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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03. 고등학교

찬란했으면 좋았을 청춘의 기억

by 선호

초등학교 5학년 늦봄, 서울 근교의 평촌 신도시로 이사를 하였다.


동네 전체가 새로 만들어졌기에 다니던 학교들도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곳들이었다. 계획 신도시에 생긴 학교들이라 초중고 모두 똑같이 큼직한 건물 하나에 누런 흙이 가득한 운동장 하나가 전부였다. 지금과는 다르게 한 반에 기본 50명씩 7~8개 반은 있었던 기억이라 점심시간이나 학교가 막 끝나고 나면 학교 운동장에 공을 차거나 술래잡기 같은 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빽빽이 차곤 했다. 축구 골대는 2개인데 경기장에 공은 네다섯 개가 굴러다니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아이들이 많았는지 세어보기도 힘들지만 내가 하고 있는 게임의 공을 골라내는 재미는 확실했던 기억이다.


조용했지만 나름 폭풍 같았던 사춘기 중학교 생활을 지나 고등학교로 진학 후에는 그저 공부, 공부, 공부 밖에 없었다. 어렵게 들어간 인문계 학교였고 부모님의 기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라 노력 대비 성적이 썩 좋지 않은 가성비 떨어지는 아들이었달까. 하고 싶은 일이나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내지도 찾을 생각도 없이 멍이나 때리고 있는 바보였다. 체벌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가능했던 시기었기에 선생님한테 맞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쪽지시험을 보면 여지없이 발바닥이나 엉덩이에 몇 대씩 맞곤 했다.


신도시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학교였기에 여러모로 다이내믹한 상황들이 많았다. 대선배가 없는 학교들이 많아 누가 이 동네의 싸움 짱이 될 것인가로 동네 지하보도에서 각 학교의 짱들이 싸우고 그때 평촌 안 모든 학교의 소풍 장소인 서울랜드에서는 다른 학교 교복을 보면 괜히 시비를 걸고 다툼이 벌어지곤 했다. 옛날 만화책 '짱'이 종종 현실에서 벌어지곤 했다. 영화 '품행제로'에서 나왔던 개싸움이 대다수였지만 지하보도가 구경온 학생들로 가득 찼던 싸움판에서는 '야인시대'의 김두한과 시라소니처럼 했던 멋진 싸움도 있었다. 나는 그런 걸 보면서 환호하고 소리 지르는 관객 중 한 명이었다.


기독교 학교이기도 했고 여러 가지 부활동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숫기도 없고 열정도 빈약했던 나는 남들이 다 고르고 미달되는 한자부나 독서부 같은 곳에 들어가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 부는 담당 선생님도 의욕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인기쟁이 친구들은 성경부나 방송부, 영화부 같은 데서 하하 호호 즐기는 시간에 구석진 교실에서 선생이고 학생이고 어두운 기운을 내뿜으며 숨어있었다. 학교 축제나 운동회에서도 객석 중간에서 어정쩡한 관객41 정도로 역할로 3년의 고등학교 생활을 마쳤다.


제주시내에 있는 큰 고등학교 교무실을 리뉴얼하는데 업무배정이 되어 하루종일 일을 했다. 1학년 교실에 쌓아둔 물품들을 리뉴얼된 교무실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데 왔다 갔다 하면서 2025년의 고등학교가 새삼 새롭게 보였다. 내 기억 속 98년도의 학교는 삭막한 회색 빛깔의 이미지인데 지금의 학교는 온갖 색깔들이 생동감 있게 펼쳐져 있는 듯했다.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학교에 와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며 웃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청춘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나 청량하게 보이는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보다 나는 왜 저리 찬란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먼저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지만 그 후회는 매우 쓴 맛이었기에 나는 빛나진 못했지만 아들 호은은 나보다 더 찬란한 청춘을 보낼 수 있게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하루였다. 나 역시 지금부터라도 조금이나마 빛이 나는 아빠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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