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3월 호암미술관은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의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김윤신은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 전시를 개최했고, ‘베니스 비엔날레 2024’ 본전시에 초청되는 등 최근 가장 자주 소개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전시명 :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기간 : 2026.03.17. ~ 2026.06.28.
전시 장소 : 호암미술관
오늘은 김윤신 작가의 삶과 작업 세계를 미리 짚어보며 이번 회고전에서 무엇을 주목해 보면 좋을지 정리해보려고 한다. 김윤신은 나무와 돌 같은 자연 재료의 물성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이를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세계관으로 표현한 작가이다. 뒤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제목인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암시하듯, 그는 더하고 나누는 조형의 원리를 통해 관계, 순환, 균형이라는 감각을 구축해 왔다. 이번 전시는 그 조형 언어가 어떤 시간의 층위 속에서 형성되고 확장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윤신은 1935년 원산에서 출생하여 1959년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1964년 파리 유학 후,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 멕시코(1988-1991)와 브라질(2000-2001) 등에서 활동하며 오랜 시간 자연을 주제로 원초적인 생명력과 정신성을 작품에 담아온 작가이다.
그동안 아르헨티나를 거점으로 활동해왔기에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으나, 서울시립미술관과 국제갤러리 전시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자주 소개되며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지난 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중 직접 뵌 적이 있는데, 구순의 작가가 관객들이 많이 방문하여 기뻐하시는 모습이 제 마음 한 켠에도 이미지처럼 남아 있다.
작가의 작업이 인상 깊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재료의 자연스러운 속성을 살리는 무기교의 조형감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독창적이면서도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기에, 오래 보면 볼수록 더욱 기억에 남는다.
김윤신의 조각은 작가의 수고스러운 신체 활동을 거쳐 제작된 전통적 방식의 조각으로, 디지털 시대에 희미해진 물질이 주는 실제적 감각의 의미를 되묻는다.
특히 그의 <기원쌓기> 연작은 나무 조각을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민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탑을 연상시킨다. 우주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인간 본연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장승이나 돌쌓기 등 한국의 토테미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교하게 다듬거나 빚어낸 것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자연의 부분처럼 무심히 쌓여 있는 모습이다. 무심해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언가를 공들여 쌓아 올리는 행위는 간절함과 염원을 내포한다. 마치 블록 장난감을 쌓듯 나무 조각을 쌓았다가 해체할 수 있는 현대적 감각의 유연한 조각으로 읽힌다. 절단된 면을 쌓아올린 듯한 <기원쌓기>의 형태에 다양한 변주를 주면서 자연스레 <합이합일 분이분일> 시리즈에 이르게 된다.
무엇보다 김윤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합이합일 분이분일>이다. 작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 키워드로 포괄해 나갔다. 김윤신은 우주 만물이 ‘음’(분열하고 나뉘는)과 ‘양’(수렴하고 합해지는)의 상호작용을 무한히 반복하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회고한다. 자신의 조각 역시 나무에 정신을 더하고(합), 공간을 나누어가며(분) 온전한 하나(예술작품)가 되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김윤신의 ‘합(合)’과 ‘분(分)’은 우주를 설명하는 근본으로서 동양의 음양사상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음양사상의 원리를, 수렴하고 더해지는 ‘합’과 분열하고 나뉘는 ‘분’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 뒤, 조각을 통해 시각적 조형언어로 표현해냈다.
김윤신에게 ‘합’은 작가와 조각의 재료인 나무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분’은 하나가 되기 위해 나무를 절단해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목조는 내부와 외부가 서로 다르지 않음을, 쏠리고 깎인 흔적을 열어 보여준다.
김윤신의 작업에서 나무는 자체로 하나의 덩어리면서도 서로 다른 여러 생명들로 꿈틀대는 듯하다. 작가가 처음 아르헨티나의 땅에서 느꼈던 것처럼, 남미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과 원시성이 그의 조각에 담겨 있다.
