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삶에서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푸바오를 추천합니다
세상 도처에 슬픈 소식이 너무나도 많았다. 안 그래도 우울함에 절어 사는 나는 나의 몫의 우울로도 모자라서 모든 사건에 몰입해서 과하게 아파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나도 과몰입되어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은 괴로웠다. 마침 그때 한 글에서 '너무 이입하지 마요'라는 문장을 읽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이입하지 않을 정도로 나를 지키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의 상태에 대해 의사 선생님도 "안 좋은 것은 많이 보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좋아하는 것을 하라"라고 권유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작 나의 삶에는 통 이입되지 않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만큼, 내 마음을 좀 더 헤아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솔직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부끄럽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매번 권유하였지만 '그리고 있지 않다'라고 답했다. "어쭙잖게 그리는 것이 너무 싫어요."
잘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어중간하고 어쭙잖은 그림은 내보이고 싶지도 않고 내보일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저 그런 그림'은 그릴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비겁하고, 매정한.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잘해야만' 그려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어중간한 시기를 거쳐서 잘 그리게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저 그린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에도.
요즘 들어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때 든 생각은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살아내고 있다는 방증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일어나는 것조차 살아낼 의지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저 그린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는 것도 '살아냄'의 방증이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했다.
요즘 흔히 자주 밈으로 사용되는 말 중 "나락도 rock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림으로 나락까진 가진 않을 테니까, 못 그려도 rock을 하는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면.
요즘 나는 푸바오에 빠졌다. 푸바오 영상을 보면서 그래도 힐링을 한다고 하니까 이런 내게 의사 선생님은 "푸바오를 많이 보세요"라고 처방을 내렸다. 또 좋아하는 푸바오를 그림으로도 많이 그려보라고 했다.
정말 사소한 것이(푸바오는 사소하지 않다, 다만 푸바오 영상을 보는 건 누구에겐 사소할 수 있다.) 사람을 살아갈 수 있게 하고 기쁨을 준다. 원래도 동물을 좋아하는 내게 푸바오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치료가 된다. 우울증 치료제로 푸바오 영상을 추천한다.
그래서 나는 푸바오를 그리는 것을 시도해 보았다. 잘 그린 그림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는 푸바오를 마음껏 그릴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좋아하는 '그림'과 '푸바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채워갈 때에 괴롭고 힘든 삶이 조금이나마 덜 아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하는 것조차 내겐 힘들 때가 많다. 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래서 늘 어중간한 그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잘'하지 못해도, '많이' '계속' 해보는 건 삶에서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앞으론 푸바오를 열심히 계속해서 그려볼 생각이다. 삶이 너무 아프기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푸바오를 보고 있는 순간 행복해지는 것처럼, 찰나에 행복해지는 것들에 대한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오늘의 삶의 처방은 '푸바오'이다.
사실 @baoemo_draw라는 인스타 계정으로 그림 계정을 파는 것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만 혼자 보더라도, 일단 지르고 봤다. 이런 게 'rock' 아닐까. 내가 그린 푸바오로 조금이나마 푸바오를 더 많이 기억하고, 애정하고 싶다.
우리의 삶에 애정하고, 기억하는 것들이 더 많이 새겨져서
힘들고 아픈 기억들보다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기를. 고마워 푸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