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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램 donggram Apr 01. 2024

어른의 만우절

우리들의 해맑은 그 시절

1년에 딱 한 번 찾아오는 날, 만우절이다. 모든 거짓말이 허용되는 오늘,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을 뜨자마자 “만우절이네요. 속지 않는 하루 보내세요!”라는 웃음 섞인 인사를 들은 게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은 나를 속일 생각이 없다.


만우절은 그럴듯한 농담으로 서로를 속이며 즐기는 날이다. “선생님이 너 당장 오래”라는 말에 허겁지겁 교무실로 달려갔지만 알고 보면 거짓말이고, 친구로부터 심각한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지만 문장의 가장 앞 글자만 읽어 보면 ‘만우절 문자’이기 일쑤다. 학창 시절 만우절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선생님 속이기’. 학생들끼리 교실 팻말을 바꿔 놓거나, 단체로 서로 반을 바꿔 앉아 있기도 했다. 아이들의 장난을 눈치채지 못한 교사는 문을 열었다가 당황해 복도로 나간다. 작전에 성공했다는 희열에 박장대소하는 학생들을 보고 ‘속았다’며 화를 내는 이도, ‘재밌다’며 함께 웃는 이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만우절은 장난기 많은 학생들에게 1년 중 제일 기다려지는 날로 꼽히곤 한다. 어떤 학교는 지나친 장난에 이날을 재량휴업일로 정했다고 하니, 아이들에게 만우절이 얼마나 흥분되는 날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오늘 내게 거짓말을 내뱉은 사람은 없었다. 섭섭하다고 표현하기엔 나 역시 누군가를 속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올해는 누구를 제대로 낚아볼까?” 하며 들떴던 어린 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매일을 살아내는 건조한 사람이 된 것이다.  어쩐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오렌지주스처럼 마냥 상큼하지는 못하더라도 자몽 티처럼 쌉싸름함 안에 은은한 달콤함을 지닌 사람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마음껏 농담 따먹기 하라며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도 들어보지 못한 채 하루가 저물었다. 언제부터인가 늘어나는 책임과 의무에 유머를 잃어 간다. 현실에 치우쳐 동심을 잃어간다. 안정을 쫓으며 호기심을 잃어간다.


만약 언젠가 어른이 된대도

우리들의 어린 시절 그 해맑음을

절대 잃고 싶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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