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들

병상일지 8

by 박상진

포항 병원과는 달리, 영남대학교 병원은 PCR 검사 결과에 따라 음성(陰性)인 경우에는 간병인(看病人)에 의한 환자 수발이 허용되었다. 난 아내의 케어를 받았지만 바로 옆 병상과 그 맞은편 병상은 뜻밖에도 아들들이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에 반해서, 바로 맞은편 병상의 노인은 하루 종일 거의 의식이 가물가물 오가는 채로 전문 간병인의 돌봄을 받고 있었다.


이들보다는 병실 입실(入室)이 늦었으므로 저간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한 한 나절이 지나고 저녁까지 물리고 나서부터는 바로 옆 병상에서 부자간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해도 헝클린 내 머릿속을 제대로 긁어버린 것은 치매(癡呆)를 앓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윽박지르는 말투 때문이었다.


"아부지, 오늘 점심때 뭐 묵었어요?"


대답이 늦거나 얼버무리는 말투에는 여지없이 아들의 질책이 따랐다.


"잘 기억해 봐요! 김치나 명태조림 말고 집에서 가져온 것이 있잖아요. 아까 보니 잘 드시던데. 쇠고기 장조림, 기억 안 나?"


비록 경증(輕症)의 치매이긴 해도 기억이 미치는 파장(波長)은 사람마다 다르다. 잠시 시간을 두더니 아들은 좀 전과 똑같은 질문을 해 대는데, 옆에서 듣고 있자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밤의 불면으로 의식이 가물가물해져 곤잠이라도 자보려고 했는데 뜻밖의 복병(伏兵)을 만난 것이다. 똑같은 질문이 다시 반복되려고 할 때, 모른 척 헛기침을 심하게 해댔지만 아들의 질책(叱責)은 이후로도 한 시간가량 거침없이 이어졌다.


물론, 아버지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기억을 조금이라도 붙들어 두고 싶은 아들의 심정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아들의 속을 후벼 파는 듯한 질책을 받을 때마다 움찔움찔 움츠러드는 아버지의 말투에는 왠지 모를 비감(悲感)이 서려 있어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가슴을 줄곧 아프게 했다.


옆 병상의 맞은편, 나와는 왼쪽으로 사선(斜線)에 자리 잡은 병상의 주인공은 중증(重症)의 호흡 곤란자였다. 이틀 밤을 함께 하는 동안 심한 호흡 곤란으로 간호사의 비상호출벨을 누른 것이 세 번이나 되었다. 아마도, 취준생(就準生)이거나 복학(復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아들은 진득하게 아버지 곁에 머무는 법이 드물었다. 아버지가 호흡이 가팔라지면 스스로 비상호출벨을 울리기도 했지만, 일손이 부족한 간호사들이 때맞춰 제때 와줄 리 만무했다. 이럴 땐 큰 소리로 아들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휴게실이나 대기실에 앉아 TV를 보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을 아들이 병실 속 아버지의 목소리를 애초부터 들을 가능성은 없었다.


병실이 요란해지고 기어코 간호사들까지 호출되면, 이때부터 아버지의 생떼가 시작되었다. 산소 줄의 공급 레벨을 최대치로 올려 달라거나, 날 밝으면 퇴원해서 단 하루라도 집에서 살다 죽겠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언쟁(言爭)이 격화되는 것이 바로 이 시점부터였다.


"아부진 여기 있으면 단 며칠이라도 더 살지만 집에 가면 죽어요. 산소 줄 떼고 살 수 있어요?"


"난 고만 살란다. 여서 죽으나 집에 가서 죽으나 매한가지 아이가?"


"누나랑 의논했는데, 며칠간 경과를 보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봐요. 아부진 오늘 여기서 나가면 당장 죽어요. 죽을 테면 죽으란 말이에욧!"


한바탕의 요란이 진정되면 거짓말처럼 환자의 숨도 다시 골라졌다. 아버지와 아들은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격한 논쟁을 30 여분 간이나 다시 이어가나 싶더니, 아들이 제풀에 스스로 자리를 피하면서 다시 병실에는 평화가 찾아들었다.


오랜 병 끝에는 효자효부(孝子孝婦)가 없다고 했다. 병환으로 피폐(疲弊)해진 마음에서 이들을 볼 때의 내 심정이 그랬다. 하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전문 간병인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란다. 그만큼 간병이란 힘들고 고달픈 일이다. 더욱이 서로의 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부자지간에, 호흡기 질환에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각성(覺醒)시키려 학대(虐待)에 가까운 질문을 두어 시간 되풀이하는 아들이나, 아버지의 삿된 생각을 되돌리려 격하게 충돌하는 아들의 마음이 이 순간만큼은 서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를 위한 사랑! 의기소침(意氣銷沈)해 있는 아버지를 병실로 떠나보내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불어넣으려 애를 쓰던 막내의 애처로운 모습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