김윤신은 작업을 하기 전 미리 별도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거나 특별한 형태를 구상하지 않는다. 그저 며칠을 두고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라는 존재, 그 생김새, 나무의 껍질과 속살의 차이, 나무의 결, 그리고 나무 속에서 진통하는 소리를 듣거나 혹은 향기까지 느끼려고 시도한다.
“나무를 앞에 두고 있을 때 내가 하는 것은 오직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며칠을 두고 바라보며 나무라는 존재, 그 생김새, 나무의 껍질과 속살의 차이, 나무의 결, 그리고 나무 속에서 진통하는 소리를 듣거나 혹은 향기까지 느끼려 시도한다.”
- 김윤신
재료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이해는 나무의 껍질에서부터 중심부로 이르는 색의 차이를 조형적으로 조각에 활용하는 것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나무를 잘라 단면으로 봤을 때, 가장 바깥의 껍질과 나무의 중심인 수심 사이는 안쪽의 어두운 색의 심재, 바깥쪽의 밝은 색의 변재로 구분된다. 날개의 형상을 한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나무의 색상 차이를 조형적으로 활용해 날개의 결을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김윤신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남미의 토테미즘에 영감을 받아 목조각에 채색을 처음으로 시도하게 된다. 김윤신은 우연한 기회로 파타고니아 지방에 살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마푸체(Mapuche)를 알게 되면서 이들이 사용하는 색상과 문양에서 한국의 토테미즘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작품에 기하학적 문양과 채색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고 밝힌다. 이 시기 제작한 회화에서는 남미의 토테미즘과 한국의 오방색을 결합한 원색의 색감과 나이프로 물감을 긁어내는 기법을 적용해 원시적 에너지를 담아내는 모습이다.
어린 시절 김윤신은 고향 원산의 칠흑 같은 밤하늘의 쏟아질 것 같은 별을 보며 그 반짝임이 자신에게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이라 상상하며 잠들곤 했다고 회고한다. 삶의 그 어느 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90세에 접어든 작가는 이제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영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하다. 자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영혼의 소리, 생명력, 사랑과 나눔을 나무를 빌려 노래하는 모습이다.
2013년 아르헨티나에서 제작된 <내 영혼의 노래>는 3개의 캔버스로 구성된 대형 회화 작품이다. 김윤신은 아르헨티나의 대지, 자연이 지닌 생명력에 감탄하여 이를 작업에 담아냈다. 나뭇가지를 꺾어서 땅에 꽂아두면 곧 뿌리가 내리고 새 가지가 나올 정로로 아르헨티나의 대지는 강한 생명력과 치유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옆으로 긴 화면과 화면 가운데에 자리한 나무 기둥, 그리고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와 선을 통해 아르헨티나의 대지가 지닌 이러한 생명력을 노래하고 있다.
이번 호암미술관 전시는 김윤신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합이합일 분이분일>을 중심으로, 그가 나무라는 재료와 맺어온 관계가 어떻게 조형 언어로 정립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단단한 목재를 ‘합’과 ‘분’의 원리로 다루는 그의 방식은 단순한 조각 기법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과 존재의 리듬을 몸으로 통과해 형상화하는 태도에 가깝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형태’를 보는 동시에, 깎이고 쌓이며 만들어진 시간과 노동, 그리고 재료가 품은 생명력을 함께 감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김윤신의 나무조각뿐 아니라 판화와 회화까지 폭넓게 선보이며, 작가의 조형 감각이 어떻게 매체를 가로지르며 확장되어 왔는지 살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르헨티나의 자연과 토테미즘, 한국적 기원과 오방색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한국 여성 조각’이라는 범주를 넘어, 아시아 모더니즘과 글로벌 동시대 미술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읽힐 수 있을 듯하다. 전시가 열리기 전까지 김윤신의 작업이 축적해 온 시간의 두께를 따라가며, 우리가 지금 왜 그의 조각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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