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가?
하루에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가?
책을 많이 본 사람일수록 풍부한 어휘력을 사용하는 대화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데 더 수월하다고는 배웠다. 아동시절부터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정작 내 머릿속에 있는 말을 쉽게 꺼내 쓰기는 참 어려웠다. 학교나 회사에서의 대화는 물론이고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먼저 말을 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테이블이 나눠질 정도의 인원들이 모이는 술자리에서 내가 앉은자리는 친화력도 말도 재미도 없는 말이 좋아 아웃사이더지 소위 찌질이들 전용 테이블이었다. 마음속, 머릿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맴돌기는 하지만 혹시나 술기운에 말실수할까, 분위기 이상해 질까 하는 걱정에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하고 주구장창 술잔만 들이켰던 기억이다. 아주 나중에야 머릿속 필터를 거치지 않고도 말을 할 수 있는 소수의 친구들이 있을 때만 무슨 말이던지 모두 쏟아낼 수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못했다. 일적으로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조용히 일만 하다가 항상 말이 많던 사수에게 그렇게 사회생활 하면 안 된다는 핀잔을 자주 듣곤 했다. 빈말이라도 하는 인사라던가 일이 한참 힘들어질 때 분위기를 띄우는 농담 같은 거라도 할 줄 알아야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일하는 회사 생활이니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혼이 날 때면 나도 그러고 싶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저 노력해 보겠다는 자신 없는 대답만 할 뿐이었다. 하던 일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익숙해지던 3년 차 정도가 되어서야 말문이 트여 그나마 회사에서 로봇이 아닌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장 후배들이나 사회에서 만난 동생들은 내가 말을 잘 안 하는 것을 좋아했다. 다른 선배들처럼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소문(?) 같은 것이 퍼져서 인간 대나무숲 같은 존재로 고민상담을 하고 싶다는 동생들이 종종 있었다. 주제넘게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하니 나야 술 한번 얻어먹고 상대방은 속이 시원해지고 서로가 그거면 만족이었다.
아들 호은이 세네 살이 되어도 말을 잘하지 못했다. 간단하게 단어를 말하기는 하지만 문장으로 연결해서 말을 하지 못하기에 나와 쏭의 걱정이 컸다. 혹시 우리가 알지 못했던 언어 장애나 자폐까지 생각할 정도로 말을 하는데 어려워하기에 언어치료하는 곳에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 후 선생님께 의외의 말을 듣게 되었는데 호은이 말이 느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느림이 언어적인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수많은 생각을 하고 망설이느라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었다. 호은은 무슨 말을 할지 선택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우리 부부가 느낀 어른의 시각에서는 그걸 모른 채 대답을 할 타이밍이 늦어졌다고 판단하고 말을 못 한다고 생각을 하기에 그 시간차를 좁히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호은은 망설이는 시간을 줄이는 훈련을 부모는 대답을 기다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처방이었다. 몇 주 간의 치료훈련 후 호은은 그동안 못했던 말을 쏟아내듯이 수다쟁이가 되었고 사춘기가 오기 직전인 지금까지도 조잘거림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회사에서는 화물운송과 더불어 이삿짐도 함께하고 있다. 얼마 전 했던 이사에서 내가 하루에 들었던 가장 많은 양의 말을 약 4시간에 걸쳐서 들었다. 이사 고객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이사가 시작하면서 끝나기까지 반나절동안 단 1분도 입을 쉬지 않았다. 물론 본인 집 물건들의 위치에 대한 이야기가 반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그 물건들의 추억이나 자기 집안 사정이나 오늘 하루 일과의 계획들을 쉬지 않고 이삿짐을 싸고 있는 우리에게 떠들었다. 혼자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대답을 해줘야 하는 것이었기에 일을 하고 있던 우리도 곤욕이었지만 이사팀장님은 거의 일을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말을 계속하는 것을 보며 처음에는 싫었다가 나중에는 심적으로 많이 외로우신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고객의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계속 주제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 '누가 내 말 좀 들어주세요'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음속에 담은 말이 너무 많아서 넘치셨나 보다는 생각을 하며 이사가 마무리되었다.
40대 중반을 향하고 있는 나는 아직도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가끔 많이 취하는 날이면 말이 너무 많아진다고 쏭이 투덜대기도 한다. 옛날에는 함께 술을 먹으면 조용히 자기 말을 잘 들어주곤 했는데 지금은 술 취하면 나 혼자서만 말을 계속한다고 섭섭해하는 편이다. 제주에서의 9년 동안 친구를 사귀지도 못하는 그리고 사귀려고도 안 하는 내 입장에서의 변을 하자면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 계속 쌓이고 있나 보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쏭에게는 미안하지만 평소에는 내가 잘 들어주니까 가끔씩 말문이 터져서 쏟아낼 때는 잘 받아줬으면 좋겠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쏭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