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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나 Apr 11. 2024

쓸쓸하고 먹먹한 동화

이태준 - 쓸쓸한 밤길, 슬픈 명일 추석

원래 일정이었다면, 이번 학기부터 논문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이미 지도교수님 지정도 받았고 열심히 준비를 하면 되는데 개인적인 문제로 올스톱 되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때문에 편하게(편하진 않지만) 논문을 준비할 여유가 없게 돼버렸다. 최선을 다해 글을 써야 할 시간이 와버렸다.

더 열심히 써야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 


지난겨울부터 논문에 필요한 책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태준 동화 연구'를 처음 초안으로 잡아서 이태준의 동화를 수집했다. 기존 논문을 분석하며 거기에 참고된 동화들을 읽었다. 상허학회 회원이신 다른 교수님의 안내로 좀 더 찾아볼 문건들이 생겼다.

이태준은 동화보다는 소설을 먼저 쓴 작가라 아동문학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찾던 중에 한 출판사에서 아동문학 작품을 모아 따로 발간된다는 글을 보고 문의를 했다. 

곧 나올 것이라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담당자의 이야기를 듣고 동화를 찾았다. 

오늘 읽을 동화 역시 다른 동화집에도 실려 있던 동화들이다.




{상허 이태준 전집 2} 시리즈 중 [해방 전후]는 중편소설, 희곡, 시, 아동문학을 실은 작품집으로 '열화당'이라는 출판사에서 상허의 후손과 함께 발간했다. 

표제작인 '해방 전후'는 중편소설 부분에 실려 있었다. 나는 아동문학 파트에 실린 글들을 먼저 펼쳐 보았다. 

동화뿐 아니라 동시도 실렸다.



최근에 발간된 [돈 가져간 사슴이]라는 작품 속에 실린 동시와 동일했다. 

이렇게 숨겨진 작품들이 발견된다는 것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행운일 수밖에 없다. 

힘들게 조사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는 기쁨,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이태준의 동화는 고아의식이 빼곡히 담긴 작품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이태준 동화에 관련된 대부분의 논문들 또한 고아의식, 부모의 부재에 대한 내용들이 많았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슬픈 명일 추석}과 {쓸쓸한 밤길} 두 작품으로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먹먹함이 잘 드러난 동화다. 

부모가 없기 때문에 남의 집 더부살이를 살아온 이태준의 어릴 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먼저 {슬픈 명일 추석}이라는 작품을 보자.

'명일'은 명절이라는 뜻이다. 추석을 슬픈 명절로 표현하고 있는 제목에서 드러난다. 다른 아이들은 추석을 기다리지만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남매가 있다. 

바로 '을손'과 '정손'이다. 이 남매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둥근달을 근심스럽게 바라만 보고 있다.


명일이면 다른 아이들이 모조리 비단옷을 입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무슨 명일에든지 자기 남매와 같이 다 떨어진 누데기를 그대로 입고 나오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p381


다른 날도 똑같은 옷을 입고 친구들과 뛰어놀지만, 명일만큼 친구들은 예쁜 꼬까옷을 입고 나오니 헌 옷 입은 자기 남매들끼리만 구석에 숨어 명일이 지나가기만 기다릴 뿐이다.

작은 아버지 댁에 살고 있는 남매는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극성스럽게 아들을 돌보지만 조카들은 피가 나도록 두드리고  굶겼다.

다리미질을 하다가 떨어뜨릴 것 같아 놓으려고 하자, 그 다리미를 아이의 살에 닿게 하는 작은 어머니와 살고 있다. 아동학대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언제든지 행길 밖으로 쫓기어 나오면 더 맞지는 않는 까닭에 을손이와 정손이는 늘 매 맞을 때마다 행길로 뛰어나왔습니다.


아이들은 눈물을 떨구고 싶을 때 엄마의 산소로 올라가 울곤 한다. 이게 13살, 9살의 아이들이 수시로 행하는 일들이다. 

또 추석은 달이 유난히 밝다. 울고 난 후 마을로 내려가려니 대낮같이 밝아서 부끄러워 쉽게 내려가지 못한다.

그러다 누이동생은 잠이 들고 오빠는 마을로 내려가 음식을 가져온다. 산소옆에 누워있던 누이가 사라지고 애타게 찾지만 결국 둘 다 마을로 내려가지 못한다.

