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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배 May 27. 2022

탱고 대회 1편

탱고 시험 기간

탱고를 추는 데에도 시험 기간이 있다. 춤을 추며 노는 공간인 밀롱가에 평소와는 달리 사람들이 싹 사라지고,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시즌이다. 탱고를 20년가량 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연습하러 사라지는 열정의 땅게로스들이 희망찬 미래처럼 보일 것이고, 이제 막 탱고를 시작해 대회를 준비하는 갓난쟁이 탱고인들에게는 떨림과 긴장의 연속일 것이다. 물론 시험을 보는 건 각자의 선택이기는 하다. 이 시험을 위해 탱고인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는 선생님을 골라 열심히 수업을 듣고, 몸을 만든다.


바로 다음 주에 있을, 이름도 거창한 ‘세계 대회 아시아 선수권 준예선 탱고 대회’가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 몇 회 열리지 못 했던 이 행사가 다시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몰래몰래 자신만의 비밀 병기를 준비 중인 것 같다. 얼마 전 밀롱가에 놀러 갔을 때, 대회를 나갈 만한 사람에게 “요즘은 누구 수업 들으시죠?”라고 물어보니까 그의 대답은 “비밀인데”였다. 그래서 나도 비밀 많은 그에 맞추어 이번 대회에서 귀여운 비밀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사실 탱고는 타인과 경쟁하는 스포츠라기보다 나 스스로 고독한 싸움인 예술에 가깝다. ‘내 춤이 왜 이러지. 내 다리가 왜 이렇게 오징어처럼 움직이지. 나만 축이 흐느적거리네’ 하며 우울해하다 보면 대회는 끝날 것이다. 아마 어디에서 수업을 듣는지 비밀이라고 한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여전히 오징어 같은 자신의 모습이 걱정되어 비밀로 하는 것임을 나는 안다.


나의 탱고 파트너는 세상에 하나뿐인 남편이다. 우리는 탱고를 추다가 만났고, 탱고를 막 시작한 그는 그보다 약간 먼저 시작해 춤을 좀 출 줄 아는 나에게 반했다. 그는 나에게 반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매일 아침에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에 맞는 음악 파일을 보내주며 나만의 DJ를 자청하기도 했다. 평소 분석이 취미인 그는, 탱고를 분석한 글을 써서 ‘보배님이 너무 예쁘다’ 등의 문장을 은근하게 덧붙여 내게 공유했다. 당시 동호회 발표회 파트너였던 그가 유난스러워 보이면서도 귀여웠다. 그런 그가 얼마 전 결혼 일주년을 맞아서 처음으로 가족회의를 열었을 땐 이상한 소리를 했다.


우리는 각각 바라는 점 3가지를 이야기하기로 했는데, 그는 내게 ‘밥 먹고 식기를 물에 꼼꼼하게 잘 담가 놓기, 잠잘 때 바디필로우로 침대 절반 이상은 침범하지 않기, 탱고 연습할 때 잔소리 그만하기’를 말했다. 가족회의를 하는데 탱고 이야기를 꺼내는 남편에게 ’내가 오빠 아내지, 탱고 파트너냐’며 회의가 결렬될 뻔했다. 탱고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 갈등이 생기는 우리집이다. 우리는 연습도 안 하는데 연습하는 이야기만 나오면 자주 다툰다. 우리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탱고를 너무 열심히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래도 탱고 대회는 나가고 싶어 남편한테 이번 탱고 대회에 나갈 거냐고 물어보니, 남편은 단호하게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남편은 뭐든 열심히 하는 스타일인데 나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말은 좀 많은 편이라 잔소리를 열심히 하는 게 문제다. ‘허리 아파, 성의 없이 추는 거지 지금, 으악 발 밟지 마’ 등등 연습하다 보면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아무래도 나와 연습하는 게 힘들다고 했고, 나 혼자 나가라고 단호하게 응대한 것이다.


