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커피솔향과 경포대

39코스 : 솔바람다리 - 사천진해변, 16.1km

by 물냉이

해파랑길 39코스는 솔바람다리에서 사천진해변에 이르는 16.1km의 구간이다. 강릉시의 역사와 관광 명소인 경포호를 중심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안목해변의 커피거리와 송정, 경포로 이어지는 곰솔숲, 경포대와 가시연습지, 사근진, 사천진 해변 등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어 걷기에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다.


솔바람에 배인 커피 향(솔바람다리-죽도봉-강릉커피거리-송정솔숲-강문솟대다리-경포호)


죽도봉을 바라보며 솔바람다리를 건넌다. 남대천 하구에는 얕은 강물에서 두 사람이 투망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투망을 하는 사람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물을 던질 때마다 숭어가 잡혀 오르던 게 기억나는데 오늘 투망하는 사람은 빈 그물을 끌어올리는 횟수가 더 많다. 사람이 바뀌어 실력이 떨어지는 걸까. 아니면 잘 편집된 영상과 삶의 현장 사이의 차이일 뿐일까. 우리는 늘 삶의 강가에 나가 그물을 던지지만 그 그물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할 때가 더 많고 그게 상식이다. 실패는 경험의 축적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보기도 하지만 실망과 낙담은 꽤 오래간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우리의 일상에 특별함은 많지 않다.

솔바람다리와 죽도봉
남대천 하구에서 투망을 하고 있는 사람들

솔바람다리의 바다 쪽에는 짚라인의 외줄이 길게 남대천 하구를 횡단하고 있는 데 점심시간이어서 인지 줄을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죽도봉을 돌아 커피거리 쪽으로 향한다. 강릉항에는 출항을 기다리는 여객선이 출항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날은 바다가 잠잠하고 하늘이 끝없이 파랬었는데 오늘도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다. 하지만 항 밖의 파도는 높다. '오늘 배를 타는 사람들은 멀미로 고생 좀 하지 않을까.' 커피로 유명한 강릉 카페거리에는 다른 해변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젊은 커플들이 많은 것은 커피 향이 주는 매력 때문일 것이다. 푸른 바다의 흰 포말과 커피의 갈색향이 왠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남대천하구를 외줄로 건너는 짚와이어
카페거리 앞 안목해변을 찾은 사람들


송정해변에서 경포해변까지 이어지는 솔숲을 걸으니 다리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송정에서 시작된 해변길은 사천진에 이를 때까지 계속되며 걷는 즐거움을 준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언제든 원하기만 하면 햇빛에 달구어진 모래밭을 걸을 수 있는 길, 사람들의 발길에 잘 다져진 솔밭길은 조용하고 밝다. 솔밭을 이루는 소나무는 해송이라고도 부르는 곰솔이다. 강릉은 해변의 곰솔 숲이 바닷 바람을 한차례 가라 앉히고 육지의 숲에는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어 한번더 바람을 잡아주어 사람들이 살수있게 해준다. 바람을 마주하며 살아온 곰솔은 곧게 자라지 못하고 조금씩 육지 쪽을 향해 굽어져 있다. 이 숲 덕분에 강릉의 소나무들은 더 곧고 굵게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솔숲을 걷는데 이 땅은 사유지인데 일반에 공개한 것이니 조용히 이용해 달라는 안내판을 만났다. 바닷가의 곰솔숲은 해변에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한 것이다. 바닷가이기 때문에 바다의 한 부분으로 누구의 소유공간이 아닌 공공의 장소로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으로 보전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강릉의 해변 솔숲들은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떻게 공유지를 자신의 땅으로 소유권을 등기했는지 알 수 없지만, 몇 사람의 소유지가 아닌 공공의 소유가 되어야 할 땅을 경제성을 내세워 개발하는 행위들이 더 이상 허가되어서는 안된다. 호텔과 펜션이 들어서면 이용객들이야 바다를 독점하니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경포천을 건너는 강문솟대다리에는 소원을 비는 이들이 던져 놓은 동전이 조각물 주변에 쌓여 있다. 강문은 '진또배기'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진또배기는 솟대의 강원도 말이다. '짐대+박이'의 합성어인 진또배기는 강문지역 사람들이 대관령 쪽에서 떠내려온 짐대를 건져내어 제사를 올리면서 강문동을 수호해주는 솟대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커피커퍼박물관'이 있는 강문 네거리에는 조형미가 뛰어난 오리들이 앉아 있는 여러 개의 진또배기가 자리 잡고 있다. 잠시 해변길을 벗어나 진또배기에 여정의 건강한 마침을 기원하고 경포해변을 향한다. 시간이 난다면 커피커퍼박물관에 들러 커피를 만드는데 이용되는 다양한 도구들을 감상하고 드립커피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도 괜찮다. 박물관의 주인분이 전 세계를 돌며 커피와 관련된 도구들을 모은 열정을 마주하는 덤도 있다.

