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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04. 주차

배려. 잠깐의 기다림, 그 고마움

by 선호

화물운송이 직업이 되고 나서 가장 신경 쓰는 일은 아무래도 주차다.


하루종일 배달을 하면서 한 가구당 소요되는 시간은 짧으면 30초 길면 5분 정도이다. 쿠*이나 c*택배처럼 발전된 전산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배달을 하고 사진을 찍고 문자를 보내고 하는 시간이 다른 택배처럼 빠르지는 않다. 그렇기에 골목길에 대충 주차하고 배달을 갔다가 온갖 클락션 소리와 손가락질을 당하기 일쑤여서 주차는 내 하루 일과에서 꽤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교통량이 많은 번화가라든가 좁은 골목길에 있는 집들은 주차하기가 힘들어 먼 곳에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 배달을 하곤 해서 시간 대비 적은 배송량에 더 지쳐버리곤 한다. 참 희한하게도 지나는 차가 없어서 급하게 대충 주차하고 배달을 할라치면 귀신같이 다른 차가 들어와 비키라고 빠앙! 하며 클락션을 울려댄다. 하지만 가끔은 클락션을 울리지 않고 빨리 갔다 오라고 손짓을 하거나 배달을 하고 차로 돌아왔을 때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허리를 깊게 숙여 꾸벅 인사를 하고 차를 이동시킨다.

이사일을 할 때도 보면 일반 배달 일과 다른 듯 하지만 같은 결이다. 이사하는 집 앞으로 사다리차나 이사용 차가 들어가야 하기에 주차공간 확보가 제일 중요하다. 원하는 공간에 다른 차들이 세워져 있으면 차를 옮겨달라고 전화를 하는데 그 반응이 극과 극이다. 최대한 공손하게 사과하면서 차를 옮겨주십사 전화를 하는데 '이사하시는구나 바로 빼드릴게요'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당신이 뭔데 내차를 빼라 마라야!' 하는 사람도 있다. 아쉬운 건 우리고 강제할 수는 없기에 전화기를 붙잡고 굽신굽신 하며 부탁을 한다. 한참뒤에 나와서 온갖 짜증을 내며 차를 빼주는 사람에게도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럴 때면 '당신네 집 이사할 때도 그렇게 당해봐라' 하며 속으로 욕을 하곤 했다.


오늘 서로 다른 아파트 두 곳의 이사를 했다. 첫 집은 주차공간이 부족한 단지이고 두 번째는 그나마 여유로운 단지였다. 첫 집 주차장에서 여느 때처럼 주차이동 부탁 전화를 하는데 그 차주들의 온갖 짜증을 다 뒤집어쓴 듯했다. 나오는 사람마다 아침부터 왜 전화질이냐고 짜증을 부리며 나와 연신 죄송하다고 허리를 숙였다. 본인들도 이사 올 때 힘들었던걸 알 텐데 왜 이해를 못 해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첫 집 이사를 끝내고 두 번째 아파트 단지에서 전화를 돌릴 때 너무 다른 차주분들 태도에 놀랐다. 다들 '당연히 빼드려야 지요'라며 나와 전화를 돌린 지 2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주차장을 통으로 비워버려서 이사가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배려'라는 단어가 들어왔던 하루였다.


내가 조금 불편하겠지만 이웃을 위해 감수할 수 있음을, 휴일에 일하는 저 사람들을 내 한 번의 귀찮음을 참음으로써 생각해 줄 수 있겠구나 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그 차이가 당장 급하게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겐 크게 다가오기에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 작은 배려를 언제라도 할 수 있도록 나도 항상 마음에 다짐해야겠다고 생각한 하루이다. 그렇게 베풀었던 선한 마음이 언젠가 나에게 다시 되돌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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