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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브런치

무라카미 하루키

가제: 모텔


없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현수가 고른 모텔에는 리셉션이 없었다. 직원도 없었다.


대신 좁은 복도에는 그것들을 대신하는 키오스크가 우두커니 서있었을 뿐이다.


키오스크에 비친 현수의 얼굴은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어딘가 얼이 빠져 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현수와 두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4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미간을 찌푸린 채 스크린에 띄어져 있는 대실 버튼을 보며 현수가 말했다. 그의 질문 아닌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전 그녀는 어떠한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왔다. 단순 부모님의 나라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쳐있었다.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 틈에 섞여사는 게 어느 순간 피곤하게 느껴졌다.


...


writer's note:


- 그녀는 누굴까? 외국인? 이민 2세? 교포?

- 뿌리를 찾는 이야기, 너무 뻔하지 않을까?

- 모텔로 상징되는 한국만의 문화, 역사, 사회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 내 이야기 아닌데 내 이야기인 줄 알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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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파나마 세비지 이리데센스 게이샤 카보닉 메서레이션 워시드 커피.


서울의 일상은 퍼석하고 삭막하다.


지하철에 설치된 스크린도어마저 슬퍼 보인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져있는 탕후루 꼬챙이들마냥 사람들은 날카롭고 뾰족하다.


퍼석하고 삭막하고 슬프고 날카롭고 뾰족한 이도시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찾는 건 묘연한 일이다.


파나마 세비지 이리데센스 게이샤 카보닉 메서레이션 워시드.


Panama Savage Iridescence Geisha Carbonic Maceration Washed.


어느 일요일 오후, 우연히 들린 카페의 메뉴판에 적혀있는 이 웅장한 커피의 이름을 보고 난 어떤 감동을 느꼈다.


13,000원이라는 가격은 그 이름이 걸치고 있는 위엄에 걸맞은 가격처럼 보였다.


...


writer's note:


- 이름에 대해서. 강범수는 어떻게 강폴이 되었는가.


- 커피의 이름을 이루는 단어들을 하나씩 해석해 보며 이름을 이루는 한자들을 해석해 보면 어떨까?


- 발음하기 쉬운 사람들의 이름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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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제가 요즘 쓰기를 미루고 있는 글들입니다.


브런치가 뭐라고. 구독자 27명이 뭐라고 전 글 쓰기를 미루고 있는 걸까요.


밥을 먹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모임을 하다가도. 내가 뭘 쓸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나는 삼십오 년 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써왔지만 영어에서 말하는 '라이터스 블록 writer's block', 즉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경험은 한 번도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 영감은 구라쟁이가 분명합니다.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경험이 한 번도 없었다고? 거짓말하지 마!!!라고 외치고 싶지만 진짜일까 봐 겁이 납니다.


정말 이런 사람들만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걸까요.


한 자 한 자 고통스럽게 꾹꾹 눌러써봅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뇌를 쥐어짜 내며 다시 써봅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메모장에 처박아둡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글쓰기를 미루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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