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코스(단축코스) :율다리교- 솔바람다리. 5.3km
기존의 해파랑길 38코스 대신 짧은 구간을 찾아 걸은 38 단축코스는 율다리교에서 솔바람다리까지의 5.3km의 길을 걷는 코스이다. 청량동의 솔숲구간과 남항진해변이 기존의 코스와 겹치며, 나머지 구간은 가능한 새로운 구간을 찾으려 했다. 38 단축코스는 율다리교, 청량동의 솔숲, 병산 옹심이골목, 남항진해변 등의 자원이 있다.
율다리의 추억을 돌아보며(율다리교-청량동 솔숲-동주최씨 제실)
율다리교에서 해파랑길 38코스의 짧은 구간을 시작한다. 지금은 율다리(栗橋)가 시멘트로 튼튼하게 놓여 있지만 예전엔 밤나무를 물에 박아 교각으로 삼고 그 위에 판자를 얹어 다닐 수 있게 한 섶다리처럼 조그마한 목교였다. 이 때문에 다리 이름을 유다리라고 하기도 하고 밤나무율(栗)자를 써 율다리라고도 부른다. 강릉시청 홈페이지에 있는 1976년 사진을 보면 교각으로 사용한 나무의 껍질을 벗겨 최대한 썩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이 나무가 밤나무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껍질을 벗긴 나무를 사진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렵다. 혹시 버드나무를 쓰지는 않았을까.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가 다른 나무들보다 물에 더 잘 견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유다리라고 부르는 것도 버들류(柳)자를 사용한 것은 아닐까? 청량동의 마을 앞에는 섬석천이 흐르고 그 너머엔 넓은 들이 있는 월호평이어서 두 마을을 연결하는 구실을 했다. 정월대보름에는 두 마을이 다리를 먼저 밟으려고 횃불싸움을 했다. 두 마을의 부녀자들은 율다리로 나와 다리밟기를 했는데 건강을 기원하며 자신의 나이수만큼 다리를 왕복하였다. 마을의 다름을 떠나 함께 어울려 경쟁과 기원을 통해 공동체의 행사를 했다. 율다리는 경쟁을 통해 두 마을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서로 도와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협력의 장(場)이었던 것이다.
다리를 건너 언덕길을 오르면 푸른 보리밭이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보여준다. 언덕 위로는 넓은 평지가 펼쳐지는데 보리밭과 조경수를 식재한 곳이 많다. 조경수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길을 감상한다. 이곳에서는 강릉비행장의 모습도 잘 보인다. 청량동의 마을들은 나지막한 언덕에 감싸여 있는 집들 때문인지 편안하고 온화한 느낌이 든다. 도시의 냄새가 나지 않는 이런 곳에서 잠시 쉬어 가는 것도 좋은 일인데 아쉽게도 쉬어갈 만한 공간은 아직 부족하다.
마을을 지나면 유다리길과 입암길, 청량학동길의 세 개의 길이 만나는 작은 오거리이다. 원래의 낮은 산의 능선부를 따라 포장도로가 이어지지만 주변의 소나무숲이 있어 길의 운치를 더해 준다.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렇게 좋은 소나무숲이 있다는 것은 주거하는 이들에겐 큰 행운이다. 소나무숲을 지나 6차선의 큰길인 성덕로를 따라 걷는다. 인도도 잘 되어 있고, 도로가 넓은데 비해 교통량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
감자적의 유혹(동주최씨 제실-옹심이골목-남항진해변-솔바람다리)
길 건너로 동주최씨 제실이 보인다. 낯선 지역인 동주(東州)는 철원의 고려시대의 이름이다.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최준옹이다. 이곳을 지나 골프장옆 삼거리 분기점이 있는데 이곳은 건널목에 횡단보도를 그려 놓지 않아 건널 때 신경을 써야 한다. 병산동은 감자옹심이를 하는 음식점이 많아 '옹심이 골목'으로도 불린다. 옹심이는 감자를 갈아 가라 앉힌 앙금을 이용해 둥글게 만들어 육수에 넣어 끓여 먹는 음식이다. 옹심이는 '새알심'의 강원도 사투리이다. 애호박이나 홍고추와 풋고추, 지단, 들깨 등 취향에 맞게 재료를 더 넣어 먹는다. 감자옹심이집과 함께 감자적집들도 여럿 있다. 감자적은 감자를 강판에 갈아 물을 덜어낸 뒤 애호박, 부추, 풋고추, 홍고추 등을 적당히 넣어 기름에 지진 부침개이다. 그러고 보니 감자옹심이나 감자적이나 들어가는 부재료는 거의 같다. 일상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방법만 달리해 전혀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강원도의 간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자꾸 손길이 가게 하는 음식을 대표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감자적에 막걸리 한 잔 하고픈 생각이 한쪽에서 치고 올라왔지만 아직은 오전이고, 가야 할 길도 멀다 생각이 들어 마음을 다잡고 길을 재촉한다.
병산동을 나와 남항진으로 가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공항길은 탐방로를 조성하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정도의 갓길을 분리해 두었다. 이곳에 최소한의 안전시설만 한다면 탐방로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해파랑길을 걷는 듯한 두 사람이 병산동에서부터 계속 앞서가고 있다. 남항진해변을 앞마당으로 둔 남항진동은 지도를 보면 마치 감자 옹심이처럼 동그란 모습을 하고 있다. 마을의 한가운데 공터에 서낭당이 있는데 소나무 서낭목이 있었으며, 당집은 흙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에 새로 주택이 지어졌고, 소나무도 흙담도 없이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환경은 개선되었는데 전통은 점점 흐려져 기억 속에만 남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곳이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남항진해변에 앉아 잠시 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