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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모텔

단편 소설 써보기


없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현수가 고른 모텔에는 리셉션이 없었다. 직원도 없었다.


좁은 복도에는 그것들을 대신하는 키오스크가 우두커니 홀로 서있었을 뿐이다.


키오스크에 비친 현수의 얼굴은 바람 빠진 풍선인형처럼 어딘가 얼이 빠져 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비치지 않았다. 그녀는 현수와 두 발자국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


“4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미간을 찌푸린 채 스크린에 띄어져 있는 대실 버튼을 보며 현수가 말했다. 그의 질문 아닌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전 그녀는 어떠한 희망을 품고 한국으로 왔다. 단순 부모님의 나라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쳐있었다.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 틈에 섞여사는 게 어느 순간 피곤하게 느껴졌다.


현수의 뒤를 따르며 그녀는 문득 이 낯선 도시에서 보낸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았다.


대도시에서 사는 것.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는 것. 21세기에 사는 것. 몸뚱아리에 갇힌 채 사는 것. 그리고 사랑에 빠진 것.


그래. 호텔과 모텔들이 점령한 21세기 자본주의 도시에서 사랑에 빠진 것. 그리고 내던질 몸뚱아리가 있는 것. 그것이 자신이 덧없음 속에서 사는 이유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모든 도시에는 저마다의 비밀이 존재하고 그녀 또한 낯설고 새로운 이 도시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아야 하는 존재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싸구려 플라스틱 카드키로 열린 방문 너머로 현수와 그녀는 걸어 들어갔다.


침실의 벽지는 낡게 해진 그녀의 컨버스 신발과 같은 베이지색을 띠고 있었고 몇 가지 불가사의한 얼룩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아를의 침실처럼 공기를 찌르는 가혹한 오버헤드 조명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는 햇빛의 존재를 지우기에 충분했다.


침대 위에는 하얀 천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얇은 매트리스와 그 위에 놓인 핑크색 누비이불이 보였다. 이불 위에 아로새겨진 꽃무늬가 꼭 여드름 자국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방의 모든 것이 싫었다. 특히 모든 것이 거세된 채 기능만 강조된 가구들의 정직함이 싫었다.


그녀는 변기 위에 웅크리고 앉아 소변을 보았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나사 풀린 전구처럼 보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손을 씻었다.


그 손이 만진 것은 자신뿐이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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