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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Dec 31. 2023

27살을 마무리하는 날

마음껏 향유했던 8번째 20대, 이제 안녕!

That's what your 20s are for.

마음껏 성공하고, 마음껏 실패하고, 마음껏 행복하고, 마음껏 슬퍼하자.

이미 너무 많이 맛봐서 미래의 내가 그리워하지 않을 만큼.



공식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지 2년이 되어간다.

학부생 때부터 지금까지 인턴도 3번이나 2년 동안 하고, 미국 한달살기도 해 봤다.

이쯤 되면 어딘가에 정착할 만도 한데, 아직도 난 취업을 준비 중이다.


나의 27살은 도전, 성공, 불안, 포기, 실패, 재도전, 재도약으로 가득 찼다.

중학생 때부터 진로 고민에 온 힘을 쏟았는데, 27살이 된 지금도 고민 중이다.


내 삶은 안정적이기보단 도전적이었다.

기숙학원, 공부 포기, 조리과 입학, 셰프, 편입,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입학, 교환학생, 마케팅/광고 인턴 3번, 프리랜서 에디터, 해외여행 등등

그래서 난 정착보단 도전을 열망하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정착해 안정적이어진 삶을 열렬히 갈구한다.


언젠간 나도 정착을 할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정착하기만을 기다리며 불안한 삶을 살 순 없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정착하려 한다. 나를 수용하고, 그에 따른 내 인생을 이해하려 한다.

불안함을 정면돌파하며 내 일상을 족족 기록하고, 이런 인생도 꽤 괜찮은 삶 중 하나라는 것을 주장해보려 한다.

얼마 전까지 내 2023년은 실패로 가득 찼다고 좌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렇게 올해의 마지막 끝자락에서 되돌아보니, 나의 피, 땀, 눈물이 흠뻑 묻은 노력과 성과들로 가득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참 많은 걸 했다. 27살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마음껏 쓰면서 말이다.

이렇게 계속 20대를 보낸다면, 난 정말 멋진 30대가 되어 있겠지.


모든 취업준비생들, 그리고 정착하지 못해 불안함을 겪는 20대들을 위해서.

- 2023년 12월 31일, 민지의 1년 회고 기록.



2023년 1월.

- 2번의 도전 끝에 브런치 작가에 선정됐다.

취준하며 느끼기 어려운 성취감을 느꼈다. 2022년 10월부터 인스타그램에 에세이를 공유해 왔는데, 이제 진짜 '작가'로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코스메틱 브랜드에 제품제공을 받아 에세이 콘텐츠를 제작했다.

대학생 때부터 블로그,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며 다양한 코스메틱 브랜드로부터 제품제공을 받았다. 하지만 '에세이 작가'가 된 뒤에 첫 광고 콘텐츠였고, 나는 제공받은 바디로션에 걸맞은 바디케어 리추얼을 소재로 에세이를 썼다.


2023년 2월.

- 광고대행사에 뷰티 에디터로 합격했다.

퇴사 후 5개월 만에, 뉴욕 한달살기 후 3개월 만에 취업에 성공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정확히 파악한 상태에서 회사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 광고대행사에 첫출근했다.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첫날부터 실무에 투입이 됐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던 뷰티 에디터분들이 나의 상사라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러웠다.


2023년 3월.

- 다채로운 경험으로 일상을 꽉꽉 채웠다.

내가 대학생 때부터 일하고 싶었던 회사 건물 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먹으며 회사생활을 즐겼다. 우리은행 콘서트에 당첨돼 큰 규모의 콘서트도 관람해 보고, 틈틈이 전시회도 가고 동네 구경도 하며 각종 문화생활과 예술로 가득한 일상을 보냈다.


2023년 4월.

- 요가를 시작했다.

선배 에디터의 추천을 받아 요가를 시작했다. 원래 필라테스를 했었는데, 그룹 필라테스 특성상 예약을 미리 해야 해서 불규칙한 직장인 일상에 맞지 않아 겸사겸사 바꾸었다. 올 한 해 잘한 일 중 하나로 꼽고 싶다. 할 때마다 조금씩 몸이 단단해지고 유연해진다. 안되던 자세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정신건강에도 좋다. 중심이 내가 아닌 외부로 옮겨갈 때마다, 중심을 다시 나로 되찾아준다. 깊은 호흡 및 명상 역시 안정에 좋다.

