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코노미(MEconomy)시대의 공예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을 소유해야 하는가?

by 홍지수


영국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저서《털 없는 원숭이》에서 ‘인간은 도구 없이, 사물 없이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라고 이야기한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생태주의를 지향하고 그것에 맞는 삶을 살려는 사람도 필요한 물건은 사야 하고 써야 한다. 사치와 낭비를 금하는 수행자들의 공간인 산 중 절간 생활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소비라면 ‘가치 소비’, ‘합리적 소비’가 대안이다. 이왕이면 좋은 재료와 수법으로 만든 물건을 사용하며 얻는 쾌적함과 만족감도 배제할 수는 없다. 팬데믹 19 이후 공예의 존재와 역할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해진 이유다.


msk_61dbef8542a29.jpg 최근 고급화된 공예시장은 미술계를 넘어 유통계로 공간을 확장하고 있다. ⓒ청담 분더샵
1037_971_349.jpg 당신은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은 저축이나 내 집 마련, 승진과 같은 거대 가치를 내려놓고 일상의 소소와 작은 소비에서 행복을 찾는 ‘소확행(小確幸)’에 주목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소확행은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확실한 소비, 미코노미(MEconomy)로 발전했다. 미코노미는 개인이 정보의 제작, 가공 및 유통을 전담하는 프로슈머로서의 역량이 강화됨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경제 현상이다. 남의눈을 신경 쓰는 대신 ‘나’의 기준과 가치, 개성에 맞춘 소비를 지향가치구매를 선호하는 MZ세대가 이를 이끌고 있다. 저축이나 내 집 마련, 승진과 같은 거대 가치 대신 심리적 만족을 중시하는 소확행을 맛본 MZ세대들은 더 나아가 정성스레 조각품을 만들다 마치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처럼, 작은 소비가 마치 나를 여유 있는 사람,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돈을 더 쓰더라도 나를 설명하고 나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물건의 소비는 사치 혹은 과소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우울 및 무기력에 빠져들고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기반으로 유통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미코노미 현상도 급부상하고 있다. 요즘 미술시장이 보여주는 뜨거운 시장과 투자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615e2d6b-84f5-41fa-9950-90e34b319db1.jpg 2018 밀라노 가구 박람회 장외 전시인 푸오리 살로네에서 진행된 루이비통의 ‘레 쁘띠 노매드 컬렉션’. 유명 산업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홈 제품(www.joongang.co.kr)




현 상황에서 여러 공예 관련 전시, 행사, 정책에서 엿보이는 공예계의 고민은 ‘명품 등 고액(高額) 소비에서 나만의 것을 집중해 소비하는 가치(價値) 소비로 이동하는 빠른 트렌드 변화 속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팔 것인가?’다. 이미 패션, 식품 등 유행에 민감한 업계들을 중심으로 현 유통시장의 소비주체인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소통, 마케팅 전략이 활발하다. 최근 공예계에서는 굿스 마케팅으로 재미를 본 스타벅스, 블루 보틀, 카카오 등을 벤치 메이킹(bench making) 삼아 MZ세대의 소비성향에 발맞춰 공예상품의 체질 변경과 시장 확대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이 발 빠르다. 다른 한편, KIAF, 여러 아트페어의 성공에 힘입어 공예를 순수미술, 고급 디자인 상품에 준하는 아트 오브제로 설정하고 공예의 위계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도 추진 중이다. 셀럽과 부유층 등 우리 사회의 부르주아 계층의 관심을 공예로 이끌고, 시장을 세계로 확대해 고부가가치와 매출액을 높이며, 나아가 이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하고 유행을 선도할 스타성 있는 작가군을 형성하려는 일련의 시도와 정책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한국 공예를 예술화, 고급화의 색깔로 덧입히고 체질 개선하려는 시도들은 자칫 공예를 오히려 지엽화하고 공예의 혜택을 불평등하게 분배시킬 수 있다. 역사의 교훈을 되짚어볼 때, 공예 제조 상 고급화, 예술화의 시도들은 이것을 소비할 수 있는 계층의 호사스러운 고급 취향을 충족시키는 데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라도, 인구 대다수에게 공예의 혜택을 배분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즉, 공예의 고급화, 예술화는 신분과 세대의 고저, 종교와 정치성향과 무관하게 차별하지 않고 제공해온 공예의 보편성을 위협할 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적했던 아비투스(habitus) 판단에 따른 ‘구별 짓기’, 계층 간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공예와 음식은 생의가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필요로 하는 필수재다. 공예나 음식 모두 투입된 재료와 가공에 필요한 인간의 노동력의 수준과 투입량, 수요의 정도에 따라 시장 가격이 형성된다. 보편성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각자 신분, 부의 정도에 따라 음식을 먹고 공예품을 입고 덮고 담아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요즘은 공예나 음식의 고급, 중급, 하급이냐를 결정하는 것이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무엇을 선택하든 제 가격만 치를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무엇을 고르고 취하는 일이 극히 어렵지 않은 지금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라고 하겠다.




