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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Mar 04. 2024

2024. 03. 03.

옷, 차, 다리, 길

 시야가 뿌옇다.



 나는 한 옷집에 있다. 상점 내부와 벽면에는 옷들이 가득 걸려있다. 반팔과 긴팔, 동그란 캡 모자가 많은 것으로 보아 평상복 브랜드인 것 같다. 아니면, 생긴 것은 평상복과 다름 없는데 이상하게 값은 비싼 외국 하이틴 브랜드 같은 것이거나.


 눈길이 닿은 멀지 않은 곳, 친구 녀석이 옷을 고르고 있다. 밀리터리 스타일을 좋아하는 친구 녀석, 입고 있는 반바지가 꽤 멋있다. 저런 반바지라면 사볼 만하지.


 반바지 쪽으로 가서 이리저리 뒤적여본다. 괜찮아보이는 게 두엇 있는데, kids라고 써 있다. 애들용을 입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관둔다.


 

 친구 녀석은 구경을 마쳤는지 밖으로 나간다. 녀석이 나간 뒤, 옷집이 어수선해진다. 마감 시간이 되었나보다. 옷집 출구 밖에서 느껴지는 불빛들이 희미해지고 있다. 옷집 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이것저것 정리하고 셔터를 닫기 시작한다.



 나가려고 마음 먹은 찰나, 입고 있는 옷에서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새 옷을 입었을 때의 그 느낌, 빳빳하고 날카로운 섬유가 몸을 찌르는 느낌이다. 여기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은 적이 있었나. 때마침 옆으로 지나가는 주인에게 묻는다.


  - 저기, 제가 기억이 잘 안나서요. 지금 제가 여기 옷을 입고 있나요?

  - (잠시 보더니) 저희 옷 맞는데요

  - 아, 알겠습니다.


 손이 닿는 곳에, 뭔가 친숙한 옷이 벗어져있다. 저게 원래 입고 있었던 옷일 것이다.


  - 근데,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네요.



 옷을 벗고 있던 나를 보며 옷집 주인이 말한다. 같은 의견이라, 굳이 대꾸하지 않는다. 원래의 옷을 챙겨 밖으로 나온다. 상점들이 즐비 큰 거리,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옅은 노란빛의 가로등만이 거리를 밝히고 있다. 친구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상점가 거리를 빠져나와 대로변을 걷는다. 어둠은 더 짙어진다. 가로등 불빛도 덩달아 밝아지긴 했지만, 가로등 사이 간격은 더 멀어졌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차는 없다.



 저쪽 방향이었던 것 같은데. 알고 있던 풍경과 약간 다르다. 아직은 괜찮다. 새로운 길에 대한 설레임, 길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공존한다. 아직은 괜찮다.


 도로변에 세워져있는 차를 지나간다. 흐릿한 불빛 속에서도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독특한 네모 차체. 외제차의 엠블럼이 보인다.


 차량 내부에 사람 형체로 보이는 그림자가 있다. 움직임이 있을 만한 시간대는 아니다. 차 안에서 자는건가.


 걸어가며 눈에 스치는 형체가 둘이다. 조수석에 하나, 운전석에 하나. 그런데 운전석에 가느다랗고 긴 다리가 보인다. 검은 스타킹, 아니 가터벨트라고 부르는 거 같은데.



 조수석도 아니고 운전석에. 차 주인인가. 아니면 차 주인이 매춘부를 불렀나.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차량은 점점 뒤편으로 멀어져간다.


 계속해서 걷는다. 주기적으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노란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건물들. 너무 조용해서 죽은 것처럼 보인다. 네모 차량 안의 다리도 그랬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움직임이 없어 인형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계속 걸어가면, 익숙한 풍경이 나오겠지. 나와야 한다. 저기까지 가면, 익숙한 풍경이 나올 것이다. 계속해서 걷는다. 이상하게 아까 봤던 다리가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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