- 매거진B에서 주최하는 위스키 발베니 시음회에 다녀왔다.

에디터로 일하며 점점 더 에디터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위스키에 딱히 관심은 없었어서 그냥 맛있게 마시고 먹고 왔다. 위스키 도수가 높아 두 잔 마셨는데 취해버렸고, 시음회가 끝나기 전에 조용히 집에 왔다.

- 한강에 가서 책을 읽었다.

에디터로 일하니까 평소보다 더 많이 책을 읽어야 했다. 문해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키우고,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과학도서를 읽었다. 너무 어려웠고 읽는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렸다.

- 범블을 통해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다.

미국 한달살기가 너무 그리웠다. 사고가 자유롭고 열린 문화와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이 좋았다. 한국에서도 외국에 사는 것처럼 지내보기로 했다. 요가처럼 올 한 해 잘한 일 중 하나로 꼽고 싶다.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어 특별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친구들과 잘 지내는 법을 연습할 수 있었다.


2023년 5월.

- 회사 안에서, 또 일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공휴일이 참 많았던 달. 고객사 프로젝트가 지연되어 업무가 많지 않았다. 업무시간을 활용해 직접 트렌드조사를 하러 바깥에 나가기도 하고, 회사 내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친구와 강릉여행도 다녀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내가 지향하는 관계가 뭔지 더 뾰족하게 좁혀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멀어지기도 했다.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더 소중히 여기기 위해 나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워가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 AGE20'S와 협업해 에세이 콘텐츠를 제작했다.

3월 즈음,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처음으로 원고 기고 요청을 받았었다. 기다리던 끝에 해당 프로젝트가 드디어 시작되어, '사랑하는 사람'을 소재로 에세이를 썼다. 해당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가로 공식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 내 콘텐츠가 업로드됐다. 첫 원고료를 지급받았다. 첫 원고료 치고 많이 받았다.


2023년 6월.

- 롱디하는 남자친구가 한국에 왔다.

6개월 만에 남자친구를 만났다. 나는 출근 전 새벽에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서 마침내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내 기억보다 키가 커 보였다. 남자친구는 내 생일을 정말 잘 챙겨주었고,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오프라인 데이트를 했다. 콘서트도 가고, 동네 산책도 하고, 맛집도 가고, 호캉스도 하고.

- 내 생일이 있었다.

생일 전날은 남자친구와 함께 내가 가고 싶었던 아웃백에 가서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생일 당일은 야근을 했다. 괜스레 눈물이 났었다.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많이 힘들었다. 아니, 그냥 일 자체가 힘든 거였을지도.

- 퇴사를 했다.

한 주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남자친구가 한국에 왔고, 내 생일이 있었고, 퇴사를 했다. 이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하고 경력직으로 이직할 계획이었다. 다니는 내내 불안 불안하긴 했지만 이렇게 퇴사해 버린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한 2년 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의지하며 이 나쁜 기분에서 벗어나버리고 싶었지만, 반대로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꺼내보이기 무서웠다.

- 피부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피부과도 다녔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중앙난방 시스템이라 입사초부터 건조함에 시달렸다. 여름이 되어도 건조함이 해결되지 않아, 메이크업도 전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피부과에서 간단한 시술을 받았다. 3번 정도 받은 것 같은데 별 효과가 없었고, 퇴사하니까 해결됐다. 하하.


2023년 7월.

- 퇴사는 했지만 내 인생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함께 퇴사한 동기와 퇴사파티를 하며 훌훌 털어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놀며 한 달을 보냈다. 부족했던 직무 역량을 채우기 위해 스피치 학원에 다니고 구몬 학습에 등록해서 국어와 한자를 공부했다. 혼자 방에서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도 영화도 엄청 많이 봤다.


2023년 8월.

-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알바몬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올려놨는데, 한 스타트업으로부터 프리랜서 에디터 오퍼를 받았다. 면접을 보고 합격해서 파트타임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게 됐다. 대표님은 젊은 여성분이었는데, 굉장히 친절하고 나를 모든 순간에 배려해 주었다. 일주일에 단 3일, 하루에 4시간 일하는데, 나의 미래 커리어를 고려해 업무를 배정해 주셨고, 내가 쓴 기사가 기명으로 발행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도 하셨다. 대기업과 사회적 기업의 인터뷰 콘텐츠를 제작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미국 인턴에 지원해 합격했다.

