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하시동사구를 아시나요?

37코스(단축코스) : 안인해변 -율다리교.7.8km

by 물냉이

내륙으로 깊게 들어가 돌아 나오는 해파랑길을 대신할 수 있는 단축코스를 찾아 걸었다. 해파랑길 37 단축코스는 안인해변에서 율다리교까지의 7.8km 구간이다. 기존의 코스보다 역사나 문화자원은 부족하지만 짧은 코스 안에서도 다양한 생태문화자원을 만날 수 있다. 37 단축코스는 봉화산과 군선천하구, 염전해변, 하시동사구, 하시동고분군, 월호평들 같은 생태와 문화자원을 만날 수 있다.

해파랑길 37단축코스.jpg 노란색 실선이 기존의 해파랑 길이고, 분홍색 실선은 단축코스이다.


변화의 물결을 견디며(안인해변-봉화산- 염전해변-하시동사구)

어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일까? 몸이 찌뿌둥한 것이 오늘 일정이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늘도 여러 구간을 걸을 계획을 하고 있기에 서둘러 모텔을 나왔다. 안인항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문을 연 곳이 있었다. 이곳에는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 아침을 사 먹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깜빡했다. 들어간 식당은 반찬이 깔끔하고 맛도 좋았다. 제대로 아침을 먹게 되면 하루의 일정도 든든하게 진행이 된다. 먹는 것이 걷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새삼 느낀다.

20200215_073242.jpg 안인항의 아침. 바람이 차갑고 구름이 잔뜩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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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하고 맛있는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던 안인 우리밥상 집과 잘 차려진 식탁

여유로운 마음으로 안인해변을 출발한다. 안인항의 옆에는 해발 60.7m의 나지막한 봉우리인 봉화산이 있다. 봉화산은 동해의 높은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준다. 이 산의 원래 이름은 해령산(海靈山)으로 산의 정상에 봉수대 터와 해령사(海靈祠)가 있다. 해령사는 바다의 영, 즉 해신을 모신 사당이라는 뜻이다. 이 해령사에는 해랑과 김대부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데, 해령사의 주신은 여신인 해랑이며 김대부는 그 남편이다. 해랑은 400여 년 전 강릉부사가 관기와 함께 안인진 바닷가로 놀러 왔다가 관기가 그네를 타다 떨어져 죽자 이 관기를 해령신으로 모신 후에 매 년 두 차례씩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해령사는 삼척의 해신당처럼 나무로 남근을 깎아 황토를 묻힌 후에 제물로 바쳐 왔었는데 김대부와 혼인을 시켜준 이후에는 결혼한 기혼자가 되었으므로 남근을 바치지 않는다고 한다(강릉시사, 강릉문화원). 강원도 동해안에는 해신당에 남근을 바치는 풍속이 여러 곳에서 이루어져 왔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사라지고 삼척의 해신당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소의 낭심인 우낭을 바치기도 했다. 해령산에는 해령사 외에도 산의 중턱에 서낭당이 하나 더 있다. 이것은 다른 어촌 마을에서 바다 쪽에는 해신을 모시는 해신당이 있고, 마을의 안쪽이나 산에는 성황신이나 산신을 모시는 서낭당이 있는 것과 같은 구조라 할 수 있다. 해령사의 규모가 작아 마을에서 동제를 지낼 때는 이 서낭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서낭당에는 토지신, 성황신, 여역신등 세 신을 모신다. 여역은 전염성 질병을 일컫는 것으로 여역신이 마을에 전염성 질병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는 의미가 있다.


20200215_081143.jpg 해령산 중턱에 있는 서낭당.
20200215_081617.jpg 봉화산의 조용한 산길을 따라 걷는다

봉화산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 화력발전소가 있는 군선천하구를 건너 염전해변까지 걸어간다. 염전해변은 현재 화력발전소의 추가 시설을 짓느라 사방을 막아 놓았다. 왜 자꾸 화력발전소가 동해에서 늘어나는 걸까? 원자력은 잘못되면 큰 피해를 주어 설치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우리의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대기오염의 주범인 화력발전소는 왜 자꾸 증가하는 것일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동해안이 미세먼지로 뿌옇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염전해변은 과거에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했다고 하는데 소금을 생산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만한 안내판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관광은 지역을 잘 들여다 보고 그것을 읽어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염전해변에 과거의 기록을 찾아 환경을 훼손하지 않을 정도의 염전을 복원하거나 그것이 어려울 경우 안내판을 설치해 홍보할 필요가 있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설을 만들거나 설치해 관광을 활성화하고자 할 경우, 기존의 자연자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나 가치를 파괴하지 않는 방안을 고민하고, 불가피하다면 정말 신중하게 오래 살피고 논의를 통해 설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20170308_135431.jpg 군선천하구. 숭어나 학꽁치를 잡는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20170308_140203.jpg 염전해변, 비수기에는 철책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군선천 하구의 남쪽은 봉화산의 산자락의 해변과 맞닿는 곳이다. 이곳에 명선문(溟仙門)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군시설에 포함되어 있어 일반인이 접근해 볼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강의 하구에서 멀찍이 보이니 그렇게라도 확인하고 갈 필요가 있다. 명선문은 동해바다의 용왕이 육지로 나올 때 사용하는 출입문이다. 잘 바라보면 바다에서 나와 해령산이라고도 하는 봉화산의 해령사로 올라가는 용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염전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왼쪽으로 곰솔숲이 이어지는데 이 너머에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은 석호인 풍호가 있다. 석호는 동해안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귀한 습지로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다. 하지만 풍호는 인근의 화력발전소에서 사용한 탄 찌꺼기를 버리는 데 사용해 묻히고 말았으며, 나머지도 성토한 후 그 위에 골프장을 지어 놓았다. 발전소 옆에는 아직 물웅덩이가 일부 남아있으며, 골프장의 서쪽에는 습지가 소규모로 남아 있으므로 이곳을 매립하지 말고 잘 보존해야 한다.

