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해파랑길,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49코스 : 거진항-통일전망대출입 신고소. 12.3km

by 물냉이

해파랑길 49코스는 거진항에서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까지의 12.3km 구간이다. 석호인 화진포에는 아름다운 석호와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형태를 잃지 않고 주인이 바뀐 별장들을 만날 수 있다. 응봉에 오르면 화진포와 일대의 풍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산길이 어려운 이들은 해안을 따라 바다의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 49코스에서 41코스까지는 북에서 남으로 역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선택했다. 처음 해파랑길을 걸을 때 북쪽으로 올라가다 밤길에 숙소도 못 찾고 방황할까 걱정이 되어 시도한 방법인데 그 후론 계속 이렇게 걷고 있다.


무송대섬과 금구도(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 금강산 콘도-대진항-초도항)

설친 잠을 대충 접어 새벽을 나선다. 거리는 비에 젖어 조금씩 풀어지고 있다. 해가 뜨기 전에 그들은 맥을 놓고 잠시 밝음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거진으로 가는 버스는 5시 30분에 출발을 한다. 터미널에는 20대의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다. 언제부턴가 무엇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가지로 통일되었다. 훗날 현재의 인류를 발굴하면 기형적으로 굽은 등과 펴진 목뼈를 마주할 것이다.

자가용 같은 버스를 타고 거진항에 내렸다. 거진항 위 대진리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어 좀 더 갈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택시를 부르면 거진에서부터 차가 올라오기 때문에 비용은 차이가 나지 않고 차를 기다리는 시간만 더 소비했던 경험이 있다. 거리엔 날이 밝았는데 문을 연 식당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침은 추후 해결하기로 하고 부지런한 택시를 타고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에 도착했다. 빗발이 약해지긴 했는데 우산을 접을 정도는 되지 못했다. 이런 날은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지만 높아진 파도를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오늘은 산길보다는 바다 쪽으로 걸어야겠다.

비 내리는 강릉 버스터미널 앞 건널목
이른 아침 비 내리는 거진항의 거리
통일전망대 출입 신고소의 아침 풍경


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따라 통일전망대 주유소 앞을 지나 마차진 해변으로 향한다. 해변의 철조망 너머로 금강산 콘도와 무송대섬이 보인다. 무송대(茂松臺)라는 이름처럼 섬에는 곰솔이 가득하다. 무송대는 무송 부원군인 윤자운(尹子雲)이 관동지방을 순시할 때 이 섬에 머물렀다 갔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윤자운의 증조는 태조의 회군을 도와 3위의 공신에 오른 윤소종이다. 윤자운은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위해 활약하고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일생을 권력의 중심부에 머무른 인싸로 그가 들렀다고 해서 무송대라는 이름을 지을 정도이니 그의 위세를 짐작할만하다. 그러나 세상에 더 알려진 사람은 윤자운의 조부인 윤회(尹淮)이다. 그는 변계량, 맹사성, 권진, 신장 등과 함께 신찬팔도지리지를 편찬했는데 이는 나중에 세종실록 지리지의 모델이 되었다. 그는 천재형의 사람이었으나 술을 너무 좋아해 늘 말썽을 일으키던 사람이었다. '글별 술별(文星 酒星)' 일화는 그의 대표적인 술과 얽힌 이야기이다. 그는 세종이 술을 하루에 세 잔 이상 마지지 못하게 하자 술잔을 '놋버러기'로 바꾸어 마셨다. 놋버러기는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 넓적한 질그릇인 '자배기'의 한 종류이다. 놋버러기의 주둥이 폭이 한자(30.3cm) 정도 되었다고 하니 소주잔 수를 제한하니 양동이로 퍼 마신 격이다.

금강산 콘도와 마주하고 있는 무송대섬
철책은 곳곳이 떨어져 나가고 있다. 이곳을 철망을 이용해 땜빵하느라 고생했을 군인들이 안쓰럽다
녹슬어 떨어져 나가고 있는 출입문, 국방예산이 안되면 다른 부처의 해변 관리비용이라도 이런데 사용해야 되는 거 아닐까


바닷가의 철책들은 쉽게 녹이 슬고 망가진다. 얼기설기 철조망으로 막아 놓은 철책이 안쓰러워 보인다. 이렇게 관리되는 철책은 여름철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이 안전사고를 당할 위험이 더 높아 보인다. 대진항에 도착하니 항에 어울리는 '00 식당'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문을 연 것이 보였고 마침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식사 가능하냐고 물으니 중년 남성이 '네'라고 한다. 몇 가지 음식을 주문했는데 모두 안된다고 한다. 그럼 어떤 메뉴가 되냐고 하니 거친 말을 하며 음식 안 파니 나가라고 한다. 얼떨결에 쫓겨나 화가 났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2인분을 안 시킨다고 그런 것 같았다. 어쨌든 해파랑길을 걸으며 이런 식의 푸대접을 받은 건 처음이라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아침부터 싸우기도 모하고 오늘은 중간에 나를 찾아올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 서둘러 대진항을 떠난다.