프리랜서로 운 좋게 사이드잡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빨리 풀타임으로 취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취업 시장으로 들어갈 용기도 없었고, 마음도 없었다. 몇 년 전부터 알아온 미국 취업에 도전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서류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까지 얻어냈다. 처음으로 영어로 면접도 봐보았다.


2023년 9월.

- 한국 오피스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비자 발급을 준비하며 한국 오피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비자 발급은 생각보다 더 까다로웠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나는 많은 문서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읽고, 내가 작성한 내용들도 여러 번 확인해서 실수가 없는지 살폈다. 낮에는 한국 오피스에서 적응하고, 퇴근 후 밤에는 비자 발급을 준비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많이 피곤했다. 스폰서 기관 인터뷰도 봤다.


2023년 10월.

- 출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국 내 나의 신분을 이 회사에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종 관문인 대사관 인터뷰를 보기 몇 주전 진행을 중단하겠다고 회사와 에이전시에 전달했다. 약 700만 원을 잃었다. 충격이 많이 컸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남자친구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불안,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 일주일 내내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놀았다. 미국에서 만난 친구를 서울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친구에게 초대받아 등산 모임에도 나가 북한산 정상에도 올랐다. 동네에서 정말 맛있는 르뱅쿠키 맛집을 찾기도 했다.

- 새로운 회사 면접을 봤다.

불안한 와중에도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놨었다. 대학생 때부터 관심 있던 회사에 면접볼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면접 중에도 면접관은 계속 우려를 표시했다. 이 인턴 포지션은 정규직 전환이 안될 가능성이 높은데 내 스펙으로는 경력직 신입에 지원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결국 불합격했다.


2023년 11월.

- 전 회사 동기와 경주 여행에 다녀왔다.

집에서 맛있는 집밥도 계속 만들어먹고, 요가도 꾸준히 하고, 가끔가다 친구도 만나서 리프레쉬도 했다. 그리고 전 회사 동기와 경주 여행에 다녀왔다. 자전거를 타고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동기 가족의 별장에 머무며 티비를 보며 떠들었다. 청아한 자연에서 맑은 공기를 마쉬며 잠시나마 취준생의 불안함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서류 불합격 메일을 받기도 했다.

- 또 다른 회사 면접을 봤다.

하반기 서류 합격률이 굉장히 좋았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회사와 대기업에도 여럿 붙었다. 이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역시 면접 중에 직무 연관성 관련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받았다. 특히 세일즈와 관련된 마케팅 경험을 물어보셨는데, 세일즈를 목표로 업무를 해본 적은 없어서 참 아쉽게도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을 순 없었다.


2023년 12월.

- 다시 회사 면접을 준비하며 나의 가능성을 보았다.

인턴 경험만 2년이라 신입과 중고신입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 근데 운 좋게도 내가 항상 열망하던 외국계 대기업에 소셜 미디어 포지션으로 경력직 오퍼를 받았다. 약 일주일간 면접을 미친 듯이 준비했다. 회사, 직무 관련된 모든 자료를 섭렵하고 기획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나는 외국계나 대기업 인재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면접에서 hiring manager(팀장)에게 같이 일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준비를 많이 해주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이때 느꼈다.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한다고. 목표를 크고 높게 잡으니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 준비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크게 느꼈다. 면접 때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아쉽게 합격하진 못했다. 그래도 hr을 통해 추후 더 적합한 기회가 있으면 제안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어떨 때 동기부여가 되고 열심히 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커리어 패스를 걷고 싶은지 등 꽤나 유의미한 인사이트들을 많이 얻었다.

- 다시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면접 불합격을 경험하고, 과거에 지원한 회사의 서류 전형에 합격했지만 취업 목표가 수정돼 면접을 정중히 거절하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또 기회가 찾아왔다. 재택근무 가능한 프리랜서 에디터에 합격했다. 이틀 동안 본사에서 교육을 받았고, 이제 1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이드잡으로 프리랜서 일을 할 예정이다.

- 범블에서 만난 두 명의 친구와 최고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친구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팝업스토어에 가고, 술도 마시고, 카페에서 진지한 이야기도 나누며 Girl's night out을 보냈다. 내가 두 친구를 서로 소개해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다행히 우리 셋이 관심사나 가치관이 비슷해서 너무 잘 맞았다. 나와 같이 창의성, 예술성, 지속가능성을 지향하는 좋은 사람들을 범블을 통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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