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를 진행했다.
성황리에 마무리한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500여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노먼 포스터의 핵심적인 활동 궤적을 보여주었다.
포스터의 건축은 시대에 따라 기술력에 의한 건축을 강조한 초기 하이테크, 공간의 공공성을 고려하는 사회적 측면 형성기, 자연과의 공생을 위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경제적 측면 형성기, 건축의 친환경적 접근으로 지속 가능한 건축 확립기로 변화하며, 전시는 이러한 비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미래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영국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1935-)의 건축 여정을 보면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진행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 (2024.04.25. ~ 2024.07.21.)는 노먼 포스터와 그의 자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500여 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노먼 포스터의 핵심적인 활동 궤적을 보여주었다. 건축 전시의 특성상 대부분이 모형과 사진으로 제시되었으며, 거장 건축가의 비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기획된 전시였다.
노먼 포스터는 1935년 영국 맨체스터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시청에서 사무원으로 일했으며, 영국 공군에서 2년 동안 복무한 것을 계기로 장학금을 받아 맨체스터 대학교의 건축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건축학과에서 능력을 발휘한 그는 연구 장학금을 받아 예일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았고,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의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예일대학교에서 동료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이들은 영국으로 돌아와 웬디 치즈먼(Wendy Cheesman)과 수 로저스(Su Rogers)와 함께 ‘팀 4(Team 4)’라는 건축사무소를 열고 당시의 첨단 기술에 기반한 혁신적인 프로젝트들을 다수 선보였다. 이중 웬디 치즈먼(1937-1989)은 훗날 포스터의 배우자가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팀 4’가 선보인 대표적인 건축물은 <릴라이언스 컨트롤스>(1967)로, 미국식 강철 박스 공장 빌딩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용접된 강철 구조물의 가벼움과 단순함에 매료되어 이러한 건물을 디자인했다. 이 공장은 ‘오픈 플랜(Open Plan)’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공간을 벽이나 칸막이로 막지 않고 스크린이나 가구 등의 요소들로 구분하여 넓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뜻한다. ‘오픈 플랜’은 향후 포스터의 건축이 지향하게 될 방향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팀 4’는 약 4년 간의 팀 활동을 뒤로 하고 1967년 결별하였고, 포스터는 치즈먼과 결혼하여 ‘포스터 연합(Foster Associates)’을 설립한다. 이 연합이 바로 오늘날 2천 명이 넘는 국제적 규모의 건축 스튜디오로 성장한 ‘포스터 + 파트너스’의 전신이다. 이들은 경량의 소재와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영국 전역에서 싹트기 시작한 새로운 산업체들의 시설들을 만드는 산업 건축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포스터의 건축은 시대에 따라 기술력에 의한 건축을 강조한 초기 하이테크, 공간의 공공성을 고려하는 사회적 측면 형성기, 자연과의 공생을 위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경제적 측면 형성기, 건축의 친환경적 접근으로 지속 가능한 건축 확립기로 변화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전시 또한 총 5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2)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 3)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4)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5) 미래건축이다. 이러한 전시 카테고리에 기반해 포스터의 건축 세계를 잘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하이테크 건축, 공공성, 지속가능성, 미래건축을 꼽아보았다.
하이테크 건축은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발달한 과학기술을 건축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축양식을 뜻한다. 하이테크 건축의 근거지는 영국이며, 대표적인 건축가로는 노먼 포스터를 떠올리게 된다. ‘하이테크’의 정의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포스터는 초기부터 신기술을 구사하여 현재까지도 하이테크 건축으로서의 호평을 받고 있다.
포스터의 건축은 기존의 주변 건물에 테크놀로지의 조형성을 결합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른 건축가들의 하이테크 건축물이 다소 차갑고 낯설다는 느낌을 주는 데 반해, 포스터의 하이테크 건축은 보다 생태학적인 감성이 나타난다. 건축 디자인의 표현에 생명체의 형태나 생명종의 진화와 관련한 생물학적 내용을 담아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이테크 건축의 일반적인 특성은 가변성, 이동성, 공업화, 시스템화, 경량성, 투명성, 기계미학 등으로 요약된다. 포스터는 여기에 생물학의 세포조직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형태를 창조해낸다. 포스터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홍콩 상해은행은 신재료와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인체 골격에서 영감을 받아 생물학적 골격미를 연상시킨다.
홍콩 상해은행은 기술집약적 건축물로서 설비를 시스템화하는 공업제조방식을 도입하였고, 자재 하중을 최소화하도록 계획되었다. 모듈러 디자인의 개념을 적용하여 다른 설비와의 연계가 용이하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또한 중앙에 아트리움을 설치하여 시각적 개방감과 쾌적한 공간을 확보하였으며, 자연 채광을 유입함으로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다.
포스터는 하이테크 기술을 건축에 적용하여 디자인을 전개해 나간다. 특히 건축물의 외관에 집중해 투명하고 매끈한 외관의 건물을 디자인하며,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포스터의 건축적 특징은 단일 구조의 형식이 아니라, 다양한 구조의 형식을 결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의 반복적 구성으로 균형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명료한 선과 뚜렷한 개별 윤곽선의 강조로 선형성이 나타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인즈버리 센터는 사선의 유리구조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주변공간과의 관계를 고려해 공간 일부를 지면 아래에 조성하여 채광을 용이하게 한 것이다. 홍콩 상해은행과 마찬가지로 모듈 시스템 구조를 통해 구조 경량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특징이 있다.
애플의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와 함께 설계한 <애플 파크> 또한 최첨단으로 설계된 기술력이 응축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71헥타르 규모의 부지로, 실리콘밸리 중심부에 위치하여 1만 2천여 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경관을 재현한 녹지에 설립된 대형 원형건물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인력이 한 지붕 아래에서 소통할 수 있기를 희망한 스티브 잡스의 요청사항에 대한 결과물이다.