바다로 데크길을 내놓은 대진항 해상공원을 지나 초도 해변을 걷는다. 비 내리는 해변에는 파도가 흉흉한데 한쪽 날개를 모래바닥에 끌고 가는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띈다. 파도 주변을 떠나지 않는 갈매기를 가만히 보니 날개가 부러졌다. 안타깝게도 저 갈매기의 앞날은 밝지 않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생태계에서 부상을 입은 동물은 천적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갈매기를 한참을 바라보다 발길을 옮긴다.

금구도가 눈 앞에 보이는 초도항은 성게가 많이 나는 곳이다. 매년 6월 초에 열리는 축제에는 성게잡이 체험 프로그램도 있고, 금구도로 가는 배도 운행된다. 금구도는 광개토대왕의 릉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섬에 조성된 성벽이나 보호벽, 방파성 등, 이 섬의 인공적인 흔적들이 그 뒷받침을 해주고 있지만,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중국 지린성 지안현의 태왕릉이 광개토대왕릉이라는 학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해가 좋은 날이면 길가는 북어를 비롯한 다양한 생선을 말리는 포장이 된다.
바다에 쇠기둥을 박아 조성한 대진항 해상공원
초도항과 광개토대왕의 왕릉 이야기가 전해지는 금구도


시간이 쉬어가는 화진포(초도항-화진포-화포 삼거리-거진 해안도로 조형 공원-거진항)

초도항을 떠나면 바로 화진포해수욕장이 보이고 바로 화진포 해양박물관이 나온다. 화진포는 석호로 화진포교를 중심으로 두 개의 호수로 나뉘어 보이기도 한다. 금구교를 건너며 바다 쪽을 보면 사구에 의해 가로막힌 화진포의 물길을 볼 수 있다. 금구교의 난간에는 백조 조형물이 앉아 있는데 매년 겨울이면 이곳을 찾는 백조들을 상징한다. 화진포는 이화진이라는 성질 고약한 사람의 며느리가 망부석이 된 전설이 있는 곳이다. 시주를 받으러 온 스님을 괴롭혔다가 집이 호수에 잠기고 뒤를 돌아본 며느리는 돌이 되고 만다는 내용은 태백 황지의 황부자 전설과 같다. 전설이 같은 이유가 호수와 연못이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바다 위에 배가 떠 있는 것 같은 화진포 해양박물관
소나무숲 사이에 있는 고인돌
화진포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김일성 별장, 호박돌로 된 벽체가 눈에 띈다
금구교의 백조상, 화진포에는 고니, 큰고니, 혹고니 등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조성해놓은 금강습지


화진포를 바라보며 물을 따라 걷는다. 맑은 공기가 가슴속까지 밀려들어오고 소나무들이 붉고 화사한 수피를 자랑하며 서 있는 길은 지치지 않는다. 화진포 콘도 주변의 소나무숲에는 김일성 별장과 이기붕 별장, 화진포 생태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호수 안쪽 화진포 역사안보전시관 옆에 있는 이승만 별장까지 하면 화진포는 권력자들의 휴가지로 한 시대를 풍미한 곳이다. 화진포 생태박물관은 규모는 작지만 화석이나 별똥별 등 다양한 주제를 중심으로 기획 전시회를 열어 관람하는 즐거움이 있다. 1층은 지역 생태관, 2층은 생태계 체험관 3층은 기후환경관 및 기획 전시실이 있고 4층은 전망대와 휴게공간으로 되어있다.

