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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 반팔 1

의류

by 하얀 얼굴 학생 Jan 29. 2025

 애착 인형. 

 애착이 가는, 심하게는 집착하기도 하는 대상이다. 아기나 어린아이들이 애착을 가진 대상 또는 장난감으로, 주로 곰이나 토끼 등 털로 된 동물 인형이 많다고 한다. 모 심리학자의 새끼 원숭이 애착 실험 결과와도 유사하다. 새끼 원숭이에게는 젖병이 달린 '철사 엄마' 와 젖병이 달리지 않은 '천(또는 헝겊) 엄마'가 있었다. 새끼 원숭이는 배가 고플 때는 철사 엄마에게 가서 젖병을 물었지만, 그 이외의 시간에는 헝겊 엄마에게 붙어있었다고 한다. 스킨쉽, 촉감, 온도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사하는 실험이다. 


 어린 시기를 지나 정신적으로 성숙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애착 인형에게서 점점 독립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신적 성숙에는 개인차가 있기에 그 시기가 모두 같진 않다. 나이가 꽤 들었음에도, 애착 인형에 계속 애착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 또는, 그 형태만 달라졌을 뿐 어른들도 본인만의 애착 인형을 마음 한켠에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토피를 앓고 있는 그의 경우는, 애착 인형이 아니라 '애착 반팔'을 갖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껴안고 문질러서 색이 바래고 여기저기 때가 탄 애착 인형 같은.



 그가 손톱으로 미친 듯이 긁어대서 박살난 피부. 이 피부가 감당할 수 있는 옷은 많지 않다. 일단 모든 옷은 그의 몸에 닿기 전에 사전 작업을 해야한다. 옷 뒷목 쪽에는, 브랜드나 상표명을 달아놓은 택이 있다. 그는 이를 '표딱지'라고 불렀는데, 이 표딱지가 목 뒷부분을 가렵게 하기 때문에 오려내야 한다. 가위로 오려낸 뒤에도, 절단부가 날카로우면 이 또한 피부를 자극한다. 그래서 항상 그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표딱지를 오려낸다.


 보푸라기나 털 따위가 자극하는 스웨터, 땀이 흡수되지 않는 나일론/가죽 따위 옷은 아예 배제한다. 그런 옷을 입을 때마다, 언제나 예외없이 열이 뻗쳐오르고 손톱을 세웠다. 의복의 장식적 용도 따위는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에게 의복이라는 것은, 단순히 본연의 목적에만 충실하면 된다. 가렵지만 않았으면. 피부를 자극하지 않고 몸만 가릴 수 있었으면. 이 기준에 부합하는 재질은 몇 되지 않았다. 면과 천. 그뿐이다. 애착 인형의 재질과 유사한, 부드럽고 편안한 질감이다. 물론 털은 없어야 한다.


 그는 사시사철 언제나 안에 부드러운 재질의 반팔을 덧대어 입었다.(여름에 반팔을 입을 때도 그랬다) 그렇게 피부에 1차 방어선을 형성해야만 자극이 덜했다. 어릴 적부터 계속 그렇게 입다보니, 어느덧 습관이 되었고 집착이 되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덜 자극되고 덜 가려운 것인가?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안에는 무조건 부드러운 면티를 덧대어 입어야 한다. 그래야 덜 가려운 것 같고, 마음도 안정된다.


 도대체 몇 벌의 반팔이 그를 거쳐갔던가. 부드러운 반팔이라 해도 모두 같은 것이 아니다. 폴리에스터 등 그 구성과 조합(퍼센트)에 따라서 느낌이 또 다르다. 이건 부드럽긴 한데 자꾸 가려운 것 같고, 이건 부드럽긴 한데 자꾸 열이 뻗치고. 신나게 손톱을 세워 긁은 날 입었던 반팔은, 애꿎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 다시 입기가 꺼려졌다. 저 반팔 때문에, 저 옷 때문에 아토피가 더 심해진 것 아닌가.



 그의 피부 기준, 애착 기준에 미달한 반팔들은 꾸준히 버려진다. 동시에, 극악의 기준을 통과한 극소수는 애착 반팔이라는 지위를 굳건히 유지한다. 며칠이고, 몇달이고, 몇년이고 계속해서 입는다. 그의 애정을 독차지하는 반팔들은 99%가 흰색이다. 하필이면 흰색. 새하얀 반팔 캔버스가, 그의 몸이 분비하는 물감으로 알록달록해진다. 그는 반팔을 입을 때마다 이를 보며, 단풍 무늬 같다고 생각한다. 가을철 빨갛고 노랗게 물든 단풍잎. 그의 몸이 분비하는 두 가지 색깔의 물감, 빨간색(피)과 노란색(진물)의 조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그려낸 그의 작품.


  - 너무나 오래되어, 흰색에서 약간 회색으로 변한 반팔

  - 섬유의 결합이 느슨해져 있는대로 부드러워진 (특히 목 부분)

  - 결합이 느슨하다못해 끊어져 여기저기 빵꾸가 난

  - 빨간색과 노란색으로 여기저기 골고루 물들어있는



 애착 반팔을 보며, 그는 자랑스러움과 뿌듯함 비슷한 것이 느껴진다. 오랜 기간 함께 해온 전우를 보는 기분이랄까. 그는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 빨갛게 빨갛게 물들었네~ 노랗게 노랗게 물들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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