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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05. 예의

사람을 상대한다는 것

by 선호

가는 말이 고우면 호구된다.


어린 시절 내가 싫어한 일 중 하나는 아버지의 반말이었다. 평소에는 그러지 않으신데 이상하게 식당에만 가면 식당직원들에게 반말을 하셨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추가하고 할 때마다 나오는 반말에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불편해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면서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오시니 뭔가 이상한 아버지의 태도였다. 뭐가 어찌 됐건 타인에게 반말을 하시는 것이 아들들이 보기 좋지는 않았기에 어머니가 꾸준히 면박을 줘서 지금은 그러지 않으신다. 성인이 된 후 식당이나 선술집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모! 여기 소주 하나'라고 할 때도 나는 '이모님!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단골집에선 말을 놓고 해야 더 친해져서 서비스도 나오고 그런다고 친구들이 말했지만 친구도 아니고 돈을 내고 먹는 손님과 주인 입장이니까 받아주시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딱히 반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타인에게 대화를 하는 것은 어렵기만 하다.


친구나 가족이 아닌 생판 남과 대화를 할 때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상대방 얼굴도 못 쳐다보고 말도 버벅대니 길게 이어가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나 또는 상대에게 목적이 있다는 것이기에 빨리 해결하고 끝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기에 쓸데없이 밑밥을 까는 듯한 말들은 다 쳐내고 본론을 바로 들어가는 편이라 쏭의 말로는 너무 직설적이고 예의 없어 보일 때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시간낭비 하지 않는 예의를 갖춘다고 생각을 하기에 딱히 고칠 생각은 없다. 미사여구를 굳이 넣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다는 태도를 곁들인 말이라면 되지 않을까 라는 입장이다. 가끔씩 쏭이 원하는 길게 밑밥을 깔고 아쉬운 이야기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내가 하기보다는 쏭에게 미루는 편이다. 긴 대화가 끝나고 나면 그렇게 말 못 해서 어떡하냐는 타박을 받곤 한다.


정기 배송을 하는 일이기에 매번 배송을 독촉하는 전화를 받곤 한다. 정기 배송이라곤 하지만 날짜가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열흘 정도의 배송 기한 안에 배송이 완료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이라 매번 같은 날짜에 갖다 주지는 못한다. 날씨가 배송을 못할 정도로 악천후라던가 공휴일이 껴 있으면 그만큼 날짜가 미뤄지는데 그런 것은 배송 기사 사정이고 빨리 배송해 달라고 재촉하곤 한다. 그 전화의 유형은 대충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이번 달 배송이 늦어지는 데 혹시 언제 배송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라고 차분히 물어보거나 '뭐 하는데 여태 껏 배달이 안 와요!' 라며 소리를 지르는 유형이다. 처음 배송 일을 시작하면서 어떤 유형의 사람이던 최대한 공손히 응대하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변하게 되었다. 차분하게 물어보는 사람에게는 나도 차분히 배송 지연의 이유를 설명하고 사과하곤 했지만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게는 딱딱하게 배송 기한안에 갈 테니까 기다리라고 말을 한다. 전화로 욕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을 때에는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올 때도 있었지만 9년 차가 된 지금은 AI처럼 응대를 하며 넘겨버린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가 요즘엔 '가는 말이 고우면 호구된다'라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든 곱게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설사 곱게 보내준 말들이 호구 취급으로 돌아오더라도 그건 상대방의 문제인 것이지 나 스스로가 똑같이 천박해지고 싶지는 않다.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보다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고생한다고 박카스 한 병 손에 쥐어 주는 사람들이 더 많기에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려고 한다. 그렇게 하루 일을 끝마쳤을 때 나 스스로가 마음속에 묻어둘 찝찝함이 없이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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