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코스 :사천진 해변-주문진 해변.13.1km
해파랑길 40코스는 사천진 해변에서 주문진 해변에 이르는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연곡천 하구를 지나 잠시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걸으며 바닷가를 떠났다가 영진 해수욕장으로 나오면서 드라마 도깨비로 유명해진 주문진 방사재를 지나 주문진항과 소돌항 주문진 해변으로 이어지는 평탄하고 완만한 길이다.
사천진 해변-연곡 해변- 영진 해변
미역국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조금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맛이 좋았다. 속이 든든해진 것만큼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천진 해변의 그네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간다. 의자 주변에 향나무를 심어 모양을 낸 사천진 해변의 풍경은 늘어진 햇살을 잡아두려는 파도와 햇빛이 밀고 당길 때마다 흰 포말이 되어 빛난다. 타조알을 세워 놓은 것처럼 보이다가 가까이 가보면 도톰한 아이 엉덩이처럼도 생긴 교문암(蛟門岩)은 사천진 해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들 중 하나이다.
교산 허균이 쓴 애일당기에는 교문암 아래에 늙은 교룡이 살다 바위를 깨고 나왔다는 전설이 있다. 교룡은 생긴 것이 뱀을 닮았고 비늘이 있으며, 하늘을 날 때면 물고기떼를 거느리고 다니는 용이다. 허균은 오대산 자락이 바다 쪽으로 뻗은 교산의 자락에서 1569년 태어났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그의 호를 교산이라 한 것은 단순히 자신이 태어난 곳의 지명을 빌려다 쓴 건 아닐것이다. 허균 스스로가 교룡의 삶을 원했기 때문은 아닐까. 국민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바위처럼 단단한 세상의 구태를 깨고 새로운 이상 국가를 세우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교문암에서 교룡이 올라왔다면 그것은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내륙보다는 바닷가에서 용오름 현상이 일어난다. 지표면과 상층의 바람의 방향 차이에 의해 일어나는 용오름은 마치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였을 것이다. 용오름 현상이 일어날 때 물고기들이 주변에 떨어지는 일도 있다고 하니 그 용은 물고기들을 거느리고 다닌다는 전설 속의 교룡이었을 것이다. 교문암 옆의 바위 위에는 우리나라 영해기준점 표식이 세워져 있다. 우리나라 바다영토의 기준을 삼는 점이니 잠시 표석을 확인해 본다. 이 영해 기준점을 따라 독도까지 나가고 그곳을 기준으로 우리 영해의 경계가 명확히 그어져야 한다.
펜션과 커피점이 점점 늘어나는 사천진 해변의 끝자락에 '곳;'이라는 간판을 단 빵집이 있는데 건물의 옥상에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공중으로 향한 계단이 명물이 되었다. 주말이면 사진을 찍기 위해 계단의 입구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강릉원주대학교의 해양과학교육원과 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 입구를 지나 솔밭을 걷는다. 연곡해수욕장의 솔향기 캠핑장에는 철을 가리지 않고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이들이 많다.
연곡천 하구의 모래톱에는 갈매기들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다. 진고개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드는 연곡천은 다양한 생물들의 생활터이다. 봄철 은어로 시작해 황어와 연어가 회유하고, 연곡천 하구의 끝에 있는 사구에는 갯메꽃, 통보리사초, 갯완두 같은 사구식물이 대규모의 군락을 이룬다. 연곡천 하구는 모래 사구에 의해 물길이 막혀 닫힌 하구가 되곤 했다. 그래서 닫힌 하구가 되면 걸어서 하구를 건널 수 있었다. 몇 년 전 하구를 건너다 삽으로 하구에 물길을 내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무얼 하고 있냐고 물으니 하구에 고인 물을 빼내 수위가 낮아지면 물고기를 잡을 거라고 했다. 작은 삽으로 저 많은 물을 빼낼 수 있을까 싶은데 그는 "물길만 내주면 그 다음은 모래가 무너지면서 저절로 물이 빠져나가요."라고 했다. 그날 늦은 오후 그 곳을 다시 지나가며 보니 하루 종일 물길을 판 노력은 옅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그 사람은 어렵게 "물길을 내긴 했는데 처음엔 물이 좀 빠지더니 이내 모래가 물을 빨아들여 물이 나가질 못하네요. 하루 공쳤어요." 그래도 나는 그의 대단한 끈기에 감동을 받았다. 지금은 연곡항 하구에 크게 물길을 터놓아 걸어서는 건널 수가 없다. 그래도 이곳을 지날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연곡천을 건너면 해파랑길은 잠시 바다를 떠나 소나무숲을 따라 걷는다. 해안가의 솔밭이 곰솔로 이루어졌다면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굵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해파랑길의 안내판이 서있는 산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사유지라고 길 한가운데 철책을 세워 놓았다. 철책을 피해 그 길로 가면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조금 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영진리 고분군을 지나 원래의 길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진리 고분군은 도굴의 흔적이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고분 안쪽의 모습을 살펴볼 수도 있다. 다만 이 숲을 여름에 걸을 땐 모기가 많으니 미리 준비를 하고 걸어야 한다.