나는 이번에 시간도 되고, 오랜만의 행사라 설레기도 하고, 남편이랑 춤추는 게 좋기도 해서 나가고 싶은데 남편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남편을 설득하고 싶은데 남편은 어차피 여태 연습도 안 했고, 요즘은 춤추는 것 자체가 흥이 나질 않는다며 아무래도 슬럼프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나의 잔소리 때문인 것 같다고도 슬쩍 흘렸다. 아무래도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우리에게 탱고를 알려주는 선생님에게 남편 몰래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탱고 대회에 나가지 않겠대…도와줘(눈물)”


선생님들은 지금 스페인에 살고 있는 아르헨티나 댄서 부부이다. 둘은 우리와 나이도 비슷한데, 2016년에는 세계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었고, 성격도 무척 좋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긍정적이어서 우리가 생각해도 우리는 춤을 못 추는데 항상 자신감을 북돋아 준다. 줌 화면을 통해 만난 그들에겐 어느새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생겼고, 천사 같은 아이는 동화책에 나온 하마를 보면서 “파파”라고 말한다.


내가 그들에게 메신저로,


‘남편이 대회에 안 나가고 싶어 하는데 진짜인지 선생님들이 물어봐 줘..눈물 눈물’이라고 보내자


‘오마이갓. 우리 때문이야. 우리가 너무 푸쉬했나봐.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푸쉬해서 절망감에 빠진 걸 거야. 어쩌지’


‘아니야. 나 때문인 것 같아. 내 잔소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어...’


‘말도 안 돼. 알겠어. 미리 말해줘서 고마워. 같이 잘 이야기해보자.’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고, 우리는 미리 대관해놓은 연습실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설치해 줌 수업을 준비했다. 대회에 안 나가겠다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거대한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마이크까지 야무지게 마련해 줌 수업 녹화 준비를 하는 남편을 보면서 좀 벙찌기는 했지만, 그가 혹여나 선생님들에게 정말로 대회를 안 나간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나 그럼 대회 어떻게 나가지. 대회 나가고 싶은데. 대회 나가면 분명 많이 성장할 수 있을 텐데, 못 하던 끄루사다 동작을 잘하게 될지도 몰라’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선생님들은 나의 헬프 메시지 때문인지, 침울하고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음악을 틀어주며 손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우리는 각자 두 손을 들고 들리는 음악에 따라 박자를 쪼개기도 하고, 늘이기도 하면서 음악에 집중해 보았다. 약간 어릴 때 하던 ‘쌔쌔쌔’를 하는 모습과 비슷했을 것 같다. 우리는 슬쩍슬쩍 웃음이 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은 우리가 나름의 쌔쌔쌔를 마치자, 건치가 반짝이는 입매로 열렬히 박수를 쳐주었다. 숨만 쉬어도 칭찬받는 신생아가 된 것 같았다. 살짝 남편의 표정을 보니 꽤 기뻐 보였다. 그때 선생님은 결정적인 한마디를 했다.


“너희 정말 잘해!! 명확하게 음악을 듣고 있어!! 멋진 옷을 입고 대회에 나가면 지금도 잘하지만 그땐 더 멋있을 거야!!”


“이건 다 과정일 뿐이야. 일단 나가서 그다음 진짜 세계 대회를 나가는 거야!!”


마스크 속에 감춰진 남편의 환한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남편의 마음이 공명하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는 반짝였고, 살짝 고개를 돌려 내게 보일 듯 말 듯 한 입술의 움직임과 목소리로 “우리 대회 나가자.”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되었다. 우리는 대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다음 주 주말에 있을, 이름도 거창한 ‘세계 대회 아시아 선수권 준예선 탱고 대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 탱고 용어


밀롱가(Milonga):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는 장소


땅게로스(Tangeros): 탱고를 추는 사람들


끄루사다(Cruzada): 다리를 크로스 모양으로 만드는 탱고 동작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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