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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07. 교회

내가 교회에 가지 않는 이유

by 선호

나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곤 했다. 일요일에 아버지가 쉬는 날이 아니면 딱히 오전 내내 뭐 할 것도 없고 친구들이 다 교회에 간다고 하길래 교회에 갔다. 교회에 가면 예배 시간이 따분하기는 하지만 간식도 주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니까 재미있었다. 일요일 오전에 교회에서 놀고 오후에는 퇴근하신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도 가면서 하루가 끝나곤 했다. 안양의 평촌 신도시로 이사 오고 난 후에는 딱히 가지 않다가 고교 진학 후 학교가 미션스쿨이기도 했고 제일 친한 친구가 독실한 신자여서 아파트에 있던 큰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청소년부 예배를 드리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90년대 중반, 성인 중심의 문화가 10대 문화로 서서히 바뀌고 있을 시기였다. 음악도 성인 가요에서 아이돌 문화로 바뀌고 있을 때였고 기술의 발전으로 pc통신과 인터넷이 시작되고 있을 시기였다. 그때 청소년부 예배를 할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주문을 외우는 듯한 랩을 하는 힙합 음악이나 록음악은 악마의 음악이니 청소년들은 듣지 말아야 한다.'라던가 '서태지는 악마 숭배자다' 같은 설교가 이어졌다. 교회뿐만 아니라 학교의 성경 시간에도 비슷한 말들을 학생들에게 하면서 이상한 영상들을 보여주며 지금의 대중문화는 타락의 길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가르치곤 했다. 그러던 와중에 교회에 가지 않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매주 헌금을 천 원씩 내던 나를 본 전도사 한 분이 '돈 없으면 교회 오지 말아라, 천 원내고 밥 얻어먹으러 교회에 오느냐'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 전도사 분이 말실수를 했다곤 하지만 IMF 시기 실제로 가계가 힘들었던 청소년기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기에 그 이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머리가 여물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 '나는 돈이 없으니 교회에 가지 않겠다'라는 가치관을 세워버렸다. 합리화하는 생각일 수도 있지만 변해가는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진실인 양 가르치고 강요하는 모습에 더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쏭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참 독실하신 분이셔서 힘든 생활 중에도 개척교회를 만드시는데 힘을 보태시곤 하셨다 한다. 처갓집 가족 전체가 교회에 다니시다 보니 쏭과 교제를 하고 결혼 전까지 여러 가지 말씀들이 많으셨다. 쏭과 사귀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했었기에 쏭은 이해했지만 집안 어른들을 설득시키는 것은 걱정이 되었다.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 결국 나왔던 종교 이슈에서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장인어른은 아쉽기는 하지만 흔쾌히 그럴 수 있다고 단지 너의 마음속에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시며 결혼을 허락하셨다. 주례를 맡아주신 목사님과 결혼 전에 했던 상담에서도 오히려 목사님이 사과를 하시며 언젠가는 교회에 갔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결혼을 하면서 쏭과 일 년에 두 번은 교회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고 보통 부활절과 성탄절 예배에 가곤 한다.


제주에 와서 쏭은 동네의 작은 개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곤 한다. 작은 교회이기에 신도들이 거의 가족단위로 오고 서로들 끈끈한 친분 관계를 갖는데 나만 교회에 가지 않는 것을 궁금해하시기도 했다. 결국에 또 예전 이야기를 꺼냈고 '저는 돈이 없어서 교회에 가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시지만 이해해 주셨다. 교회 목사님도 나에게 지난 일에 대한 사과를 대신해 주셨고 일 년 중 두 번 교회에 가는 날이 되면 예배 도중에 내가 왔다고 박수를 쳐 주시곤 한다. 교회를 가지 않음에 대한 미안함과 호은이와 쏭을 위해 가끔씩은 교회 점심을 준비하곤 한다. 아침 일찍 나가 오전 내내 점심을 준비하면서 중간중간에 청소년부 간식도 만들어 주는데 다들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 지곤 한다. 적어도 여기에선 돈 없다고 구박을 하진 않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전히 나는 교회를 가지는 않는다.


오늘 이렇게 교회에 가지 않은 이유를 구구절절 쓰게 된 것은 갑자기 쏭이 보여준 한 영상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주면 안 되는 이유를 강연하는 영상을 보여주는데 갑자기 고등학교 때의 그 전도사가 떠올랐다. 영상 콘텐츠가 아이의 뇌에 얼마나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지, TV와 스마트폰이 얼마나 당신의 아이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당장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뺐고 책을 읽고 쓰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들을 몇 분 동안 떠들었다. 그 영상 속에서 강사는 아이에게 기술적 발전에 따른 콘텐츠의 올바른 소비 방법과 능동적인 사용법을 가르치는 미래 교육에 관한 대안은 하나도 없이 스마트 폰은 그저 우리 아이의 전두엽을 갉아먹는 악이자, 하류 노동자로 만드는 길이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면서 어른인 본인은 이미 다 끝난 인생이라 스마트폰을 쓴다고 농담을 하는 모습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 영상을 보여주며 앞으로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통제하겠다고 말하는 듯한 쏭에게 뭐라 한마디 하려다 꿀꺽 삼키면서 이 글을 쓴다. 그렇게 하는 강제적 통제가 챗 GPT로 기획안을 쓰거나, 과제를 하고 유튜브를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갈 방법을 배우는 세대들에게 맞는 교육법이 되겠냐는 것이 쏭에게 하는 내 의견이다. 얼마나 슬기롭게 기술을 써 나아갈지를 배우고 발전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 껴있는 지금 부모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초 학문을 배우는 것에 게으르면 안 되겠지만 스마트 폰의 사용을 단순히 도파민 분비를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렇게 무작정 눌러버렸을 때 튕겨나가는 것은 자녀세대들이 아니라 우리 세대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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