해파랑길 40코스에는 커피로 유명한 보헤미안 카페가 두 곳 있다. 하평 해변이 끝나고 솔밭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 보헤미안 박이추커피공장과 영진리의 소나무숲길 옆에 자리 잡은 보헤미안 카페이다. 이곳을 지나갈 때면 정성으로 드립 해주는 커피를 한잔 맛보고 간다. 어떤 분야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이의 솜씨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인데, 걸을 때는 집시와 별다를 것 없기 때문인지 커피맛이 더 깊게 느껴진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어 보헤미안이라는 단어에 더 감정적이 되는 걸지도 모른다.
영진 해변-주문진 방사제-주문진항-오리진항-소돌항-주문진 해변
영진 해변에서 멀리 주문진을 바라보며 걷는다. 겨울이면 이곳 바닷가의 모래는 더 심하게 쓸려나간다. 모래의 쓸려나감을 막기 위해 주문진항 근처까지 방사제가 설치되어 있다. 그렇게 좋은 해변 환경이 아닌데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데 바로 이곳이 공유와 김고은 주연의 도깨비를 촬영한 곳이기 때문이다. '쓸쓸하고 찬란하 신 도깨비'라는 홍보 문구에서부터 김은숙 작가의 찬란한 언어들이 곳곳에서 빛나던 드라마였다. "신은 그저 질문하는 자일뿐, 운명은 내가 던진 질문일 뿐, 답은 그대들이 찾아라." 바닷가를 찾은 저 사람들도 무언가 답을 찾아 나온 것일까. 일이건, 시험이건, 투표건 답을 잘 못 찾는 것이 특징인 나지만, 정답을 바란 적도 없기에 그냥 가던 길 계속 간다.
'영진댁' 간판을 바라보며 신리천 하구를 건너 건어물 상가를 지나간다. 정말 많은 건어물 가게가 늘어서 있는 이곳은 겨울철 평일에 들어가면 과분할 정도의 친절을 받을 수 있다. 해파랑길을 걸을 때면 이곳에서 건어물을 사 가방에 챙기곤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또한 친절에 무척 약하다. 어민 수산시장과 방파제 회센터가 회 한 점하라고 유혹하지만 혼자 걸을 땐 회가 아무리 싸도 과욕이 된다는 걸 경험해본 바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오리진의 바다에는 갯바위들이 많은데 변장호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김영란과 윤일봉이 주연한 이 영화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문희와 신영균이 주연한 1968년도의 미워도 다시 한번과는 다른 영화이다. 어릴 적 재개봉관에서 비 내리는 1968년의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해가 환하게 떴는데도 왜 저리 비가 오나 했었는데 디지털화된 요즘은 영화관에서 비 구경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안내판의 배경에 갯바위가 있는데 무슨 조화인지 현장에서 비교해도 어느 곳인지 찾기가 어렵다.
소들이 누워있는 형상의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해 우암(牛巖)이라 불리던 소돌항은 지역주민들의 요구로 2008년 원래 이름인 '소돌'을 되찾았다. 소돌항을 지나면 마을의 바다 쪽으로 특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나타난다. 아들바위이다. 파도와 바람이 파놓은 기묘한 형상의 아들바위는 아들을 원하는 부부가 이곳에서 기도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이곳의 바위에 서낭당을 지어 동제를 지내왔다. 다양한 형태를 한 바위들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상은 신도 떠올리고, 다양한 전설을 품기도 한다. 아들바위도 이런 상상의 힘이 만들어준 이름이다. 반면에 동해의 촛대바위처럼 명확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바위들은 강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그 상징성에 의지하려 또 바위를 찾게 된다.
소돌 해변을 지나 계속되는 주문진 해변은 40코스의 종착점이다. 어두워진 해변을 떠나 주문진 시외버스터미널로 발길을 옮긴다. 해파랑길을 걸을 때마다. 49코스에서 41코스까지는 북에서 남쪽으로 내려온다. 처음 해파랑길을 걸을 때 정해진 습관인데 바꾸지 않고 있다. 버스를 타고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터미널 오거리 앞의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미스터 트롯' 프로그램이 TV에서 방송되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도 일하는 분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TV에만 열중이었다. 트롯을 좋아는 하지만 트롯 경선 방송엔 관심이 없는 나에겐 저 정도 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랴. 식사 후 근처 모텔로 들어왔는데 낡은 방에 앉아 생각해보니 여러 해 전 같은 곳에서 잤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는데 계단에 웬 중년의 남자가 검은 양복을 입고 주저앉아 있었다. 넋이 나간 그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그의 가슴엔 딸로 보이는 예쁜 얼굴을 한 젊은 여성의 영정사진이 있었다. 잠이 잘 오지 않지만 내일은 첫차를 타고 고성까지 가야 해 억지로 잠을 청한다. 낡은 방과 흐린 기억, 떨리는 방 안의 공기가 더 쌀쌀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