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8 다짐

글을 뺏기다

한없이 게으르게 침대에 누워있는 널 보면 오늘은 잔소리하지 말아야지 하고 굳게 먹었던 다짐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연애는 결혼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가능성 중 평생을 함께 할 누군가를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예뻤다. 눈매는 고양이 같았다. 피부는 지나치게 새하얘서 너를 만질 때마다 흰 눈을 밟는 것 같았다. 목소리에는 애교가 넘쳤다. 너의 두 눈이 가느다랗게 휘는 걸 보는 걸 난 좋아했다.


너와 결혼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너의 눈을, 나의 입을 닮은 아이의 얼굴을 마음에 그려보았다. 너는 한사코 너의 눈을, 나의 입을 닮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년이 지났다. 너를 보기 위해 나는 수백 번의 기차표를 끊었다. 어쩔 땐 수업을 땡땡이치기도 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너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으리라고 내 자신에게 속삭였다.


너는 너를 미워했다. 나는 너를 사랑했지만 너를 미워하는 너만은 사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서로의 몸체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이 조각조각 떨어져 내려 가는 광경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하자라는 나의 말에 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끝이 났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내렸던 지하철역, 함께 손잡고 걸었던 공원을 혼자 거닐었다. 한쪽씩 이어폰을 끼고 즐겨 들었던 노래를 들었다. 공간에 귀속된 추억이 오랜 시간을 지나 찾아오는 이 감정을 너도 느꼈을까?


너에게 연락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깨고 너의 이름을 카톡에 검색해보았다. 찾지 못했다.


2023.07.22


이 글을 보고 친구가 남겨준 댓글:


모든 사랑은 저마다의 이름을 남긴다.


그것은 때로는 미련으로 해석되고 때로는 집착으로 때로는 어설픈 반추로 남는다.


결국 끝나간 사랑은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처절한 과정 끝에 내놓은 결과일 뿐 섣부른 결정도 감정에 휩쓸린 결정도 아니었다는 걸 내 자신은 알고 있다.


결국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나의 미련의 일기는 아마, 새로운 사랑이 오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미련하지도 애석하지도 안타깝지도 않다 하나도. 그저 하나하나 모든 회상들을 추억들을 기억들을 외로움들을 내가 이겨내야 한다는 것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17 나에게 쓰는 편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