭이를 마냥 내버려 두지 못하는 버릇이 바로 그것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 눈을 피해 문구용 칼이나 뾰족한 샤프심으로 손톱 아래를 후비거나 이빨로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을 때는 상처의 아릿한 통증과 함께 묘한 스릴마저 느껴졌다. 양손의 손톱은 이내 제 모양을 잃었고, 이후론 좀처럼 주머니 밖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부끄러웠던 것이다. 결혼할 때까지도 못 끊던 버릇은 아이들을 기르면서 관심에서 멀어지자 이내 잊혔고, 제 모양을 찾은 손톱은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칠판에 판서(板書)를 할 때 거리낄 게 없었다.


밤이 깊었다. 병상 머리맡의 조명등을 밝힌 후 낮에 눈여겨 두었던 양손의 중지(中指)를 요모조모 살폈다. 손톱 살이 손톱을 둥글게 감싸고 나와 옆으로 굳은살이 배겨있었다. 이빨로 물어뜯으니 아삭하게 살점이 떨어져 나오면서 금세 손톱 사이로 핏물이 스며든다. 잘라진 면이 고르지 않아 잘게 잘게 손톱 살을 이빨로 저몄다. 지난날의 아릿한 통증과 기억이 신랄(辛辣)하게 되살아났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숫제 생사(生死)의 기로(岐路)에 선 지금 바로 옛날 버릇이 되살아난 것이다.


면도를 하고 나서 머리까지 감고 나자 문득 오늘 모습을 셀카로 남겨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비록 병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초라한 처지지만 후일, 이 마저도 내 젊은 날의 기록인 것이다. 오른손에 불끈 힘이 솟았다. 꼭 살아서 나가리라, 온몸에 전의(戰意)가 일면서 주먹을 움켜쥐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창 아래, 테이크 아웃 커피숍의 노란색 네온사인이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새초롬한 불빛을 명멸(明滅)하며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