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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 얼굴 학생 Aug 18. 2024

저주, 눈물바다

 매일매일이 따갑고 지긋지긋한 아토피의 반복이다. 그가 어렸을 적에는 사춘기가 대부분 중학생 시기에 오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토피로 인해 조숙해진 그는,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눈깔이 돌아 있었다. 항상 손톱을 세우고, 신경질적으로, 이를 악물고 벅벅 긁어댄다.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혹시 이 병원은 다를까. 그의 아토피를 말끔하게 고쳐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기대가 좌절되었던 것이 벌써 몇 번인가. 그는 가려운 곳을 긁어대느라 생각할 겨를이 별로 없다.



 이전에 방문했던 곳들과 마찬가지로, 병원 내부는 깨끗하며 바닥은 매끈한 대리석이다. 그는 아직 십 대이지만, 죽을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소파에 앉는다. 매끈한 대리석을 내려다보며, 계속해서 몸을 긁어댄다.


 언제나처럼, 그의 어머니가 접수를 하고,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면 진료실로 들어간다. 혹시, 정말 혹시라도 이 의사는 그를 낫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치유에 대한 기대인지, 비운의 주인공인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10대 청소년의 관심병인지. 그는 새로운 의사를 만나러 들어가는 이때가 조금 설렜다.




 진료실에 들어간다. 이 의사는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눈썹이 진하고, 눈동자의 힘이 강하다. 이전에 보았던 부드럽고 따뜻한 의사의 느낌은 아니다. 의사는 그를 진찰하기 시작한다.


  - 아토피네. 이거 심각한데. 언제부터 이랬어요?

  - 어릴 때부터 그랬고, 초등학교 고학년 되면서부터 좀 심해졌어요.

  - 어디 다른 병원들도 가보셨어요?

  - 그럼요. 다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의사는 질문을 계속한다. 그런데 뭐랄까. 추궁의 느낌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 식단은 어떻게 해요.

  - 애가 고기를 좋아하는데. 고기가 안 좋다고 해서. 고기도 많이 줄였어요.

  - 지금 고기 먹일 때가 아니에요. 집에 화분 같은 건 있어요?

  - 화분이요? 화분은 별로 없는..

  - 아니, 애 피부가 이 모양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부모가 그런 정신상태로 되겠어요?

  그 : (...??)



  - 지금 아토피가 이렇게 심한데. 지금 고기가 문제가 아냐. 고기는 당연히 안 먹어야 되는 거고! 무조건 야채 위주로 먹여야지. 고기는 멸치, 멸치만 먹고 정 필요하면 고등어나 생선만 먹어. 지금 식단 다 갈아엎고, 애 피부가 낫게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야 되는데. 부모가 돼가지고 어디 그런 정신머리로... #$%@##$^#@


 의사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완급조절을 하는 듯, 선을 한참 넘어갔던 어조가 점차 부드러워진다.


  - 지금 이거 봐. 여기저기 피부 난리난 거. 이게 뭐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무슨 저주받은 거 마냥. 안 그래요? 애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고. 평생 이렇게 있을 거야? 빨리 나아서 건강하게 지내야 될 거 아냐. ...



 의사는 책상 너머에 앉아있고, 그는 의사를 바라보며 동그란 의자에 앉아 있다. 어머니는 그의 뒤에 서 있었다. 질책인지 무엇인지 모를 의사의 말을 듣고 있던 차, 그의 어머니가 훌쩍이기 시작한다. 그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훌쩍이는 소리에 놀람과 동시에,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 처음 간 병원의 의사 앞에서, 그와 어머니는 같이 울었다. 의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의도했던 것인지 무엇인지, 의사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 이제부터, 식사는 비빔밥으로만 해요. 된장국이랑 비빔밥. 클 나이니까 멸치 볶아서 반찬으로 하고, 이외 고기는 절대 먹으면 안 돼요. 계란 후라이도 조심해야 하니까, 아주 가끔만 먹도록 하고.



 어리고 철없던 그는, 어머니를 따라 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훗날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이날 의사는 식단부터 비롯하여 무슨 화분을 많이 가져다 놔야 한다느니 등의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진료받은 내용을 따르긴 했으나, 의사의 어투가 너무 강하고 '막말'에 가까운 화법을 구사하여, 그의 어머니는  이 병원을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의사가 환자나 보호자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병원 위치가 집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어머니는 이따금씩 거리에서 이 의사를 봤다고 했다. 당연히도, 어머니는 이 의사를 아는 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그 의사도 많이 늙었더라고 말하며 어머니는 웃는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그에게도 여러 감정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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