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에드 루샤(Ed Ruscha, 1937-)라는 예술가가 있다. LA를 대표하는 팝 아트 작가인데, 유독 국내에는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데이비드 호크니와 같은 유명 작가들에 비해 덜 소개되고 있는 듯하다.
오늘은 위 작가들 못지않게 1960년대 팝 아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에드 루샤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워홀이 TV 이미지를, 리히텐슈타인이 만화를 활용했다면, 루샤는 영화적 속성을 회화에 도입한다. 그가 사용한 색체는 셀룰로이드 필름처럼 광택이 나며, 공들여 그려진 이미지는 스크린에 ‘영사’된 것처럼 보인다.
루샤의 팝아트 방식은 LA의 지역성을 활용한 것이다. 오클라호마 출신이었던 루샤는 19살이었던 1956년에 미술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LA로 이주한다. 1963년 LA 지역의 페러스 갤러리(Ferus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현재까지 이곳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당시 LA 지역 작가들은 ‘강한 남성’, ‘마초 이미지’ 등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축했는데, 루샤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전략을 구상하면서 유머와 내용 비틀기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간다. 루샤는 당시 아트포럼(Artforum)이라는 미술 잡지의 아트 디렉터(1966-1972)를 맡으면서 미국 동부와 서부 미술을 두루 접했기 때문에 LA 지역에서 드러나는 남성성의 표상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루샤가 LA 지역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작품은 할리우드의 도상을 포함한 <8개의 스포트라이트와 대형 트레이드마크>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폭스사에서 제작한 로고를 활용한 작품으로,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유명한 로고이다. 루샤는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영화의 속성에 끌렸고, 영화사의 트레이드마크와 함께 시작되는 이러한 이미지를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다.
루샤에게 LA는 풍부한 영감을 주는 장소였다. 전후 미국의 젊은 계층에게 오토바이, 헐리우드, 개조된 자동차, 해변, 야자나무, 금발, 선탠 등은 특히 팝아트 환경의 전형이 되었는데, 루샤는 이러한 이미지들을 자신의 작업에 도입한 것이다. 미국의 중심 국도인 66번 국도를 포착한 사진집인 <26개의 주유소>를 보면, 작가가 새롭게 접한 서부 캘리포니아의 도시 풍경이 제시되어 있다.
루샤는 텍사스주 애머릴로에 있는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 주유소를 계속해서 그림으로 그렸다. 또한 1965년에 픽업트럭 짐칸에 타고 일어선 채로 35km에 이르는 선셋 불르바드(Sunset Boulevard)의 모든 건물을 사진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작가는 이렇게 LA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상징적인 단어와 이미지 등을 사용해 미국 서부의 풍경을 묘사했다.
66번 국도는 미국의 동과 서를 이어주는 문화 적 통로와 같은 상징성을 지니는데, 26곳의 주유소 사진들은 66번 국도를 따라 흔히 볼 수 있는 주유소 건물의 풍경을 담은 것이다. 루샤는 자동차 없이는 슈퍼마켓에 들르는 것조차 어려운 미국 서부의 자동차 문화와 일상적인 삶의 단면을 국도 위의 주유소 사진들로 포착하여 사회적, 문화적 아이콘을 제공하고 있다.
일상의 한 부분인 주유소는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며, 루샤는 주유소의 이미지를 이용한 회화 연작을 통해 미국 문화의 아이콘을 생성한다. 그의 주유소 연작 중 하나인 <스탠더드 주유소>는 대각선이 화면을 가로지르는 구도와 함께 단순화한 색채가 강한 시각적 효과를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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