화진포 생태박물관의 모습
화진포 생태박물관 전시실 내부의 전시물
화진포 생태박물관 전시실 내부
화진포 생태박물관에 기획전시된 암석표본
생태박물관 안에서 바라본 잔디밭에 있는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

화진포 생태박물관의 잔디마당에는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노래비가 있는데 이 노래를 부른 이시스터즈는 1964년 '워싱톤 광장'이라는 노래를 대표곡으로 한 독집으로 데뷔한 여성 트리오이다. 자매인 김천숙, 김희선이 이정자를 받아들여 멤버를 구성한 그들은, 김시스터즈라는 그룹이 이미 있어서 이시스터즈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후에 김상미로 멤버가 바뀌면서 김씨만으로 이루어진 이시스터즈가 되었다. '울릉도 트위스트', '서울의 아가씨' 등이 널리 알려진 곡이다. 화진포 콘도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을 들어 본다. 이럴 때는 인터넷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이시스터즈 앨범 표지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황우루 작사·작곡, 이시스터즈 노래)


황금물결 찰랑대는 정다운 바닷가 / 아름다운 화진포에 맺은 사랑아 / 꽃구름이 흘러가는 수평선 저 너머 / 푸른 꿈이 뭉게뭉게 가슴 적시면 / 조개껍질 주워 모아 마음을 수놓고 / 영원토록 변치 말자 맹세한 사람

은물결이 반짝이는 그리운 화진포 / 모래 위에 새겨놓은 사랑의 언약 / 흰 돛단배 흘러가는 수평선 저 멀리 / 오색 꿈이 곱게곱게 물결쳐오면 / 모래성을 쌓아놓고 손가락 걸며 / 영원토록 변치 말자 맹세한 사람


김일성 별장에서 산길을 따라 응봉을 오르는 길은 굵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산마루에서 넓게 펼쳐진 화진포를 감상할 수 있는 이 길은 응봉 주변을 제외하곤 비교적 평탄한 능선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오늘은 비가 계속 와 안전을 위해 산길을 따라 걷지 않고 화진포 생태박물관에서 화포 삼거리를 거쳐 해안을 따라 거진항까지 걷는다. 화진포의 남쪽에 관찰데크를 설치하고 금강습지를 조성해 놓았는데 갈대와 버드나무가 자라는 호수 주변 웅덩이의 경계에 돌을 쌓고 그늘막과 전망대등을 설치하였다. 사실 이런 시설들은 생물들에게는 위협요소이지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요소라 볼 수없다. 습지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는 관광객이나 지역주민을 위한 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맞다. 생태계의 건전한 습지에 대한 개념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게 될까 봐 두렵다. 습지가 보이는 정자 앞에서 잠시 비를 피하는데 늘씬한 모습의 소나무가 한그루 보인다. 한줄기로 곧게 뻗어 오르는 금강소나무의 특징이 아닌 중간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진 줄기가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뉜 모습이지만 그 자태가 빛나는 나무이다. 슬쩍 얼마 남지 않은 노정을 기원해 본다.

금강습지를 바라보는 150년 된 금강송


화진리 삼거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고개를 오르면 흰색의 '화진포 해맞이교'가 도로를 횡단한다. 응봉을 따라 산길을 걷는 경우 저 다리를 건너 능선길을 걸으면 거진 해맞이공원을 지나 거진항에 이르게 된다. 고개를 넘어 서자 도로가의 바위들이 "오늘은 또 얼마나 파도들이 들이닥칠까" 걱정하는 듯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포말이 철책을 넘는 바닷길을 따라 걷다 보니 거진 해안도로 조형 공원이다. 공원도 중요하지만 다 삭아 떨어져 나간 철책이나 넘어오는 파도를 피할 안전시설 등이 더 급한 건 아닐까. 흰 파도가 가득 오가는 백암도의 바위 절벽에는 수십 마리의 가마우지들이 초병처럼 서있다. 아 저 녀석들도 나름 밥값을 하고 있구나. (백암도에는 2020년 10월 백섬 해상전망대가 설치되었다. 전망대를 통해 동해의 푸른 바다를 좀더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바닷가 바위섬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백암도를 수호하던 가마우지는 더이상 이곳에서 볼 수없다.)

20200216_104313.jpg 백암도의 절벽에 나란히 앉아 초병을 서는 가마우지들
20210711_122843.jpg 백암도까지 연결된 백섬해상전망대

거진항은 우물이 많은 곳이다. 맑고 시원한 우물물은 아직도 깨끗해 수도가 들어오는 곳에서도 생활용수로 우물물을 쓰는 곳이 있다고 한다. 거진항 동쪽 끝 절벽 아래에도 타일을 붙인 우물이 하나 있다. 아직 이 우물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물 안에는 식수로는 사용이 어려워 보이는 물이 고여 있었다. 서낭당이 있는 언덕을 받치는 콘크리트 옹벽에 '고성명태는 행운이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 온다.

거진항 동쪽 길가에 있는 우물
우물물은 비가 내려 그런지 약간 흐려 있었다
저 위 언덕에 거진 마을의 서낭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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