우주선 형태의 원형 외관과 중앙의 녹색 공원이 어우러져 기술과 자연이 하나되는 모습이 인상 깊다. 건물의 외관 전면은 하이테크 건축의 주요 요소인 유리로 구성하여 자연광이 건축물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고, 인간의 호흡기를 닯은 센서식 개폐시설을 이용하여 자연 환기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내부전력은 태양광 패널을 이용하여 100% 재생 에너지로 가동하게 하였고, 필요한 용수 또한 재활용 물을 활용하게 하여 지속 가능성을 높인 건축물이다.
노먼 포스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공항’이다. 포스터+파트너스의 사명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 경제, 환경 문제를 하나의 통합 과제로 아우르는 것인데, ‘공항’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를 상징하는 만큼 이러한 목표를 보여주는 데 적합한 건축으로 보인다.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공항’에 대한 인식 자체를 탈바꿈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가벼운 우산 형태의 구조물이 인상적인데, 이는 자연채광 유입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전의 공항 터미널들은 기계 설비 일체를 지붕에 들여놓았기에 건물 구조가 묵직했으나,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각종 설비 시설을 탑승동 바닥에 묻어버림으로써 공항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포스터+파트너스가 설계한 또 다른 공항 중 하나인 홍콩 첵랍콕 공항은 바다를 메운 간척지에 들어선 것이다. 이들은 대규모 매립 프로그램을 통해 100미터 높이의 산봉우리를 해발 7미터로 낮추고, 섬을 원래 면적의 4배만큼 확장했다.
도착하거나 출발할 때 경로를 쉽게 알 수 있고 한쪽은 육지, 다른 한쪽은 바다를 바라보며 비행기를 볼 수 있어 방향 설정이 간단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신개념 대량 수송 레일을 통해 공항과 도심를 직접 연결하고 있어 시내까지 2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공항 외에도 역사성을 지니는 건축 공간을 재생하여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3년 완공된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을 들 수 있는데, 런던의 국립미술관 앞 차도를 보행자를 위한 광장으로 변모시킴으로서 런던의 기념비적 공간을 세계인의 공공장소로 재생시켰다.
이처럼 버려지거나 상실되었던 공간을 재생시킴으로써 공공장소를 조성하는 일은 도시 구조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는 단일 건물의 디자인을 넘어 도시 삶의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건축에서의 지속가능성이란 지구환경과 건축 산업이 모두 지속가능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에너지 효율을 최대화하고 기존 자원을 재활용해 환경 공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건축의 전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피해가 최소화 되도록 계획된 특성을 의미한다. 포스터는 기존 건물을 재활용하거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건축물의 구조나 형태를 통해 공간 에너지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설계를 한다는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를 실천하고 있다.
런던 시청을 보면, 남쪽과 북쪽의 일조량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울어진 듯한 형태로 설계를 하여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모습이 나타난다. 또한 지하수를 이용하여 내부 공기를 냉각 후 화장실에서 재활용하도록 하는 등 다양한 친환경적 노력이 들어간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포스터는 기존 건물을 재생하여 건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물에 현대적 해석을 더하는 것인데, 이를 ‘레트로핏(retrofic)’ 접근이라고 부른다. 건축물을 확장하고 개조하는 행위는 더 넓은 맥락에 반응하는 문화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역사의 생명력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 중인 빌바오 미술관 개조 프로젝트의 경우, 건축물의 역사를 보존하고 부각시키는 차원에서 1945년 당시 건물의 입구 위치를 되살려 미술관의 정면이 다시금 도시 쪽으로 하는 접근을 진행 중이다. 기존의 건축물에 이어 1970년대에 추가 확장된 공간을 모두 잇는 방식으로 지붕형 구조를 제안한다. 자연 채광 유입, 원활한 공기 순환, 저탄소 강철 사용 등의 방식으로 효율적인 에너지 절약 또한 목표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를 현재와 교차하면서 하나의 장소를 재창조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건축에 대한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파트너스의 시점은 이미 현재가 아닌 미래에 닿아있다. 지구 밖 행성에서의 삶을 상상하면서 유럽우주국(ESA),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한 달 거주지 프로젝트(2012), 화성 거주지 프로젝트(2015)는 이미 10년 전에 실행되었다.
지구 밖 행성에서의 삶을 연구하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주력했던 부분은 건설 자재를 지구에서부터 운반해오는 비효율성을 피하고, 현지의 재료를 토대로 구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가 발전된 결과가 바로 2016년에 고안된 드론공항다. 드론공항은 접근성이 현저히 낮은 중앙 아프리카의 고립된 지역에 긴급 생필품이나 의약품 전달이 원활하도록 돕는 항공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다. 벽돌용 자재와 목재는 모두 현지 자원을 기반으로 하고, 조립이 쉬운 모듈 시스템을 사용하여 지역 공동체 또한 건설에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노먼 포스터 재단은 학생들과 함께 2016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드론공항의 실제 크기 프로토타입을 선보였으며, 2030년까지는 아프리카의 고립된 전 지역에 드론공항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의 작품 세계를 몇몇 키워드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요약하자면 기술공학적 지식과 친환경적인 디자인을 결합시킨 건축물을 통해 지속적인 혁신을 이루어내고 있는 건축가로 볼 수 있다. 포스터+파트너스의 프로젝트들은 단순히 미래지향적이거나 기술예찬론적이 아닌, 사용자의 경험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다양한 생명종이 공생하는 세계를 위한 제안으로 읽힌다.
본 글은 '프럼에이'에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