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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Mar 14. 2024

죽음 뒤 이야기

모두 잘 지내겠지? - 김기정, 모두 웃는 장례식 - 홍민정

[모두 잘 지내겠지?]

북카페에서 우연히 뽑아 든 동화책이 나를 울렸다. 먹먹함이 이루 말할 수 없어 코를 막고 눈물을 훔치고.

동화가 이렇게 슬퍼도 될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막 눈물을 뿜어내게 하진 않는다.

아름다운 동화, 슬픈 동화,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인물들.

5편의 단편동화를 묶은 동화집이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내어주는 엄마, <길모퉁이 국숫집>에는 여러 사람들이 다녀간다. 할아버지, 아이 누구든 와서 음식을 먹고 떠난다.

고등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와 음식을 시키는 장면이 있다. 아이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삼키는, 그렇지만 독자는 알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 

어떤 기사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여성분이 있었다. 같은 하늘 아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아이의 얼굴을 떠올린 건 아닐까?

매번 사건은 반복되고 없어지지 않는다.



교복을 입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학생이 5월 18일이 되면 사라지는 <녹슨 총> 역시 사람들은 보고도 못 본 척, 있어도 없는 척을 한다. 그 학생에게 마을 사람들은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다.

장곤이가 자신의 집으로 이사 온 무진이네 집에서 밥을 먹는 날, 나는 이 장면에서도 눈물이 났다.

다들 밥 한 끼에 그렇게 정성을 들인다.

인사말로 밥 한 번 먹읍시다, 밥은 먹었어요?라고 물어보는 사람들.

그 밥 한 끼에 장곤이는 따스함을 느낀다.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는 부모를 기다리는 연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남겨진 것은 부모가 아니라 연수였고, 그 아이를 돌봐주는 할망에게 고마옴을 느꼈다. 반전의 묘미가 있었던 작품이다.

동화책인데 동화책인데를 계속 읊조리며.


<벚꽃 우물> 역시 사고로 죽음을 당한 친구를 그리워한다. 잘 있느냐고,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의 음성에 대답하듯이 아이의 말소리가 들린다.



치매는 참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슬프고, 점점 잔인해져 가는 병.  <큰 할머니 노망드셨네>라는 동화는 그 집 아이는 몇인고를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할머니가 등장한다. 그리고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기로 결정한 가족들. 그 와중에 계속 아이가 몇인지를 묻는 할머니.

매번 하나라고 대답을 하던 미도 씨는 떠나는 날 대답한다. "딸하나, 아들하나요."

죽음은 잊혀지지 않는다. 가슴속에 묻는다고들 한다.


다음 동화는 [모두 웃는 장례식]으로 [고양이 해결사 깜냥], [낭만강아지 봉봉]으로 유명한 홍민정 작가의 작품이다. 귀여운 깨방정 동물 캐릭터 동화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먹먹한 동화를 쓰다니.


생전 장례식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다.

죽고 나면 누가 오는지도 모르는 장례식.

그래서 살아있을 때 장례식을 치르는 이들이 생겼다고.


나는 할머니한테 다가가려다가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할머니의 손을 보고 멈칫했다. 핏줄과 뼈 모양이 고스란히 드러난 야윈 손. 그 손을 이불 안에 넣어 줘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 방 앞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가끔 동화나 소설 속에 비추는 늙음의 묘사는 참 마음이 까슬할 때가 있다. 앙상하고, 흐릿하고, 회색빛이 생각나는 늙음. 그 늙음은 고스란히 주위의 환경에서 드러나곤 한다.


할머니는 정말 하루하루가 달랐다. 할머니 방 색깔이 그걸 말해 주었다. 개나리색 옷장, 진한 밤색 장식장, 연두색 커튼, 진분홍과 초록이 어우러진 이불, 심지어 시원한 바다를 그린 달력 그림까지 점점 무채색으로 변해 갔다. 할머니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원래 지니고 있는 색을 버리면서 할머니와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동화는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보이는 여느 가족들의 모습을 그린다. 어떤 가족들이든 의견이 안 맞고 충돌이 일곤 한다. 그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할머니는 생전 장례식을 하겠다는 마음을 접지 않는다.

신문에 광고를 내고 그 광고를 보고 찾아온 옛 지인을 만나고서야 사람의 인연이 정말 무 자르듯 자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이 입은 은혜를 잊지 못하는 법이다.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준 일을 기억하고 더 늦게 전에 찾아와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선물로 준다. 나는 이 장면에서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윤서와 그 친구들이 할머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할머니에게 남긴 편지를 영상으로 담는다. 그 영상을 찍는 동안 윤서는 또 다른 추억에 빠지기도 한다.


이 동화가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정말 있을법한 사람들이었고 캐릭터가 완전 악역은 없었다. 나쁜 사람은 있다.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이라 악역이라기 보단 상황에서 악역을 맡은 사람들. 이 동화에서는 윤서의 엄마가 그런 역할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자꾸 콧물이, 눈물이 흐른다.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음악은 또 왜 이리도 잔잔한 건지.

할머니의 장례식을 앞두고 사람들이 하나, 둘 집으로 들어온다.

상하이로 갔던 엄마도, 윤서의 담임선생님까지.



누구나 할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기억하게 될 장례식이 지나고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건 참 잘 살고 가는 게 아닐까 싶다. 죽어서도 그리워해주는 사람을 남겨둔다는 건 슬프겠지만, 또 행복할 것이다.


카페 내에 음악소리가 잠깐 멈출 때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이 책을 덮고 마음을 조금은 더 가라앉힌다. 


정말 좋은 동화가 넘 많은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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