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분위기 프롤로그
일을 너무나도 많이 하던 시기였다. 일을 하기 위해 자고, 동트기 전에 일어나 분홍색 하늘을 보며 택시를 타고 새벽에 카페에 갔다. 점심은 간편한 샌드위치로 때우고, 밤늦게 들어오면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잠이 들었다. 산적한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모순적이게도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일을 해치워야 두통도 사라지는 나로서는 일보다 푹 빠질 일을 만들지 않으면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사는 삶을 2년 정도 지속했을 무렵이었다. 곧 탈이 날 것만 같았다. 피곤함도 피곤함지만, 그에 따라오는 우울감과 번아웃은 나를 깊은 수렁에 밀어 넣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멀리 훌쩍 떠나고 싶다며 여행 계획을 짜기도 하고, 동굴 속에 한동안 잠식되어 있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상처나 외로움 같은 것들이 몸을 쑤시고 들어오는 시기가 있으니까. 멀리 여행을 가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간편한 선택이 있다면,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는 일 정도가 아닐까 싶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 그저 들어갈 뿐인, 지극히도 수동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큰 용기가 필요한 그런 일 말이다.
그 무렵 주변에 나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그러니까 웰니스를 추구하며 사는 친구들은 대체로 여가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당시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었던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친구들은 일을 마치고 나면, 한 시간이라도 발레를 가거나 줌바를 배웠다. 취미로 외국어를 배우는 친구도 있었고, 주기적으로 등산을 다니는 친구도 있었다. 편안한 표정의 친구들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미간에 주름을 잔뜩 찌푸리며 신경질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억울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언젠가 싱가포르에 배낭여행을 갔을 때,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낯선 이의 말이 생각났다. “부러워하면 언젠가는 부러워하던 그 모습으로 살 수 있어. 네가 바라고 원하는 만큼의 삶을 살게 될 거야.”
그래, 하루 24시간 중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오로지 나를 위해 써보자.
일하던 곳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댄스 아카데미에 갔다. 일주일에 한 시간만 나를 위해 쓰자고 다짐했다. 여러 수업을 살펴봤지만, 첫날에는 등록을 하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외로움도 많이 타고, 겁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주목받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는데, 그래서인지 용기가 필요했다. 서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마치 토익 학원에 가서 영어 수업만 얼른 듣고 나올 수 있는 그런 수업을 고르고 골랐던 것 같다.
배우는 인원수가 가장 적기도 했고, 다른 장르의 춤에 비해 음악도 축축 처지는 탱고가 내게는 가장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나처럼 비주류의 춤인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춤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그저 ‘춤’에 열정적이었다. 다른 건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춤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고 싶다는 이유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었다. 서로를 배려했고, 무관심했다. 그런 분위기가 편했다.
머리를 새하얗게 비우고 그저 팔로잉에 집중해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따라 다른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은 그 시간을 즐겼다. 탱고가 파트너와 함께 걷는 춤이기 때문에, 리더의 걸음에 맞춰 함께 걷기 위한 집중력과 스스로 서기 등을 몇 개월이고 배웠다. 같이 수업을 듣는 이들과 손바닥을 맞대고 눈을 감고 걷는 것이 명상처럼 느껴졌다. 탱고를 배우고 온 날이면 뇌도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
가끔 연습에 가서 다른 사람과 춤을 추며 고군분투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달려와서 ‘이 아이는 꽃처럼 섬세하기 때문에 정말 조심스럽게 춤을 춰야 해’라고 상대에게 당부하고 가곤 했는데, 나는 이 말이 어떤 칭찬보다도 고마웠다. 타지에서 일하던 내게 일터 사람들이 아닌, 나를 이해해 주는 따뜻한 새 이웃이 생긴 기분이었다. 매주 한 번씩 가던 수업은 연습이다 밀롱가다 하면서 조금씩 늘었다.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은은한 호의에 이끌려서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탱고라는 춤에 단번에 빠져든 것 같지는 않다. 크고 작은 경험들과 그에 따른 복잡하고 미묘한, 그러면서도 나를 위해주는 맑은 마음들. 그것들이 모두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이게 탱고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이웃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고, 이제는 익숙해진 음악을 듣고, 가끔 탱고가 밉다고 혹은 탱고가 너무 재미있다고 주변에 선언하기도 하면서 탱고에 깊게 스며들었다. 아마도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깊게 스며 버린 분야가 아닐까 싶다.
다섯 명이 조금 넘는 학생들. 미국에서 탱고를 배워온 태국인 선생님과 그 옆에서 도우미를 하는 나와 동갑내기의 까무잡잡하고 애교 많은 선생님. 일본인 두 명, 베트남에서 온 한 명, 태국인 한 명, 거기에 나를 포함한 한국인 두 명. 국적도 나이대도 모두 달랐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탱고를 배우기 위해 방콕의 댄스 아카데미 초급반에 모였다.
건물 1층에 들어서니 2층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며 웃는 탱고 선생님이 있다. 슈즈를 갈아 신고 수업에 들어가니 아직 낯설게만 느껴지는 탱고 음악이 들린다. 맑고 가녀린 목소리의 바이올린, 경쾌한 피아노의 또로롱거리는 소리, 거기에 탱고 음악의 분위기를 잡아주는 구슬픈 반도네온. 높은 톤의 도우미 선생님의 ‘원 투 쓰리’ 카운팅. 하나 둘 셋. 탱고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