강문동의 진또배기
커피커퍼박물관의 전시실


가시연꽃 피는 경포(경포호-경포가시연습지-경포대-경포해변)


경포호는 빙하기 때 형성된 석호이다. 석호는 화강암을 기반암으로 하는 지역에서 생긴 모래가 바다로 향하는 하구를 가로막아 생긴 호수이다. 경포호는 경포천에서 유입되는 오염된 물과 해수가 만나면서 악취가 날 정도로 오염이 심했었다. 하지만 경포호 복원사업을 통해 경포천의 물길을 돌리고 농경지를 습지로 복원하면서 다시 물이 맑아졌다. 습지가 되살아나면서 원래 이곳에 분포하던 가시연꽃이 복원되어 지금은 매년 여름 가시연꽃의 넓은 잎과 SF 영화에서 본듯한 형태의 보라색 꽃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경포호수광장을 지나 천천히 호수를 따라 걸어가면 홍길동과 관련된 조각상들이 이야기 식으로 세워져 있어 즐거움을 더해준다. 경포 호숫가를 걸으며 다양한 조각들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경포호는 관광객보다도 지역주민들이 더 많은 곳이다.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건강을 위해 걷거나 뛰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경포 가시연 습지
경포 가시연습지에 꽃을 피운 가시연꽃


경포가시연습지를 지나기 전 남쪽으로 난 다리를 건너면 허난설헌의 생가터인 초당숲을 걸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채연곡을 떠올리며 솔숲을 거닐면 어디선가 아련히 연꽃 향기가 피어오르는 듯하다.


채연곡(菜蓮曲) 허난설헌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맑은 가을 넓은 호수에 벽옥같은 물 넘실대는데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난주)

연꽃 우거진 곳에 배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님을 만나 물 사이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행여 남이 알까 반나절을 부끄러워하네

경포호습지의 연꽃
연향 가득한 경포호습지

초당숲을 둘러 나와 가시연습지에서 연꽃을 마주한다. 반질거리는 연잎에 고인 물방울로, 향기로운 연향으로, 연밥 사이 날아다니는 잠자리처럼, 얼어붙은 습지에 마른 가지를 떨구는 추상(抽象)으로 연은 사계절 아름다운 식물이다. 나이 든 리기다소나무를 지나 낙락장송 사이로 서있는 경포대를 바라보며 걷는다. 경포호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고 했던가. 하늘에 뜬 달과, 바다에 비친 달, 경호호에 비친 달, 술잔에 비친 달, 님의 눈에 어린 달 누구는 님의 눈동자에 달이 두 개요, 술잔에 뜬달을 마시면 가슴에도 달이 뜨니 일곱의 달을 볼 수 있다고도 한다. 일곱이면 어떻고 열둘이면 어떠랴. 달을 보려면 밤의 경포를 걸어야 한다. 경포호의 야경을 감상하며 달맞이를 인생에 한 번쯤은 해보아야 멋이다.

손성목 영화박물관을 지나면서 경호정, 상영정, 금란정을 지나 노부부가 가끔씩 들러 정원을 손질하는 방해정을 지나면 박신과 홍장의 전설이 담긴 홍장암에 이른다. 볼 것 많고 들를 곳 많아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하루 일정을 써야 하는 경포호를 지나면 순긋 해변으로 이어지는 경포해변의 끝자락이다.

경포호의 야경


경포대의 야경


커피 향 나는 솔숲(경포해변-순긋해변-순포해변-사천진해변)

걷는 것은 맥이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걸음에 맞추어 가슴이 뛰고 천천히 들숨과 날숨이 조화를 이룬다. 걸을 때 무슨 숨 조절이냐고 하겠지만 조화로운 호흡은 우리의 건강을 되살려주는 지름길이다. 안현천하구를 지나 사근진 해변에 이르면서 솔숲은 사라지고 햇살 아래 모래가 반짝이는 해변을 걷는다. 숲은 순포습지가 있는 순포해변에 이르러야 다시 시작된다. 순포해변엔 강릉의 커피붐과 3대 바리스타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는 테라로사가 있어 순포호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잔할 수 있다. 순포해변의 솔숲은 식지 않은 커피의 따스함이 있는 솔숲이다. 아직까지도 찾는 사람이 적어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기도 좋은 곳이다. 잠시 발을 내놓고 햇살을 받아 본다. 모래 위에는 하천을 따라 바다로 나갔다 파도에 쓸려 돌아온 마름 종자들이 자갈처럼 숨어있다.

순포해변의 소나무숲에는 곰솔의 어린 개체가 수없이 올라온다. 순포해변을 관리하는 강릉시는 주기적으로 나무를 잘라버리거나 바닥을 긁어 어린 나무를 없애버린다. 이 나무들은 씨앗에서 발아한 것으로 뽑기에도 그리 힘들지 않아 주변의 곰솔이 없는 바닷가에 옮겨 심으면 좋을텐데 비용 문제 때문일까? 그 방법을 시도하진 않는다. 천천히 숲길을 걸어 사천해변에 이른다. 사천천 하구 남쪽의 소나무숲 옆에는 박수량과 박공달이 공직에서 물러난 뒤 노년을 소요하기 위해 1520년에 지은 쌍한정(雙閒亭)이 있다. 용궁현감과 병조좌랑을 지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은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으며 보냈을 것이다. 쌍한정 앞을 걷고 있는 나는 그들의 한가로움이 부럽다.

사천진항은 물회로 유명한 곳이다. 바다에서 갓 잡은 물고기들을 재료로 사용해 물회가 싱싱하고 맛있을 수밖에 없다. 강릉을 찾은 물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리가 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 나는 장안횟집에 들러 미역국을 시킨다. 걸을 때에는 뜨끈한 국물이 속을 덥혀주고 국에 말은 밥이 속을 든든히 채워준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사천진 바닷가의 그네에 앉아 잠깐 여유를 부려본다. 파도에 맞춰 몸을 흔들면 파도소리와 해변 가득한 햇볕이 완벽한 오후를 만들어 낸다.

사근진 해변의 소나무 잔존림
순포해변의 솔숲과 어린나무들
사천천옆 소나무숲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쌍한정
장안횟집의 미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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