굉장히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마을로 내려가지 못한 이유가 정손이를 물어간 것이 늑대였고 정손이를 찾아 산골짜기에 들어간 을손마저 사라졌다. 

지금 이런 동화가 나온다면 읽힐 수 있을까? 시대가 변했고 아마 부모들이 이런 류의 동화책을 사주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동화 {쓸쓸한 밤길}은 단옷날(책에는 '단오날'이라 표기) 일어나는 일이다. 

열세 살 영남이 역시 아이마다 있는 아버지, 어머니가 없다. 매일 아침 외양간의 소를 몰고 산기슭에 매어놓고 온다. 

아주머니의 집에 기거하며 걸레를 빨고 요강을 씻는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의 집은 원래 영남의 집이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아주머니가 안방을 빼앗고 영남이에게 일을 시켰던 것이다. 거기다 아주머니의 아들인 대근에게 차이고 욕을 먹었다. 


이제 열세 살밖에 안 되는 영남이는 사랑에서 자는 만큼 일꾼의 할 일을 모다 맡아하게 되었고 부엌에서 밥을 먹는 만큼 숭늉 가져오너라 하면 숭늉 떠 가고 설거지하여라 하면 설거지도 하여 부엌어멈의 할 일까지 모다 영남이가 하면서도 아저씨에게 아주머니에게 대근이에게 걸핏하면 매 맞고 욕먹고 하는 것입니다. p387


온갖 구박은 다 받아가며 살아간다. 대근에게 괴롭힘을 당해 물에 빠져도 일 안 한 것에 대한 나무람만 있을 뿐 왜 옷이 젖었는지 물음도 없이, 옷도 없이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뒤꼍에 있는 살구나무에 젖은 옷을 널며 영남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린다. 

단오라 새 옷을 입은 아이들의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영남은 눈물을 흘리며 새파란 풋살구를 헤어 본다. 

그때 대근은 아이들을 몰고 와 벌거벗은 영남을 놀리고 돌을 던져 맞히라고 한다. 

어린이의 본성에 대한 학설로 정말 성악설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던진 돌을 얼굴에 맞은 영남의 얼굴이 상상이 되는가? 잔인함은 극에 다다른다. 

이때 영남이는 대근에게 달려들고 대근의 어머니가 쫓아와 영남이의 정강이를 후려갈긴다.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몇몇 아이가 남아 서서 눈이 뚱그레서 영남이의 꼴을 구경하고 있었으나
대근의 어머니는 다시 와서 그 아이들까지 몰아내고,
발목을 안고 뒹굴고 우는 영남이 옆에는
말 못 하는 바둑이만 설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영남이 곁에 남아있지 않는다. 강아지만이 짖어대고 지켜줄 뿐이다.

내 집이지만 내 집에 있어도 누구 하나 문을 열어보는 사람이 없다. 

결국 영남은 집을 나가기로 한다. 절름거리며 개울의 물을 마시고 징검다리를 건넌다. 


이 작품은 앞 작품과는 다르게 희망이 보인다. 


아, 밤길은 쓸쓸하였습니다. 고향은 떠나가는 것이 슬펐고 어머님 생각과 발목이 아파서 절름거리며 울면서 걸었습니다. 그러나 밤은 머지않아 밝을 것이며, 한참씩 달음질쳐 앞서가던 바둑이가 도로 와서 영남이 옆을 서 주고 서 주고 하였습니다. p390


이렇게 동화는 끝이 난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영남이는 희망을 갖고 길을 떠난다.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른다. 괴롭힘을 당한 집에서 나온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들이 잘 살아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집 밖이 지옥이라면 집 안은 불구덩이처럼 느껴졌을 을손과 정손, 그리고 영남이의 가출은 이유가 있다. 

옛 동화이고 배경에 많은 차이가 있지만 짧은 동화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생각하게끔 하는 동화였고 슬픔과 안타까움이 지속되었다. 

과연 아이들에게 읽어줄 수 있는 동화일까라고 생각해 보면 그래도 이야기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도 있을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들려주고 싶다. 

아직은 살아갈 수 있을 영남이의 앞날이 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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