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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06. 다이어트

점점 조여드는 결혼반지의 압박(?)

by 선호

지금은 과체중이다.


군대 가기 전 동네 친구와 툭하면 아파트 단지 앞 호프집에서 술을 먹곤 했다. 집 앞에서 먹는 술이라 마음 놓고 부어라 마셔라 먹으며 우리의 영원한 우정을 다짐하곤 했다. 가끔 친구 형이 자리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듬직한 덩치를 자랑하던 친구와는 달리 그 형은 너무 말라서 안주 한 점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을 정도였다. 몇 년이 지난 후 그 친구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내 기억 속 성냥개비 같던 형은 만화 슬램덩크의 안감독님 같은 후덕한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씩 웃으며 '너도 결혼하고 나이 먹고 하면 나처럼 될 것이다'라며 소름 돋는 예언을 했다. 그때는 그 말이 현실로 벌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그 형의 배를 두드리며 장난을 쳤었다.


대학로에서 일을 할 시기에 그 날 공연이 끝난 후, 밤마다 그렇게 술을 퍼마셨지만 살은 찌지 않았다. 64kg 정도를 유지하면서 스키니 청바지에 컨버스를 신고 다녔다. 극장 건물에 있던 헬스장에서 한 달 정도 운동을 해보긴 했지만 '아 나는 근육이 안 붙는 스타일이구나'라는 생각에 그만두고 그냥 시간 나면 성곽길이나 걷고 경희궁, 경복궁 돌담길을 걸으며 이런 게 운동이다 하고 살았다. 첫 연애에 실패하고 나서 몇 달간 안주도 안 먹고 깡소주만 먹던 기간에는 59kg까지 빠져서 오히려 주변 지인들의 걱정을 사곤 했다. 살이 막 찌는 것은 나와는 별개의 일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서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결혼 후 저녁은 쏭과 함께 하는 술과 안주의 연속이었다. 둘 다 술을 좋아하기에 저녁밥에 반주는 필수이고 저녁밥은 안 먹어도 기름진 안주에 곁들인 술은 꼭 챙겨 먹었다. 야근을 하고 늦은 시간 퇴근을 하더라도 가볍게 하는 한잔의 건배는 빼놓지 않았다.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모유수유를 하는 기간 동안 쏭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무알콜 맥주와 하는 건배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동네 목욕탕에서 잰 몸무게는 70kg를 훌쩍 넘어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건강검진을 받으면 거의 모든 수치가 정상이고 몸무게도 정상 범위에 있었기에 굳이 관리를 해야 할 이유도 할 생각도 없었다. 쏭도 굳이 내가 살이 쪄 보인다는 말을 안 하기도 했고 일도 더 바빠졌기에 그냥 점점 사라져 가는 머리숱만 조금 걱정했지 다른 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제주로 이주하고 와서 본격적으로 살이 찌기 시작한 듯하다. 화물 운송 기사를 하면서 점심을 잘 챙겨 먹지 않다 보니 저녁을 많이 먹게 된다. 점심시간 챙겨 먹을 시간에 하나라도 더 빨리 배송하고 퇴근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살았다. 저녁을 하루의 보상으로 생각하다 보니 저녁은 항상 기름진 고기나 걸쭉한 찌개가 반주와 함께 한다. 그렇게 7년 차가 되었을 때 80kg의 벽을 넘었다. 나는 그렇게 안될 줄 알았는데 목욕탕 저울 위에서 81kg의 숫자를 보고 거울을 봤을 때 예전 친구 형의 저주(?)가 생각이 났다. 어느새 나는 후덕한 아저씨가 되어 둥글둥글한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얼굴이라도 잘생겼으면 모를까 살벌한 마스크에 살까지 찐 수염 덥수룩한 산적이 되어 엘리베이터에서 아이들이나 여자분들이 보면 흠칫하고 놀라곤 한다.


실내 자전거를 사서 스피닝 영상을 틀어놓고 타기도 했지만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하루 일하면서 점심도 거의 안 먹고 거의 2만보를 걷다 보니 저녁에는 파김치가 되어 운동은 할 힘도 의지도 없어졌다. 작년 어느 날인가 다시 크게 마음먹고 실내자전거를 10km를 40여분 동안 탔는데 그 다음날 바로 코로나에 걸려 골골대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요즘 호은이 툭하면 해달라고 하는 삼겹살을 구우면 상추 2장에 쑥갓과 파절이, 양파, 마늘을 놓고 삼겹살은 딱 한 점만 싸서 먹으며 이게 바로 채식 아닌가 하고 외치며 먹곤 한다. 쌈을 크게 한입하고 소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하는 나를 보며 쏭은 기가 막힌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내가 우리 가족 중에서 채소를 제일 많이 먹는다고 주장하면 코끼리도 채식한다는 반격이 들어오기에 별로 효과가 없다.


결혼 후 지금까지 14년 동안 결혼반지를 한 번도 손가락에서 빼지 않았다. 요즘 들어 반지 위아래로 살이 좀 솟아오른 듯해서 반지를 살살 돌려 봤는데 살에 끼어서 잘 빠지지 않는다. 손가락을 붙잡고 아파하며 낑낑대는 나를 어이없는 눈빛으로 보던 쏭이 결국엔 살 좀 빼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운동도 좀 하고 술도 좀 그만 먹고 건강 관리 좀 하라는 잔소리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내가 참 불쌍해진 저녁이었다.


아직은 과체중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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