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카르마2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얀 얼굴 학생 May 11. 2024

43 - 전염병 현황 보고

특이사항 없습니다 / 백신 접종현황 갱신

n월 n일 오전 8시, 단체 메신저방

  - ㄱㄱ사업부 전염병 특이사항 없습니다.

  - ㄴㄴ사업부 전염병 특이사항 없습니다.

  그 : IT사업부 전염병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n월 n+1일 오전 8시, 단체 메신저방

  - ㄱㄱ사업부 전염병 특이사항 없습니다

  그 : IT사업부 전염병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ㄴㄴ사업부 특이사항 없습니다


n월 n+2일 오전 8시, 단체 메신저방

  - ㄱㄱ사업부 특이사항 없습니다

  그 : IT사업부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ㄴㄴ사업부 특이사항 없습니다

...




 그에게 전염병 업무 혹이 하나 더 붙었다. 전염병이 시들해지면서, 전표 처리 업무에서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인다. 하지만 전염병이 시들해지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전염병 관리 업무 메신저방이 하나 더 신설된다. 주최자는 인사팀이다. 각 사업부의 전염병 업무 담당 인원으로 하여금, 오전마다 사업부의 전염병 특이사항을 보고하라는 것이다. 확진자가 늘었는지, 늘었으면 몇 명 늘었는지, 밀접 접촉자가 늘었는지, 밀접 접촉자가 몇 명 늘었는지, 아무 변화도 없으면 '특이사항 없습니다' 로 올리라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 단체 메신저방에 같은 메시지를 남긴다. 가끔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가 발생해도, 올리는 내용만 조금 달라질 뿐이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확진자 1명 발생하여 확인 중입니다. 장표 작성하여 전달드리겠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그는 친한 동기 한 명에게 위 상황을 이야기했다. 동기는 자신의 팀도 똑같은 것을 하고 있다며, 팀 단체방을 보여준다. 동기의 팀 단체방은, 꽤 오랫동안 진행되었는지 스크롤이 끝도 없이 올라간다. 매일 아침 열댓 명의 팀원들이 똑같은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다.


  IT사업부 ㄷㄷ팀 전염병 관리방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특이사항 없습니다

  ...


 단체방을 보여주며, 동기는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말한다. 그의 생각도 같다.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그는 아침마다, 이전에 보냈던 메시지를 복사하여 붙여넣는다. 다른 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매일 영혼 없이 보내는 메시지. 너무나도 똑같아, 무슨 고객상담 어플의 콜봇들처럼 느껴진다.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매일 전염병 특이사항 보고 단톡방'에 더해, 인사팀에서는 '백신 접종 현황'까지 요구한다. 이 당시 IT사업부에서는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직원들의 백신 접종 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 백신을 언제 맞았는지

  - 접종은 어디까지 이루어졌는지 (1차 / 2차 / 3차)

  - 몇 회차에 무슨 백신을 맞았는지 (화이X / 얀X 등)



 그에게는 이러한 전염병 관리 업무의 필요성과 의미가 전혀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단체방에 메시지를 올리듯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업부 내부에 백신 현황을 갱신해달라고 공지한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인원들은 관심이 없다. IT사업부의 보고를 담당한 그 혼자만이 업무 처리를 할 뿐이다. 그런데, 이 업무를 시킨 인사팀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그 : 전화받았습니다.

  인사팀 : 어, 하얀 얼굴 씨?

  그 : 아 네, 안녕하십니까.

  인사팀 : 그, IT 백신 접종 현황 보니까. 이번에 신규 입사자들 있던데, 그 사람들은 백신을 안 맞나?

  그 : 네. 작성해달라고 했는데 작성하지 않은 걸 보니,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사팀 : 백신을 안 맞는 이유가 뭐지?

  그 : (그걸 어떻게 아나) 해당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인사팀 : (약간 짜증난 듯) 백신 안 맞는 인원들은 왜 안 맞는 건지, 뭐 부작용이 있는 건지 그냥 개인적으로 맞기 싫은 건지. 향후에는 맞을 계획이 있는 건지, 그러면 언제 맞을 건지 이런 거를 작성해서 전달해요.

  그 : 알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며, 그는 은근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게 도대체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하는가.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가. 전염병이 아주 심했던 시기에는 뭐 그러려니 치겠으나, 누그러져 가는 상황에서까지 왜 이렇게까지 하나.



 그는 신규 입사자들 혹은 갱신을 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연락하여, 백신 접종 여부를 재확인하고 향후 계획까지 기재해달라 요청한다.


 업무 경험이 없던 당시의 그는, 눈앞의 '인사팀'이 싫었다. 하등 쓸모없고 의미 없는 일에 목숨 거는, 일을 시키는 주체인 '인사팀'을 싫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인사팀이 자발적으로 이렇게 업무 프로세스를 계획한 것인지, 아니면 인사팀조차도 더 윗선의 압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일을 진행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백신 접종 현황 관리 관련하여, 당연하게도,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왜 이 회사는 아직까지도 백신 접종을 강요하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백신을 2차, 3차까지 접종했다. 하지만 확진자는 미접종자와 접종자를 가리지 않고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백신 접종 현황을 매주 체크하니,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한 불만에 동의하지만, 이 회사는 생각 이상으로 보수적이고 딱딱하며 수직적이다. 원래 회사나 조직의 속성 자체가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대들보가 썩어 지붕이 내려앉거나, 주춧돌이 쪼개져 절 전체가 회청거릴 지경까지는 되어야 비로소 변화의 조짐이 보일 성싶다. 슬픈 예감대로, 그가 몸담은 절은 이후에도 그다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중들의 불만에 동의하긴 하나, 그의 입장에서 다른 중들의 불만은 오히려 배부른 축에 속한다. 직접 스프레드시트를 관리하고, 전화를 돌리고, 엑셀로 정리하여 메일을 보내고, 내용을 제대로 하라는 지시에 대응하는 등 업무 최전선에 있는 것은 결국 취합자인 그다.



  향후, 그도 어느 정도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시기가 온다. 업무와 자신을 분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도대체 왜 해야 하나, 이 쓸데없는 업무를,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아무리 고민을 해봤으나, 바뀌는 것은 없다. 어차피 절은 바뀌지 않는다. 답도 없는데 계속해서 의문만 던지다가는, 속이 뒤틀리고 그의 정신만 갉아먹을 뿐이다. 그저 인사팀이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한다. 매일 아침 '특이사항 없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백신 접종 현황 시트를 갱신한다. 


 이전에 들었던 부정적 피드백을 바탕으로, 그의 선에서 더 철저하게 파악한다. 

  - 백신 접종하셨나요? 몇 차까지 하셨나요? 날짜랑 백신 종류까지 기입해주세요.

  - 아 미접종하셨나요? 혹시 사유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접종 계획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 인사팀 보고할 때는 '접종 거부' 사유는 빼고 보내라고요? 아 적당한 다른 사유로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돌아버릴 것처럼 싫은 업무였으나, 이제 그는 이 업무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냥 주어진 일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 조금 귀찮을 뿐이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처음 업무를 맡았을 때보다 인사팀의 반응이 부드러워졌다. 적응이란 것을 한 것인가. 이런 것도 성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그가  전염병 업무에서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이후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42 - 전염병 검사전표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