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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분 일기-00. 새

한 걸음씩 다시 시작

by 선호

지난 두 달은 너무 바쁜 시간들이었다.


제주로 이주해 화물운송 기사로 일한 지 9년 차로 접어들면서도 아직 제주의 겨울이 이렇게나 바쁜 것에 적응을 하기가 어렵다. 원래 하던 배송들도 연휴가 많아 밀리기도 하지만 제주에만 있는 이사시즌인 '신구간'을 전후로 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두 달여간 휴일에도 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1월 한 달 내내 아들 호은은 감기에 걸려 골골대고 아내 쏭도 몸상태가 좋지 않아 온 가족이 지쳐버린 새해의 시작이었다. 외로운 육지 이주민이라 어디 기댈 곳이 없기 때문에 지치고 힘들어도 이 악물고 버텨야 하는 것에 더 우울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런 핑계로 저녁이 되면 줄여보겠다고 다짐했던 술도 매일같이 한 병씩은 먹고 잠들었다.


방학을 맞은 호은과 함께 어디 놀러 갈 여유도 없는 것이 미안하고, 십 분 이십 분 글을 쓸 시간조차 낼 정신이 없음에 나 스스로한테도 미안했다. 그저 오늘 하루 어떻게든 버텨서 넘겨보자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하루 배송을 끝내고 사무실에 돌아와 퇴근 준비를 하는 와중에 갑자기 운송 하나만 해달라는 전화가 왔다. 1시간도 안 걸릴 간단한 운송이었지만 지친 하루에 추가되는 일에 짜증이 솟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전화를 받는 내 말투의 짜증을 알았을까 운송을 부탁하는 말에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이는 오더에 급하게 짐을 싣고 출발하였다.

그렇게 가는 와중에 멀리 공중에 떠 있는 검은 점 하나를 보았다. 차를 몰고 가까이 가다 보니 그 점은 새 한 마리였다. 새 한 마리가 공중에서 가만히 있는 것처럼 한 지점에서 날개를 펴고 떠 있었다. 해안가에는 풍랑경보가, 제주 산간에는 강풍 경보가 있던 날이었다. 섬답게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있는 와중에 바람 반대방향으로 날아가려고 하지만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날개를 퍼덕이는 순간 뒤로 날아갈 것 같아 날개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렇게 버티고만 있는 듯했다.


새를 지나쳐 운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데 20여분 정도 지난 듯하다. 돌아오는 길에 그 새는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널 만큼 앞으로 전진해 있었다.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듯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나 보다. 그 거센 바람을 버텨내며 자기가 가려고 하는 방향으로 나아감을 멈추지 않았다.


그걸 보면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힘든 것이 진짜 힘든 것인가? 힘든 건가 주저앉고 싶은 건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경보가 있을 만큼 센 바람에 맞서 날아가는 저 새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데 나는 일이 많다는 핑계로, 쉬지 못했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안 하려 하는 것에 부끄러워졌다. 쏭과 연애할 때도, 호은이 태어나고 밤새 침대에 눕지 않는 애를 안아야 했을 때도 아무리 밤늦게까지 야근을 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달려가는데 힘이 들지 않았는데 지금 온갖 핑계를 대며 침대에 누워있으려 하는 것에 반성하게 되었다. 가족을 위해 제주로 가서 뭐든지 하겠다고 한 각오가 무뎌졌음을 새삼 알고 다시 예리하게 갈아보려 한다.


우울이 내 마음을 덮을 때도 있지만 그 각오가 잘라낼 수 있도록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멈춰있는 듯했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그 새처럼 조금씩은 앞으로 나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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