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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Jul 02. 2021

Backpackers

 그가 머물던 백패커스는 3층 건물에, 1층은 필로티 형식으로 떠 있고 건물도 중정 형식으로 가운데를 뚫어 놓은 구조다. 뚫려 있는 1층 중앙 공간에는 큰 테이블 여러 개와 수영장이 있다. 그야말로 층간, 투숙객 간 소통을 위해서는 최고의 공간 구조다. 그가 이를 알고 예약한 것은 물론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 백패커스의 하루 숙박비는 대략 17불, 주말에는 더 비싸다.


 그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계획하며 몇 가지 목표를 정했는데, 그중 하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영어다. 그는 1년 동안 호주에서 살고 돌아온 후, 그가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한다면 그건 실패한 워킹홀리데이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영어 숙달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말을 많이 했다. 객실에서는 룸메이트들과 이야기했고, 룸메이트들이 없을 때는 1층에 내려가 테이블에 앉아 괜히 지나가는 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어렸을 적 이런저런 비싼 사교육을 받았었는데, 그중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바로 영어다. 억지로라도 외국인 선생님 반에서 영어 이름을 만들어 이야기했던 것이 부실하게나마 기반이 된 모양이다. 그리고 백패커스 내의 호의적인 분위기도 그에겐 유리한 조건이었다. 백패커스에 머무는 이들은, 워킹홀리데이를 목적으로 온 20대 유럽 청년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기 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것이 크게 유행이라 한다. 

 아직 사회를 맛보지 않은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유럽 학생들이 세계를 경험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호주에 왔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인연에 활짝 열려 있는 상태의 그들에게, 난생처음 보는 피부색과 외모를 가진 그는 그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을 터다.


How are you / Good morning / How was your day


 그는 이런 상투적인 인사를 남발하며 모두와 이야기했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의 영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때로는 일부러 실없는 농담도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이 점은, 그의 영어에 대한 생각과 이후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본다.)


 그가 놀랐던 점은, 유럽을 비롯한 외국 청년들의 영어가 생각보다 유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독일과 프랑스 청년들의 영어는 그의 수준과 비슷했는데, 그들이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영어를 수강하긴 하나 아직 영어를 숙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말하다 보니 자신의 영어 수준도 그렇게 떨어지는 것 같진 않겠다, 그는 신이 났다. 그렇게 유럽 청년들과 그는 밤새도록 술도 마시고, 2층 침대 위아래에서 잠을 자기 전까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서로의 목적에 부합하고 도움이 되었기에 이루어진 대화였지만, 그렇게 냉소적으로 말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원래 인간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며, 적어도 이때의 그와 백패커스 청년들은 자신들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결정했다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더 크다고 느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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