950f59874eab9c6033b3486c.jpg 2022 밀라노 디자인 위크-한국공예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 전.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




영국의 미술공예운동가들과 바우하우스 추종자들이 우려했듯 기계 생산품은 고급을 중급으로 낮추기도 했지만, 하급을 중급으로 올리고 대중의 재화 선택권과 소유의 폭을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문제는 산업시대가 인간에게 안겨 준 선택의 확대와 물질적 풍요가 되가져온 병이다. 빈곤과 기아로 인한 질병이 사라지는 것을 기뻐할 사이도 없이 우리는 패스트푸드와 소프트 음료가 가난한 자를 병들게 하고, 넉넉한 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병폐와 소외에 가장 먼저 노출되고 취약한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환경 파괴와 새로운 질병의 창궐까지도 함께. 공예 역시 마찬가지다. 공예품이 우리의 몸, 생각, 인간관계, 삶의 질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질 좋은 재료와 솜씨로 만든 공예품의 사용은 마땅히 우리가 영위할 삶이자 권리여야 한다. 그러나 공예가 고급화, 예술화될수록 사람들의 선택할 공예품의 질과 편의는 제한되고 편중된다.

공예는 단순한 재화,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공예는 어떤 사회, 어떤 유행 속에서도 탐욕과 포만에의 욕망에서 유예된 것으로 존재해야 한다. 모든 시뮬라크르의 운명을 가진 것들, 탐욕의 거품 속에서 도덕적 실존을 잃어버린 것들 사이에서 공예는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신조요, 생존의 가치다. 인간을 인간답게 생존하게 하는 것이 과거의 공예라면, 시대가 달라져 현대인이 공예에게 기대하는 인간다움의 요구 또한 복잡, 다양해졌다.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 역시 요즘 사람들이 공예에게 요구하는 중요한 기능이요, 요소다. 그러나 공예품이 소확행, 미코노미의 기쁨을 줄지라도, 한낱 소유와 욕망 해소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기적으로 새 제품을 사는 ‘업데이트 소비’와 동시에 고장 나지 않아도 버리는 ‘파괴의 소비’의 대안이 될 때, 공예의 가치와 영속성이 빛이 난다. 지금은 필요가 아닌 욕망으로 제품을 사는 것, 새로운 물건의 소비가 아닌 어떤 사물을 가지느냐에 따라 자신의 존재 가치가 증명되는 시대다. 그럴수록 일상재이자 필수재인 공예는 누리고 소유할 수 있는 위보다는 누리지 못하는 아래를 먼저 살피며 공예가 해야 할 ‘보듬’과 ‘수호’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궁구하고 실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공예의 생산성 고양이나 고급화, 예술 화보다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미코노미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공예의 소명이자 임무다.홍지수_미술평론/ 전시기획자/ 미술학 박사


+ 본 고는 2022년 월간 도예 3월호에 실린 공예 칼럼 '소소 담화' 일곱 번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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