20200215_082955.jpg 군선천 하구 남쪽의 산자락 끝에 서 있는 저 바위가 명선문이다. 군사시설 안에 있어 접근이 어렵다.


20200215_083531.jpg 염전해변의 모습과 현재 화력발전소 시설을 짓고 있어 사방이 막혀있는 모습


하시동.안인사구는 환경부의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 사구는 2,400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하며, 오래된 곳은 8,000년 정도 된 고사구가 있다고도 하는데 사실 이 시간을 현장에서 눈으로 읽을 수는 없다. 모래 위에 키 작은 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식물들이 살기엔 그리 쉬운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바닷가에 있는 소나무밭이 뭐 별건가 싶기도 하지만 이런 환경에 살아가는 생물들에게는 이 소나무밭이 생명의 터전이다. 그래서 사구의 생물들은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종이 많거나, 같은 종이라 해도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이런 이유로 사구의 생태계는 약간의 교란이나 간섭만 있어도 쉽게 파괴될 수 있다. 그래서 사구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하고 지키는 것이다. 하시동.안인사구의 경관이 독특해 사진 애호가들이 촬영을 위해 많이 찾는 곳이고, 결혼식을 앞둔 이들이 웨딩촬영을 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도 이곳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여러 번 보았다.


20200215_084539.jpg 사구 입구의 안내시설과 곰솔숲
20200215_090026.jpg 사구의 곰솔숲. 어린 소나무들이 많고, 수령이 있는 소나무들도 키가 낮다.
20200215_090120.jpg 사구지역이 군사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과 곰솔숲
20200215_090208.jpg 사구의 저지습지를 알려주는 안내판. 안내판이 없으면 모르고 지나가기 쉬운 곳이다

하시동.안인사구에는 사구저지습지와 하시동고분군이 함께 있다. 사구저지습지는 사구의 저지대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을 말한다. 사구저지습지에는 갈대나 물억새 같은 습지식물이 분포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곳의 사구저지습지는 물이 자주 말라버려 건조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하시동고분군은 신석기시대의 주거유적이다. 근처의 불화산 능선부에는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있고, 풍호의 남쪽 사구에서는 철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이곳이 과거엔 사람이 살만한 곳이었던 것 같다.

하시동.안인사구 맞은편에 있는 골프장 앞 도로를 따라 걷는다. 푸른 보리밭과 공동묘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시동리 마을로 내려가기 전 소나무숲에 나있는 길이 원래 해파랑길 노선이다. 이 길을 가면 골프장 한쪽에 남아 있는 풍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나는 하시동리 마을로 내려간다.


20200215_090216.jpg 사구 저지습지의 모습. 건조해서 물의 흔적을 보기 어렵다.
20170308_150710.jpg 멀리 골프장 한쪽에 옛 풍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메타쉐콰이어처럼 시원한(하시동사구-하시동리-월호평동-율다리교)

하시동리 마을을 벗어나 400m 정도를 간 후 넓은 농경지가 펼쳐진 월호평들로 걸어간다. 이 들을 1km 정도 걸어야 하는데 여름엔 꽤나 힘들 것 같다. 하지만 긴 거리가 아니니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다. 들길이 끝나는 지점에 월호평동이 있고 이 마을을 지나면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길게 심어진 월호평로를 만나게 된다. 이 길은 강릉비행장과 시내를 연결하는 길이다. 한때 군비행장인 강릉비행장을 민간에서 빌려 강릉공항을 운영했었지만 양양공항이 생기면서 속초공항과 함께 문을 닫았다. 지금은 다시 공군의 18 전투비행단이 이곳을 사용하고 있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길을 걷는다. 원래의 코스를 단축해 걸으니 시간은 짧게 걸리지만 풍호마을의 연꽃단지나 굴산사지 당간지주, 굴산사지 석불좌상, 학산리 서낭당 등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크다. 강릉 청결미 영농조합법인을 지나 우회전해서 400미터를 가면 섬석천을 건너는 율다리교가 있다. 섬석천은 강릉 구정면과 왕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자락에서 발원해 강릉비행장을 가로질러 흐르다 강릉 남대천의 하구에서 합쳐지는 하천이다. 이곳을 37코스의 종점으로 정하고(물론 개인적인 기준이다) 38코스를 계속해서 간다.


20200215_094426.jpg 보리밭이 겨울 들판의 붉은 흙을 가려주는 월호평들을 가로 질러 걷는다
20200215_094628.jpg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월호평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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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가 자라는 월호평들
20200215_100728.jpg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가 있는 월호평로
20200215_100931.jpg 월호평로에는 자전거도로와 걷는 도로가 분리되어 있다
20200215_102937.jpg 섬석천을 건너는 율다리교. 그냥 율다리로 하면 될 것 같은데 지도에 표시된 지명을 따랐다
20200215_102959.jpg 섬석천은 강릉비행장을 가로질러 강릉 남대천 하구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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